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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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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약

등록 2008-05-09 00:00 수정 2020-05-03 04:25

▣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아빠는 내 인생 최고의 친구였다. 일찍 사회에 눈뜬 딸의 징계 문제로 당신은 다녀보지도 못한 고등학교 문턱을 드나들며 퇴학 경고를 받을 때도, 대학생 딸이 붙들려 있는 경찰서에 가서 북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라는 경찰의 호통을 들을 때도 아빠는 항상 당당한 내 편이었다. 딸이 하는 운동 전체에 대한 지지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딸의 꿈이 평생을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 허덕여야 했던 당신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알기에 고단한 자식의 삶을 지지했다. 단 한 번도 아빠와 함께하는 술자리에, 손끝으로 전해지는 온기에 끝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햇살도 좋던 봄날,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간 아빠는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선고받았고,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이별 앞에 서 있다.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라지만

그래서였을 게다. “살고 싶었어”라는 감염인 활동가 가브리엘의 고백에 목이 멨던 건. 살 거라고, 살 수 있다고, 살아야 한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 되뇌며 기적의 신약을 기도하는 나와 달리, 약이 있음에도 구할 수 없어 몇 번씩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던 그의 삶이 너무도 애처로웠던 건. 지난해, 가브리엘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줄 알았다. 오랫동안 써온 에이즈 치료약에 내성이 생기면서 면역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그 틈을 타 침투한 바이러스가 그의 온몸을 폐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하루하루 눈 뜨고 눈 감는 게 두려웠다는 그는, 새봄을 맞았다. 푸레온이라는 약을 구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 약값이 낮다는 이유로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시판을 거부해온 탓에 효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발만 동동 구르던 푸레온을 친구들의 도움으로 외국의 한 에이즈단체에서 무료로 공급받고 있다. 기존 약에 내성이 생긴 다른 에이즈 환자들이 약을 구하지 못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현실에서 기적이다. 죽음만큼 두려운, 동성애와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 때문에 가족에게조차 에이즈 환자라 말하지 못하고, 죽어가면서도 가브리엘처럼 약을 수소문하지 못하는 사람들. 어찌어찌 통로를 찾는다 해도 한 병에 4만원, 1년에 2천만원이 넘는 약값은 한 해 빠듯이 일해도 쥘 수 없는 돈. 전 세계에서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라는 에이즈로 한 해 210만 명이 죽고, 하루에 5천 명이 사라진다. 약이 없어서가 아니다. 고가의 약을 살 돈이 없어서다.

백혈병 환자들의 생명줄도 제약회사가 움켜쥔 지 오래다. 글리벡도 그러했고,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백혈병 환자들을 위한 신약 스프라이셀도 지금 그러하다. 제약회사는 한 알당 6만원은 넘게 받아야 한다며 배짱을 튕기고,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운 좋아 몇천원 더 깎고, 국가 재정으로 보조한다 해도, 해마다 500만원이 넘는 약값을 평생 감당할 수 있는 가족이 그리 많으랴. ‘난 글리벡으로, 스프라이셀로 살 수는 있겠지만, 가족은…’이라며 아이들 학원비도 모자라 전셋값까지 삼키고 있다고 자책하는 환자의 참담함을 어떻게 위로하랴. 스프라이셀이 필요한 환자가 2천여 명이니 국가보조금만도 한해 1천억원. 이러다 건강보험 적자라도 나 보험 혜택이 중단되는 건 아닌지, 건강보험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다독이랴.

이대로 보낼 순 없지 않나

선택해 짊어진 병이 아니건만 아픈 이들에게 세상은 참 가혹하다. 약은 환자와 가족의 생명줄이라는 얘기는, 약값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윤이 아니라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얘기는, 그래도 사람 살려놓고 봐야 하지 않냐는 얘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생떼 취급을 받을 뿐이다. 제약회사가 신으로 군림하고, 자본이 생사를 주관하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그나마 나는 행복하다고 고백해야 하는 걸까? 아빠의 생명을 담보로 한 약값의 줄타기는 없으니. 십시일반이라며 아픈 이 사연에 자동응답전화(ARS) 누르는 마음을 모아 싸워보면 안 될까? 함께 흘려줄 눈물 있으니, 함께 싸울 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이윤보단 생명이, 자본보단 사람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 싸우다 보면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이대로 죽을 순, 보낼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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