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보다는 높은 지지율로 밀어붙여, 상대 따라 다른 개혁의 신뢰는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최근 기자실 폐쇄 파동을 지켜보면서 새삼 신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이건 ‘기자실 갈등’이 아니라 ‘신뢰 갈등’이다. 왜 그런가? 우리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그 사건에 국한해 찬반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옳은 논쟁법이라고 배워왔지만,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그 사람의 과거 행적과 행실이다. 옳건 그르건 그게 현실이다.
기자실 문제도 바로 그런 함정에 빠져 있다. 갈등의 주요 당사자인 신문과 노무현 정권은 각자 신뢰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일반 대중은 기자실 문제엔 별 관심이 없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보여온 평소 실력에 대한 판단으로 기자실 문제를 대할 뿐이다.
‘스따’가 된 한겨레
기자들이 기자실 폐쇄를 그토록 결사반대한다면, 여론이 적극 호응해줘야 하겠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평소 신뢰를 잃은 탓이다. 신문들이 분노해야 할 대상은 노 정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특히 누리꾼들의 압도적 다수가 이 문제에 관한 한 노 정권의 조치를 지지한다는 걸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신문의 적은 권력도 아니고 인터넷을 비롯한 뉴미디어도 아니다. 신뢰를 얻지 못한 자기 자신이다. 신문들이 국민적 신뢰를 누리고 있다면 노 정권은 지금과 같은 일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노 정권의 지지율이 아무리 낮다 해도 신문의 신뢰도보다는 높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든 책임은 바로 신문에 있다.
기자실 문제는 이미 기자실 수준을 넘어섰다. 신문의 근본적인 위기의 문제다. 노 정권과의 관계가 아니라 국민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다. 바로 이 점을 자책하는 목소리가 신문 내부에서 나오지 않는 건 한심한 일이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의 태도다. 대부분의 언론사 기자들이 부처별 기자실 폐지와 통합브리핑 시행에 항의해 정부의 통합브리핑 참석을 거부한 반면, 는 통합브리핑에 참석하기로 했다. 편집국 수석부국장 오태규는 10월16일 그 경위를 설명한 칼럼을 썼다. 그 제목이 ‘한겨레는 왜 스따가 됐나’다. 1988년 창간 당시 기자들은 언론계의 ‘왕따’였지만, 2007년엔 ‘스따’(스스로 따돌림)를 선택했으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제가 있다는 내용이다.
‘함께하는 쉬운 길이 아니라, 홀로 가는 어려운 길’을 택한 기자들에게 존경을 보낸다. 그러나 좀 짚고 넘어갈 문제는 있는 것 같다. 내부에서도 이 문제로 1시간여 찬반 토론을 벌였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일부 참석자들은 “정부의 취재 선진화 방안은 발상 자체가 취재 통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부처별로 기자실을 두고 대면 접촉을 활발하게 하는 것이 맞다”며 다른 언론사와 보조를 맞추자는 주장을 폈다. 반면 다른 참석자들은 “핵심은 취재 접근권을 제한하느냐 마느냐인데,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홍보관실을 통한 취재 약속이나 대면 취재 장소 제한 등의 큰 문제가 해소됐다. 브리핑을 거부할 명분이 없어졌다” “기자실 폐지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취재 접근권보다 기자들의 편익이나 기득권 유지라는 측면이 있다”며 ‘독자 행동’을 주장했다고 한다. 수적으로는 후자 쪽의 의견이 많았지만 양쪽의 주장이 되풀이되면서 쉽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국민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자”는 한마디가 회의의 대세를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소개한 오태규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끝맺었다.
“국민의 관점에서 ‘작은 불만’을 접고 ‘대의’(국민의 알 권리)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통합브리핑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앞으로 한겨레는 서로 정도를 넘어서고 있는 정부와 언론계의 중간 어느 긴장된 지점에 서서, 국민한테 박수받는 ‘영광된 고립’의 길을 걸을 작정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번 결정이 ‘영광된 고립’인지는 의문이다. 결정의 핵심은 “국민의 관점에서 ‘작은 불만’을 접고 ‘대의’(국민의 알 권리)를 선택”했다는 것일 텐데, 이게 이해가 안 간다. 기자실과 관련된 언론의 취재 행태에 대한 노 정권의 비판은 상당 부분 타당하지만, 통합브리핑제가 해결책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자실의 가장 큰 문제라 할 ‘발표 저널리즘’(관의 발표에만 의존하는 저널리즘)은 통합브리핑제로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노 정권의 조치는 평소 잘못된 취재 행태를 보여온 언론의 기득권에 타격을 줌으로써 언론이 성역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뿐이다. 그것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 수익을 초과하는 비용이다.
선진국의 다른 관행들은 어디에
통합브리핑 참여에 찬성한 어느 기자의 말대로, 핵심은 취재 접근권을 제한하느냐 마느냐이다. 그런데 과연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홍보관실을 통한 취재 약속이나 대면 취재 장소 제한 등의 큰 문제가 해소됐”는가? 마저 강력 반발한 덕분에 그 조항은 뒤늦게 빠졌을망정 그 조항을 넣었던 원래의 생각과 자세가 바뀌었느냐는 것이다. 보수신문들의 주장은 제쳐놓더라도, 은 그게 해소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이 거짓말을 하는 건가? 이 신문의 전국부장 박래용은 10월22일치 칼럼 ‘대통령은 알까’에서 공무원에 대한 취재 접근이 사실상 가로막힌 현실을 실감나게 지적하고 있는데, 이게 과장된 주장이란 말일까?
나는 오히려 의 통합브리핑 참여 찬성의 논리로 나온 발언 중 “기자실 폐지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취재 접근권보다 기자들의 편익이나 기득권 유지라는 측면이 있다”는 말에 주목하고 싶다. 특유의 순결주의가 작동한 대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발언에 동의한다. 기자들이 기자실 폐지에 펄펄 뛰는 건 ‘취재 접근권보다 기자들의 편익이나 기득권 유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가 묻고 싶은 건 그 두 가지가 꼭 상호 충돌하는 성격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공무원들은 그들 나름의 ‘편익이나 기득권’을 갖고 있지만, 그건 그들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수단이 업무 수행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면 반드시 문제를 제기해야겠지만, 일체의 ‘편익이나 기득권’을 완전히 버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론적으론 대통령도 허름한 달동네에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만민은 평등하다는 걸 실감나게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대통령 관저에 엄청난 특혜를 베푸는 건 그것이 대통령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그동안 기자실이 업무 수행에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 과도한 ‘편익이나 기득권’의 온상이 되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논설위원 곽병찬이 10월23일치 칼럼에서 “기자들은 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줄 뉴스는 기자실 바깥에 숨겨져 있고, 안에는 홍보성 정보만 있다는 것을”이라고 말한 것도 바로 그런 문제를 지적한 것이리라.
사실 이 점에 대한 분노만 놓고 보자면 노 정권의 기자실 폐지는 박수를 받아 마땅한 개혁 조치다. 그 밖에도 기자실 문제는 하나둘이 아니기에 기자실에 대한 반감에만 근거하자면 기자실 폐쇄와 통합브리핑제는 노 정권의 위대한 업적으로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세상만사를 그렇게 일방적으로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고려대 교수 심재철은 ‘선진국 취재 관행’과 비교해 노 정권의 조치에 지지를 보냈는데, 왜 ‘선진국 공무원 관행’ ‘선진국 정보공개 관행’ ‘선진국 내부고발 관행’ 등은 언급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기자실의 존폐 문제는 공무원들의 수준·자세와 정보공개·내부고발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할 일이지, 그 자체로서 답을 내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와 의 노력 덕분에 기자실 문화에 적잖은 변화가 일어난 걸 목격해왔다. 즉, 폐지 이외의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기자실의 완전 개방과 언론사별 분담 비용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할 수도 있었다.
기자실과 공기업, 극명한 대비
노 정권의 조치는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차분함보다는 신문의 노 정권 비판에 대한 반감과 오기로 추진된 혐의가 짙다. 여권의 의견조차 수렴하지 않은 채 대통령 혼자 밀어붙인데다, 심지어 여권의 반대를 ‘비겁함’으로 보기까지 하니, ‘책임윤리’를 전제로 한 조치로 보기 어렵다. 노 정권의 조치가 다음 정권에서 뒤집어져 원상복귀한다면 그동안 발생한 실제 비용과 사회적 비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김종구 편집국장은 “기자들이 밖에서 농성하는 것은 떼쓰는 것이다. 어차피 정치권에서 향후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얘기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는데, 이는 지나친 겸손이다. 보기에 따라선 무책임한 말씀이다. 가 향후 원점으로 쉽게 돌아갈 정도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책의 사회적 비용 걱정을 하면 안 되는가? 이제 언론매체 중 가장 높은 신뢰를 누리는 정도의 위상이면, 자신만의 순결을 드러내기보다는 중재안이나 타협책을 내놓고 갈등을 조정해보려는 시도를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기자실에 대한 평소의 판단이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친 게 분명한 만큼, 노 정권에 대한 평소의 판단을 고려하는 게 공정하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다. 늘 기득권에 안주할까봐 노심초사하는 의 순결주의는 감동적이긴 하지만, 이런 균형감각이 있었더라면 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 정권이 그간 보여온 행태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말한다면, ‘기자실’과 ‘공기업’이라는 두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적 이슈로서의 두 문제에 대한 노 정권의 대응이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옳건 그르건, 노 정권은 신문 개혁에 정권의 생명을 걸다시피 하는 강경 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이유는 둘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첫째,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좋은 뜻이다. 둘째, 사이가 나쁜 신문들에 대한 보복심이다. 옳건 그르건, 노 정권은 공기업 개혁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무대응 또는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왔다. 이유는 둘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첫째,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좋은 뜻이다. 둘째, 공기업을 정권 창출·유지에 기여한 사람들의 ‘낙하산 인사’ 착륙지로 써먹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둘 다 가급적 선의 해석을 하고 싶지만, 형편은 그렇지 못하다. 노 정권은 신문 개혁에 대해선 근본주의적 대응을 해온 반면, 공기업 개혁에 대해선 정반대의 대응을 해왔다. 신문에 대해선 톡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은 예민함으로 엄청난 다변을 쏟아낸 반면, 공기업에 대해선 엄청난 양의 비판이 쏟아져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둔감함을 보이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었다. 유력 신문들과는 원래 사이가 나빴으니, 싸우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반면 공기업은 노 정권에 충성하는 이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니,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쓴소리 몇 번만 해도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노 정권은 쓴소리는커녕 자화자찬하기에 바빴다. 노 정권 덕분에 ‘공기업 민영화’가 유일한 개혁 방안인 것처럼 여론의 지지까지 받게 되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편가르기 논리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공기업은 우리 편이지만, 유력 신문은 우리 편이 아니라는 논리 말이다. 자신과 사이가 나쁜 쪽에 대해선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겠다는 듯 개혁 기질로 밀어붙이고, 자신과 사이가 좋거나 자신이 장악한 쪽에 대해선 기존 질서를 수긍하는 보수 기질로 판을 키우는 건 노 정권의 일관된 행동양식이었다. 노 정권의 공무원 대폭 증원과 찬양이라는 이상한 행태도 그 틀로 이해하면 간단히 풀린다. 후마니타스 대표 박상훈이 잘 지적한 것처럼, 이제 ‘강력한 국가의 귀환’(경향신문, 2007년 10월18일)을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관의 독립과 중립성이라고?
기자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의 핵심은 언론과 관의 관계에 있다. 노 정권은 관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전제하에 기자실 폐쇄를 밀어붙였다. 그 관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나라당 관이 된다. 관의 독립성과 중립성? 그게 현 단계의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이야기인가? 노 정권 스스로 그걸 지키기 위해 애써왔는지, 또 관의 정보공개와 공무원의 내부고발 활성화를 위해 무슨 일을 해왔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해보라.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상대성이 있는 사안에 대해 편을 갈라 내 편을 향해선 솜방망이를 들고 상대편을 향해선 칼을 빼드는 건 개혁이 아니라 개혁을 망치는 일이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값비싼 교훈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신뢰다. 신뢰의 토대 위에 서지 않는 개혁은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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