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꼭 닮은 이명박이 ‘성공’하기 위해서 피해야 할 일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시 남긴 어록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승부의 세계를 떠난다”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좋은 뜻으로 해석할 경우, ‘승부’를 넓은 의미로 봐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승부의 세계’가 아닌 게 없다. 속세를 떠난 수도자가 고행을 하는 것도 ‘자기 자신과의 승부’가 된다. 따라서 이렇게 해석하는 건 무리다.
이 말은 정치를 ‘승부의 세계’로 본 노무현의 의식 세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게 옳겠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자신은 정치가 ‘승부의 세계’가 아니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피곤함을 토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이렇게 보기엔 노무현이 스스로 승부를 즐겼고 또 그가 명승부사임을 증명한 여러 사건들이 걸림돌이 된다.
대통령으로서 위험한 ‘인간 승리’
정치가 ‘승부의 세계’임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선거야말로 ‘승부의 세계’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러나 승부사적 기질은 사람마다 다르다. ‘승부사형 인간’이 따로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승부를 즐기고 승부에 능한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이 바로 그런 경우다. ‘승부사형 인간’이라는 개념은 그 명암(明暗)이 있으므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 의미다.
아무나 원한다고 해서 ‘승부사형 인간’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재능이 있어야 한다. 재능이 없는데 무슨 승부를 할 수 있을까? 재능이 승부욕을 낳고, 승부욕이 재능을 키운다. 그러나 늘 그런 건 아니다. 재능이 승부욕을 낳지만, 승부욕이 재능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승부욕은 정치인이나 기업인들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드물게나마 지식인 중에도 탁월한 재능과 더불어 강한 승부욕을 가진 이들이 있다. 지식인의 승부는 주로 논쟁 형식으로 이뤄진다. 평소 해박한 지식, 날카로운 안목, 냉정한 엄밀성을 보여주던 지식인이라도 논쟁에만 임하면 확 달라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지식인에서 승부사로 변신해 무서울 정도의 집요함을 보이면서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려고 든다. 그 열정이 거의 광기에 가까워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이게 바로 승부욕이 재능을 망치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노무현은 과연 어떤 유형의 승부사였을까? 그의 승부사 기질은 비상한 상황에선 비상한 힘을 발휘했지만 평소의 국정운영엔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도움이 되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때론 전혀 불필요하거나 얼마든지 피해갈 수도 있었던 갈등을 유발하고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명박’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노무현과 닮은 점이 많은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가? 지난 1월31일 당선자 자격으로 연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사람들은 ‘해봐라, 그래도 안 된다’고 하는데 난 그걸 거역하며, ‘해 봐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인간 승리’라고 하는 점에선 박수를 보내도 좋을 아름다운 말이긴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특수성에 비춰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 모두 고생을 많이 했고 밑바닥에서 자수성가해 ‘코리안 드림’을 이루었다. 이건 개인과 가문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선 독약이 되었고 독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정운영을 자신이 이룬 코리안 드림의 복사판으로 간주하는 사고의 틀에 갇히기 때문이다.
고생은 노무현보다는 이명박이 훨씬 더 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이명박의 삶은 처절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가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큰 부상을 당한 형제 두 명이 병원비가 없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그 자신 또한 온갖 궂은일을 하고 영양실조로 10대 중반에 넉 달이나 병석에 누워 있었지만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혹독하게 일을 했는지 몸이 너무 상해서 병역면제를 받을 정도였다.”
“해봤어?” “가봤어?”
이게 시사하는 게 무엇일까? 이명박이 자신의 ‘성공 신화’를 국정운영에 그대로 도입해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고언을 할 때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386 참모들과 단신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해왔던 방식으로 일하게 내버려둬달라”며 내치곤 했다. 그 중대한 국정운영을 자신과 동지들의 ‘코리안 드림’ 수준으로 격하시킨 동시에 자신의 경험에 대한 과도한 확신을 표현한 셈이다. 개인적인 ‘성공 신화’의 포로가 돼 있다는 점에선 이명박도 비슷하다.
△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뒤 부처별 업무보고를 전국을 돌면서 받았다. 그의 ‘현장’ 중심 ‘해봤어?’ ‘가봤어?’ 정신의 실현 모습이다. 3월14일 강원도 춘천 스톱모션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참석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말을 메모하면서 듣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일은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시골에 가면 비쩍 마른 노인네가 하루 종일 삽질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키운 사람들이 시골에 가서 삽질을 해보면 한두 시간도 못해요. 큰일은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이런 과도한 경험주의는 시각주의와 만난다. 이명박은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나의 전략”이라고 했다. 이런 시각주의는 박정희 개발시대엔 확실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시각주의 정치’의 정수라 할 청계천 사업도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절대적 기여를 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통령직은 ‘시각주의 정치’만으론 안 된다. 승부사 기질은 승패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제로섬게임에선 유리하지만, 민주화된 국정운영엔 제로섬게임이 아닌 게 많다. 또 대통령은 성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없는 사안들도 많이 다뤄야 하기 때문에 ‘승부’가 아닌 ‘소통’에 능해야 한다. 이는 ‘해봐라, 된다’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명박은 ‘해봤어?’ 병에 걸려 있는 걸 어이하랴. 그는 측근들이 어떤 정책 현안에 대해 ‘어렵다’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를 하면 “해봤느냐”고 되묻는다. “해봤어?” 앞에서 반대란 있을 수 없다. 그 어떤 반대도 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대연정’과 이명박의 ‘대운하’는 닮은꼴이다. 노무현도 사실상 ‘해봤어?’ 정신으로 대연정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참담했다. 이명박도 ‘해봤어?’ 정신으로 대운하를 시도할 것이다. 대운하는 대연정과는 달리 온 국토를 헤집어놓는 시각주의 사업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파괴적일 것이다.
‘해봤어?’의 시각주의 버전이 ‘가봤어?’다. 이명박이 ‘해봤어?’와 더불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가봤어?’는 탁상행정과 공리공론에 비해 장점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가볼 수 있는 현장이 없는 사안마저 같은 식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은 ‘정치’를 혐오하는 점에서도 똑같다. 그들은 승부 못지않게 타협을 중요시하는 ‘여의도 문화’를 극도로 싫어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이런 특성이 정치 혐오를 넘어 정치를 저주하는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 없인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즉, 이들이 지지를 받은 이유가 이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인정 욕구’ 폭로하는 “역사의 평가”
노무현과 이명박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같다. 노무현은 ‘시대정신’이니 ‘당위’니 ‘원칙’이니 하는 것으로 자신을 합리화한 반면, 이명박은 자신의 무오류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이명박은 “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과오가 있다. 저는 늘 변하고 있는데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70년대 이명박 사장, 80년대 이명박 회장, 90년대 정치인, 2000년대 서울시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사는데 70년대에 만난 사람은 70년대 얘기를, 80년대에 만난 사람은 80년대 얘기를 한다. 저에 대해 뭘 알고 싶으면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큰일 난다. 나를 최근에 만난 사람에게 물어보라. 많은 언론과 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자신은 늘 변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착오적인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맞다. 이명박은 늘 변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자신의 ‘성공 신화’에 근거한 승부사형 인간 체질이다.
노무현과 이명박이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또 하나의 수법은 ‘역사의 평가’를 들먹이는 선지자형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다. 노무현의 경우엔 더 들먹일 필요도 없겠고, 이명박도 “지지를 못 받아도 시대를 앞서가는 게 낫다”고 했다. 이 점에선 두 사람 모두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외친 박정희를 쏙 빼닮았다. 이명박이 ‘개발주의 박정희’라면, 노무현은 ‘개혁주의 박정희’인 셈이다.
노무현은 박정희는 절대 찬성할 수 없지만 박정희가 목숨을 걸고 한강 다리를 건넜다는 건 평가한다는 말을 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식으로 올인을 해야 성공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자신의 승부사형 인간 체질을 실토한 셈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노무현 어록과 이명박 어록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지지를 못 받아도 시대를 앞서가는 게 낫다.” 두 사람 모두 이런 식의 표현을 즐겨했지만, 진심은 그게 아니다. 두 사람의 인정 욕구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다는 걸 폭로해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 대한 자기 방어 기제를 미리 가동한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두 사람 모두 ‘막말’을 잘 하는 걸로 유명한데, ‘막말’을 하게 된 배경도 똑같다. 두 사람의 ‘막말’은 특히 청중의 호응이 좋아 현장 분위기가 ‘뜨끈뜨끈’해질 때 나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이들의 ‘막말’은 한결같이 열혈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잦은 막말은 모두 무슨 ‘애정 결핍’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닌지 심리학자들의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라 하겠다.
결국 문제는 두 사람의 ‘성공 신화’다. 묘한 역설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코리안 드림’은 우리 모두가 반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한국의 자랑이요, 잠재력이 아닌가. 이명박도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 바 있다.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명박을 ‘진보’로 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 ‘코리안 드림’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게 대통령으로선 실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니 이 어찌 역설이 아니랴.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어떻다고 하지만, 이념의 문제를 떠나 신자유주의적 요소는 두 사람의 ‘성공 신화’에 내재돼 있다.
자신의 ‘성공 신화’에 도취되는 건 결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세월 지속된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본원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지도자의 오류를 교정할 수 없는 한국의 유별난 ‘지도자 추종주의’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코리안 드림’의 포로가 되지 않기를
이명박이 “할 수 있다” “된다는 생각으로 하면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긍정의 힘 전도사’처럼 행세하는 건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이명박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불후의 금언으로 남겨도 좋을 법하다.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행동을 불러오고, 긍정적인 행동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라의 분위기가 바뀐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좋은데, 문제는 그 이전 단계인 ‘의제 설정’에 있다. 자신의 ‘성공 신화’에 근거한 의제 설정을 혼자서 미리 다 해놓고, 이의 제기에 “해봤어?”라고 윽박지르는 건 ‘긍정의 문화’가 아니다. 긍정이 자기 위주로만 이뤄지고, 다른 생각에 대해선 부정 일변도로 나간다면, 이걸 어찌 ‘긍정의 문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도덕성이 박약한 사람들을 무더기로 고위 공직에 앉히면서 ‘긍정하라’고 외치는 반면, 그 반대의 목소리엔 긍정의 시늉조차 보이지 않는 걸 어찌 ‘긍정의 문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방통행식 ‘긍정의 문화’는 오직 자신의 승리만을 생각하는 승부사 체질의 속성이다. 국정운영을 ‘승부의 세계’로 보는 한 성공은 점점 더 멀어진다. 이게 바로 국가와 기업의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명박이 부디 자신이 이룬 ‘코리안 드림’의 포로가 되지 않음으로써 ‘성공한 대통령’의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서면 좋겠다.
* ‘강준만의 세상읽기’는 이번호로 마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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