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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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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싸움의 축복과 저주

등록 2007-08-24 00:00 수정 2020-05-03 04:25

연고정실·1극주의·입신양면… 권력집중의 효율성을 선택한 한국인의 필연

▣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조선은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실제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그런 주장을 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집요하게 했던 주장이라고 한다.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한국인들이 자학을 하느라 저항 의지를 갖지 못하게끔 하려는 속셈으로 퍼뜨렸다고 한다. 많은 역사 전문가들이 일본인들의 그런 흉계를 지적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강력 반박하고 나섰다. 몇 가지 대표적인 주장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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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vs 그렇지 않다, 제3의 균형은?

신봉승은 “이른바 ‘조선은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식민사관은 광복 이후에 태어난 지식인들의 역사 인식까지 병들게 했고, 그런 망국적인 사고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당쟁의 역사’로 매도하게 만들었다”며 “당쟁으로 나라가 망한다면 우리는 지금 망해야 한다. 패거리를 지어서 상대를 모함하고 헐뜯는 행태는 지금이 조선 시대보다 훨씬 더 유치하고 천박하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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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는 “조선의 붕당정치는 선조에서 정조 대까지 이어졌고, 당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대였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시기는 조선이 두 번째 문화 부흥기를 구가하던 시대였다. 이는 당쟁이 조선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쟁이 나라를 망쳤다고 가르친 자들은 사실 독재자와 그들에게 빌붙어 지내던 해바라기 정치인과 학자들이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아쉽다. 당쟁이 나라를 망쳤다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이 모두 ‘식민사관’에 찌들었거나 ‘독재자와 그들에게 빌붙어 지내던 해바라기 정치인과 학자들’만은 아니지 않은가. 좋은 뜻으로 ‘당쟁망국론’을 역설한 이들도 있었을 텐데, 이들이 설 땅은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일본인과 독재자에 의해 오염된 주장과 비슷한 느낌만 주는 견해라도 무조건 내쳐야 한다는 것인지 그것도 알고 싶다.

호소이라고 하는 일본인은 “조선인의 혈액에는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파싸움이 계속됐으며 이는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이다”라고 극언을 했다는데, 이는 흥분하며 상대하기보다는 그냥 일종의 ‘악질 개그’로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신복룡은 비교적 차분한 주장을 폈다. 그는 “당쟁이 부분적으로 부정적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식민지사학에서 보는 당쟁에 대한 시각에는 과장과 악의가 심할 뿐만 아니라 ‘당쟁은 곧 악’이라는 역사 인식의 주입이 집요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데 시간, 노력, 성찰의 면에서 많은 부담을 줘왔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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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신복룡은 당쟁의 성격을 ① 당시 조선조 사회가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언로(言路) ② 당시 정치 발전의 한 메커니즘 ③ 조선조 정치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한국적 유형의 정당 등으로 규정했다. 그는 “당쟁은 일본 식민지사학에서 지탄하는 것처럼 망국적인 정치 악은 결코 아니었으며, 한국정당사의 초기적 형태로 기록돼야 할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엇보다 ‘당파싸움’이라는 개념에 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이론·노선 투쟁도 당파싸움이지만, 그건 꼭 필요한 당파싸움이다. 이것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위에 소개한 세 주장은 모두 타당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보통 비난하는 뜻으로 쓰는 당파싸움은 이론·노선 투쟁보다는 이익·탐욕 투쟁을 의미한다. 이론·노선과 이익·탐욕을 명쾌하게 분리할 수 없기에 중첩되는 부분이 있지만, 일반 대중의 뇌리에 당파싸움이라고 하면 이익·탐욕 투쟁으로 각인돼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누가 어떤 악의로 퍼뜨렸건, 이젠 “조선은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속설을 좀더 정교하게 검증해볼 때가 된 것 같다. 그런 속설을 폈다간 위에 소개한 주장들처럼 욕먹기 십상인 사회 분위기도 꽤 형성된 만큼, 이젠 또 다른 의미에서의 균형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먼저 분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조선은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일본인들의 주장이 많은 한국인들에게도 먹혀들어갔다면, 그건 조선이 망해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의 힘 때문일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조선이 망했는가? 이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우리 스스로 내놓지 못한 채 “당파싸움 때문에 망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건 매우 옹색하다. 마찬가지로 최근 많은 애국적 지식인들이 “이 지구상에 500년을 버틴 왕조가 얼마나 되느냐”며 ‘조선왕조 500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운동을 펴는 것도 옹색하다 못해 어색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조(李朝)는 왜 쇠망하였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여 근세 조선은 500년이나 지속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남경희의 주장에도 수긍할 수 있는 점은 있다. 단지 망했다고 하는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500년의 과정이 외면되는 건 물론이고 폄하될 소지가 다분한 만큼 그런 질문의 선의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홍구가 “엄청난 문제점을 안고 있었음에도 조선왕조가 500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당시 지배층이 그들 나름대로 엄격한 책임감으로 사회를 지탱해왔다는 점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어느 정도 긍정할 수 있다. 물론 이 주장은 한홍구가 “불행히도 오늘날의 상류층은 그런 전통사회 지배층의 책임감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미끼로 쓴 혐의가 짙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우리 자신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나는 그것과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그리고 나중엔 우리 자신에 의해 확대재생산된 ‘자기 비하’는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구분을 전제로 하여 우리 자신에게 엄격하게 구는 것이 진정 ‘포지티브’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물론 오늘날 많은 선진적 지식인들이 한국을 다른 나라와 비교만 했다 하면 꼭 미국·일본·유럽 등과 비교해 우리 자신을 폄하하는 것엔 동의하기 어렵다. 요컨대, 무작정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무작정 폄하하는 것 모두를 극복하고 좀 냉정하게 살펴보자는 것이다.

냉정해지려면 분류의 유혹부터 극복해야 한다. “이 주장 보수야 진보야?”라는 물음부터 내던져야 한다. 그런 이분법엔 포착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유로운 논의를 위한 자리에선 그런 분류법은 잠시 폐기처분할 필요가 있다.

조선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당파싸움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텍스트’보다는 ‘콘텍스트’가 더 중요하다. 당파싸움 자체보다는 당파싸움을 둘러싼 환경과 맥락을 보자는 뜻이다. 고려할 사항으로 5가지가 있다.

첫째, 한국의 연고·정실주의 문화다. 이론·노선 투쟁으로서 당파싸움이 어렵거나 처음엔 잘나갔다가도 곧 변질되는 주요 이유다. 해방정국에서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에 대한 미국 쪽의 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게 바로 정치인들의 연고·정실주의다. 반미주의자는 ‘미국인들의 악의’라고 일축하면 속이 편하겠지만, 사실이 그랬던 걸 어이하랴. 2007년의 한국 정치도 정확히 그 코스를 밟고 있지 않은가. 연고·정실주의가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연고·정실주의를 당위와 이론만으로 전면 부정하면서 현실을 바꾸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하거나 연고·정실주의를 공적으론 배격하면서 사적으론 껴안는 이중성이 더 나쁘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려는 건 우리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어하는 이론·노선 투쟁은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적 조건이다.

‘빠’와 ‘까’, 당파싸움의 일상화

둘째, 한국의 의인화·개인화 문화다. 사람에 푹 빠지는, 인물 중심주의 문화가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는 지도자 추종주의와 연결된다. 박정희·김일성은 그런 문화의 극단적 표현이지만, 강력한 지도자를 동경하는 풍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건재하다. 이런 문화는 이론·노선 투쟁으로서의 당파싸움마저 의인화·개인화해 이론·노선을 인물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파싸움이 곧잘 감정이 폭발하는 이전투구로 변질되는 주요 이유다.

셋째, 한국의 1극주의 문화다. 권력 구조는 1극을 정점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성을 자랑한다. 승자 독식주의와 그에 따른 줄서기가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1극마저 의인화·개인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물 중심의 당파싸움으로 귀결된다. 줄서기에 따른 충성경쟁은 당파싸움의 처절성을 증폭한다. 덩달아 별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까지 ‘빠’니 ‘까’니 해서 동참하는 바람에 ‘당파싸움의 일상화’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넷째, 한국의 입신양명 문화다. 정치를 하는 1차적 목적이 국리민복에 기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위한 출세주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론·노선이 전혀 무의미한 건 아니지만, 그건 입신양명을 위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당파싸움이 ‘밥그릇 싸움’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갖는 수준을 넘어서 ‘밥그릇 싸움’ 그 자체로 변질되는 주요 이유다.

다섯째, 한국의 지정학적 구조다. 조선에 우호적인 서양 학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당파싸움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이지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백번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선 해도 되는 일을 한국에서 하면 안 되는 게 있고, 그 반대도 성립된다. 조선 후기는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사나운 ‘이리떼’에 둘러싸여 있던 시점이라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오늘날에도 그런 지정학적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파싸움의 순기능을 역설하는 서양 이론을 무조건 껴안을 수 없는 이유다.

이런 5가지 고려 사항을 감안하자면, 당파싸움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지만, 그게 이 글의 본론은 아니다. 본론은 당파싸움의 두 얼굴이다. 역기능과 더불어 순기능도 있었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순기능으로 여러 세력 간 감시·견제 기능을 꼽는다. 오늘날에도 이런 장점은 살아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그건 바로 당파싸움이 숙성시킨 전투적 기질과 위험을 무릅쓰는 강한 모험정신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압축성장을 기록했다. 서구에서 최소 150년에서 200년은 걸렸을 변화를 한국은 불과 30~40년 만에 해치웠다. 한국은 1960년대 이래 30년 동안에 서구의 300년을 압축해 따라갔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30년에 300년을 산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분들도 있다.

이른바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살고자 하면 죽고, 죽을 각오로 임하면 산다)은 이순신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인의 기본적인 삶의 철학이 된 지 오래다. 물론 늘 그 정신을 실천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과감하거나 무모한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당파싸움 체질은 한국 사회의 다양성 존중을 반영하는 동시에 다양성 진작에도 크게 기여했다. 물론 다양성을 나쁘게 말하면 분열주의지만, 분열하지 않고 어떻게 다양해질 수 있겠는가. 한국만큼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거의 없다.

분열하지 않고 어떻게 다양해지랴

나는 당파싸움이 망국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지만, 그걸 인정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동시에 나는 당파싸움이 성공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지만, 그걸 인정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성패를 결정지은 건 늘 상황과 맥락이었다. 개화기 시절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인들의 첫 번째 특성으로 게으름과 느려터짐을 지적했지만, 한국인들은 조선을 떠나는 순간 무섭게 일했고 빨라졌다.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이 세상엔 축복과 저주가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당파싸움도 그런 경우다. 당파싸움은 권력집중의 효율성을 높이 평가해온 한국인들의 선택이 낳은 필연적 결과다. 권력집중을 계속 유지하면서 당파싸움을 완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삶의 구조하에선 남 잘되는 꼴을 죽어도 못 보는 사람들이 많다. 배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자신도 죽어라 하고 노력해야 한다. 한국인은 그렇게 해왔다. 그래서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피곤하고 만족은 영원한 신기루가 되고 만다.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매우 낮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파싸움, 적당히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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