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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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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적 정실주의’가 문제였다

등록 2007-12-21 00:00 수정 2020-05-03 04:25

‘창’ 표지이야기에서도 보이는 친노의 ‘남 탓’… 왜 대통령의 자세는 문제 삼지 않나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제685호에 실린 ‘창 한 방에 날아간 꿈, 반한나라당 전선이여’라는 기사를 읽고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어 좀 다른 생각을 말씀드려볼까 한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대선 하루이틀 전이거나 대선이 끝난 시점일 게다. 그래서 ‘김 빠진 이야기’가 아니냐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가 하는 문제는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대선 이후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해주실 걸 요청드리고 싶다.

‘개혁 후퇴’는 더 근본적인 문제의 부산물

기자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이 기사는 결과적으론 친노 직계 인사들의 생각을 대변한 당파성이 두드러졌다. 친노 인사들은 대선 이후에도 이런 시각을 퍼뜨리기 위해 맹렬히 투쟁할 게 틀림없다. 물론 자신들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그에 따른 정치적 입지 구축을 위해서다. 그리하여 과거의 과오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 ‘남 탓’만 할 가능성이 높다. 이걸 또 인내해야 하는가?

이 기사는 “보수 진영 후보들끼리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는 틈바구니 속에서 범여권과 민주노동당 후보는 맞상대 취급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원인 규명을 시도했다. 이 기사가 인용한 두 명의 386 운동권 출신 대통합민주신당 관계자의 생각은 “개혁·진보 진영의 지지층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와 “기이한 현상이다”로 압축된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자가 다음과 같은 답을 제시했다.

“개혁·진보 진영의 집토끼들이 보수 진영의 대표였던 이명박 후보에게 몰려가 있는 현실에 대한 책임은 우선 범여권에 있다. 이 후보가 개혁·진보 세력들의 착시 현상을 유도하는 ‘마술’을 부렸기 때문이 아니라 범여권, 즉 참여정부와 과거 열린우리당이 보여줬던 ‘개혁의 후퇴’에서 비롯된 결과인 것이다. 우선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제17대 국회 초반 박창달 전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나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가 거론된다. 몇몇 상징적 사건을 둘러싸고 노정된 열린우리당의 소신과 전략 부재로 인해 개혁·진보 유권자들의 이탈이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과연 그런가? ‘개혁의 후퇴’는 일리는 있지만, 정확한 답은 아니다. ‘개혁의 후퇴’는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니 자꾸 ‘개혁의 후퇴’를 강조하면 더 근본적인 이유가 은폐된다. 그리고 ‘개혁’도 무슨 개혁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민생 위주로 따져봐야 한다.

진보파는 자꾸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게 아니다. 전혀 아니다. 아니 세상에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못했다고 한나라당 품으로 뛰어드는 ‘개혁·진보 진영의 집토끼’가 있다니, 그게 말이 되나? 이 점에 관한 한, 2004년 11월12일자 사설이 잘 지적했듯이, 대통령 노무현의 국정운영 방식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국보법은 그 유통기한이 종료된 낡은 유물이다. 폐지에 관한 국민적 동의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사안이었다. 먼저 안보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대안을 미리 제시한 뒤 폐지를 추진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방송대담에서 불쑥 폐지를 언급, 그 순서를 거꾸로 밟아나갔다. 정치 싸움의 소재로 바닥난 지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런 소득이 없다. 스스로 속도조절론을 꺼내야 할 만큼 개혁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고, 개혁 작업을 혼돈 속에 빠뜨렸을 뿐이다. 개혁은 이제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이것이 집권세력이 원하던 것이었나. 집권세력은 지금 ‘개혁의 실패’를 넘어 개혁의 대의와 정당성 그 자체까지 손상시키고 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부터 시작

노무현의 국정운영 방식이라고 하면 지지자들은 “그까짓 스타일” 운운하면서 가볍게 생각하는데, 그건 스타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걸 ‘정치화·정략화’ 함으로써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켜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걸 어찌 스타일만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개혁의 후퇴’를 상징하는 건 국가보안법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였다. 노무현은 총선공약을 뒤집으면서, 오히려 공공 부분의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한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게 2004년 6월이었는데, 이때만큼은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 의 박태견이 잘 지적했듯이, 노무현이 다수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주택 문제를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는 논리로 합리화한 데 대한 국민의 분노는 결정적이었다. 이후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여론조사에서 ‘서민을 위한 정당’으로 열린우리당보다는 한나라당을 지목한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 것도 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 직후였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대통령 독재체제’였다. 열린우리당 의원 김근태는 노무현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불가 방침에 반발하면서 “계급장을 떼고 논쟁하자”고 주장했지만, 친노 의원들의 공세에 밀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바로 이때에 열린우리당이 사망한 것이다.

과거의 독재는 총과 칼로 가능했지만, 노무현 시대의 독재는 맹목적인 노무현 충성파들의 독설 공세와 이를 증폭시킨 인터넷으로 가능했다. 이 말이 믿기지 않으면 2004년 6월의 신문과 인터넷을 둘러보시기 바란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요원들이 서민을 위한 개혁을 주장한 김근태에게 독설을 퍼붓고, ‘조·중·동’이 노무현과 그런 경호요원들을 칭찬한 게 생생하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왜 열린우리당의 사망인가? 그건 “김근태가 누군가?”라는 물음과 관련돼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노무현과 계급장을 떼고 논쟁하자고 말할 수 있는 자격과 그만한 지지 배경을 가진 유일한 인물은 김근태였다. 그런 김근태가 친노 세력의 공세에 굴복해 무너지는 걸 보면서 누가 감히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겠는가. 2005년 10월에 가서야 열린우리당 의원 문학진이 “대통령이 신이냐?”는 항변을 하게 되지만, 이후로도 노무현은 달라지지 않았다.

친노 인사들은 옛 열린우리당 상층부 인사들이 참여정부의 단물만 빨아먹다가 임기 말에 와서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하는 비겁한 짓을 한다고 욕한다. 맞는 말이지만, 반쪽짜리 진실일 뿐이다.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은 순도 100%를 자랑하는 명분을 갖추었던 김근태마저 무릎을 꿇게 만든 자신들의 역할을 먼저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다시 기사로 돌아가자. 기자는 “지난 5년간 한나라당의 집요한 공격에 대항할 만한 세력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도 개혁·진보 진영이 무너진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정책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오류를 범하기도 했지만, 과도하게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맞서야 했다는 지적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은 5년 동안 줄기차게 정부·여당을 공격했다. 그렇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이를 정면 돌파하면서 끝까지 전통적 지지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의 대통합민주신당을 포함한 개혁·진보 진영은 과도한 공격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비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보적 지식인들과 시민사회 세력 역시 이같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로운 개혁·진보 어젠다를 제시하고 개혁에 동참하려는 진지한 노력보다는 개혁·진보 진영 내부로 관념적 비판의 총구를 돌리면서 제 살 깎아먹기에 급급했다는 평가다.”

이어 기자는 친노 인사들의 주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기사를 끝맺었다. 이 기사는 인용에서부터 심각한 불공정을 범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인용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노 인사이니, 한쪽으로 기우뚱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앞으로의 살길도 찾기 어려워진다.

보수 언론을 키워준 장본인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의 집요한 정부·여당 공격은 백번 옳은 지적이지만, 그 공격의 설득력을 높여준 일등공신이 누구였는지를 살펴야 한다. 노 정권이다. 노 정권은 자신이 보수 언론과 장렬한 전쟁을 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내가 보기엔 ‘보수 언론 키워주기’에 앞장섰을 뿐이다.

노 정권은 ‘내부 비판’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부 비판’ 문화에 관한 한, 김대중 정부 시절과 노무현 정부 시절 사이엔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유시민은 임기 말 김대중의 중도 하야를 요구했다. 나 역시 그런 주장을 폈다. 그래도 지지자들이 수긍했다. 즉, 김대중 시대엔 내부 비판 문화가 살아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노무현 시대엔 그렇지 않았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요원들이 온갖 욕설 공세를 퍼부음으로써 내부 비판을 원천봉쇄하려 들었다. 나는 그게 김대중·노무현의 인간 차이가 아니라 인터넷 활성화의 차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하나 감안해야 할 것은 김대중은 임기 말에 쥐 죽은 듯이 조용했지만 노무현은 정반대였다는 점이다. 비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비겁한 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리는 친노 인사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진보적 지식인들과 시민사회 세력이 개혁·진보 진영 내부로 관념적 비판의 총구를 돌리면서 제 살 깎아먹기에 급급했다는 주장은 좀 황당하다. 물론 그 나름의 일리는 있겠지만, 과연 ‘개혁 동참’이 적은 게 진짜 문제였는지, 아니면 너무 많은데다 그 몹쓸 치정주의와 이해관계에 눈이 멀어 ‘거리두기’에 실패한 게 진짜 문제였는지는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 명실상부한 ‘대통령 공화국’이다. 대통령이 탈권위의 화신을 자처하고 실천해도 ‘대통령 공화국’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권력은 대중의 인지(認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 정권 들어 일어난 청와대 사칭 사기 사건이 역대 정권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게 그걸 잘 말해주지 않는가. 게다가 대통령이 마음대로 제공할 수 있는 고급 일자리의 수가 수천 개라고 하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은데다 오히려 참여정부 들어 더 늘어났으니,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아첨하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지 않겠는가.

한국이 ‘대통령 공화국’이라 함은 대통령 개인의 자세가 ‘새로운 개혁·진보 어젠다를 제시하고 개혁에 동참하려는 진지한 노력’의 수준과 정도를 결정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다. 기자는 진보적 지식인들과 시민사회 세력에게 그게 없었다고 비판했지만, 왜 노무현의 자세는 문제 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아무리 충언을 해도 듣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의원들이 충언을 할 때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386 참모들과 단신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해왔던 방식으로 일하게 내버려둬 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책임윤리를 생각하면, 사실 노무현의 치명적인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에 있었다. 이는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느냐 여부를 따지는 편협한 사고 기제로 발전한 것이다.

노 정권 이후에 본격적으로 입을 열겠다

진보적 지식인들과 시민사회 세력을 탓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더욱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노무현의 자폐적 정실주의다. 바로 이게 ‘대통령 공화국’이라는, 노무현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한국 사회 특유의 메커니즘에 의해 증폭되면서, 민심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내가 이미 수없이 지적했지만, 노무현의 충성파들이 낙하산 타고 내려간 수많은 공기업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보라.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단 한 차례도 쓴소리를 하지 않고 늘 정적들을 향해서만 전투적 자세를 보여왔다.

참여정부의 성패를 논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민심이 등을 돌린 건 그런 성패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의 문제다. 한나라당과의 차이가 없다며 ‘대연정’을 주장하고 대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붓던 친노 세력은 지금 ‘한나라당 집권 망국론’을 펴고 있다. 기본적인 정신 상태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한때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큰소리를 칠 처지는 못 된다. 나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노 정권 이후에 본격적으로 입을 열 것이다. 물론 혹독한 자기비판도 포함될 것이다. 왜 노 정권 이후인가? 아직도 권력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그때 가서야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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