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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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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소년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 백은하 〈매거진 t〉편집장



가끔 이메일을 보내오는 독자들이 있다. 그중엔 귀여운 팬레터도 있었고, 따끔한 충고의 편지도 있었다. 그런 메일을 몇 번 받은 뒤부터는 글을 쓸때면 언제나 내앞에 단 한 사람의 가상 독자만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 버릇은 새로운 유형의 이메일을 불러왔으니 바로, 우리 한번 만나죠, 유의 ‘1대1 면담 신청’이다. 처음엔 약간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딱히 거절할 변명을 찾지 못하겠고,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도 생겼다. 결국 어떤 독자와는 좋은 친구로 지내게 되었고, 어떤 독자와는 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 이 한 명의 독자는 신선한 깨달음을 나에게 던져주었다.

멋진 보타이를 맨 ‘스위트 세븐틴’

그가 처음 나에게 인사를 건넨 건 개인 홈페이지에서다. 방명록을 통해 꾸준히 인사를 건네던 그는 제주에 산다며 중문 바다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이 하나 올라왔다. 2월 중순 서울을 가니 꼭 만나고 싶다, 는 이야기였다. 미리 말해두자면 그는 1992년생 소년이다. 이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스위트 세븐틴’.

“서울에 오자마자 도서관에서 내가 태어난 해 태어난 달의 이탈리아 를 찾아 봤다”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제주 소년은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나를 만나러 온 그날도 아주 멋진 색상과 핏을 가진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그 안에는 예쁜 보타이를 매고 있었다. 교복이 세상의 유일한 옷이라고 생각했던 내 십대 시절과 비교해볼 때 그 감각은 도저히 중학교 졸업생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겉멋 든 ‘어린 된장남’이라기보다는 ‘패션’이라는 신세계를 조금 일찍 발견한 운 좋은 소년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오므라이스를 앞에 두고 제대로 된 첫인사를 나눴다. 소년은 고맙게도 내가 쓴 책 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노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도 9·11 터졌을 때 책에서 쓰신 것처럼 똑같은 생각을 했거든요. 내일 당장 아무 이유 없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어머 그랬어요? 라고 대꾸하려다가 아니 뭐라고요? 대체 그때가 몇 살 땐데, 라고 물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그때 유서를 써서 늘 몸에 지니고 다녔어요. 지금도 방 안 어딘가에 있어요. 내가 죽으면 누군가 발견하겠죠.”

최근 나를 ‘영드’(영국 드라마)로 이끈 는 영국 브리스톨을 배경으로 한 하이틴 드라마다. 진창 같은 세상에 태어난 꽃다운 소년·소녀들은 철없는 어른들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거식증과 약물중독에 시달리며, 파티를 하고 섹스를 하고, 혹은 ‘스킨스’(대마초)를 피우며 그 지옥에서의 한철을 견뎌낸다. 그래도 그들에겐 어른들에게는 없는 염치가 있고 아직까지는 꿈이 있다. 제주의 소년도 꿈이 많았다. 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세상도 무궁무진한 것 같았다. 그래서 아직 어리니까, 가능성이 다양하니 좋겠다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그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그런데 그 가능성이란 게요…, 아무런 보장이 없을 때는 그 어떤 것보다 잔인한 희망인 거예요.” 아, 를 보는 내내 감정이입을 열일곱들에게 했는데 현실의 나는 배려 없는 그저 ‘어른’이었던 것이다.

이런 간사한 노스탤지어라니

소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내 십대가 떠올랐다. 나 역시 핵전쟁 이후의 세상을 그린 라는 드라마를 보고 정말로 긴 시간 동안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무엇이 될까, 어떻게 살까에 대한 가정과 희망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시절. 사실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나 같은 게 뭘 하겠어, 같은 자기 비하에 휩싸이곤 했다. 그렇게 십대가 끝나고 대학에 가고 직장에 들어오고, 간사한 뇌는 그토록 힘들었던 시절을 ‘추억’이라는 적당한 노스탤지어로 바꿔치기해버렸다. 최근 거울을 볼 때마다 부쩍 세월을 확인하며, 아 고등학생이면 좋겠는걸, 이라고 생각했다. 십대라니 너무 찬란한 시절이지라고 아련하게만 추억했다. 끝이 안 보이던 그토록 어두운 터널 속에서의 시간을 망각해버린 것이다. 이 제주 소년의 신선한 호령이 아니었으면 다시 불러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마워, 친구. 아침이 밝아오는 지금, 나는 또 이렇게 한 사람을 향한 편지 한 통을 마무리짓는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서울에서 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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