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조금 엉뚱한데, 대선에선 고양이 한 마리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얘기이긴 합니다만.
지난 10월 서구 언론들은 미 대선의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따뜻한 이미지가 ‘삭스’라는 고양이 때문에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힐러리는 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의 당선 이후 백악관에 삭스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삭스는 백악관의 또 다른 애완동물인 사냥개 ‘버디’와 함께 꽤나 유명세를 탔고, 힐러리의 차가운 엘리트 인상을 부드럽게 하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힐러리는 미국의 아이들 50여 명이 두 애완동물 때문에 보내온 편지를 묶어서 (Dear Socks, Dear Buddy)라는 책을 내기도 했으니까요.
문제의 씨앗은 클린턴 부부가 2001년 백악관을 떠나며 뿌려졌습니다. 힐러리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며 삭스를 클린턴의 비서였던 베티 커리에게 맡겼습니다. 언론이 이 옛일을 끄집어내 힐러리를 입길에 오르게 했습니다. 힐러리가 그동안 모성애와 부드러운 이미지를 내세우며 특히 여성 유권자들을 파고들었는데, 삭스의 처지를 보니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는 냉혹한 사람’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힐러리가 “애완동물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입양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과 행동이 달랐다는 거지요.
미국인들의 남다른 애완동물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삭스의 사례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검증 시스템의 무시무시함에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6년 전의 고양이까지 끌어내 검증의 칼날을 들이댔으니 말입니다. 고양이에 대한 힐러리의 태도가 대통령감인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지와는 별개로 때론 가혹하리만치 공격적인 후보 검증에 주목하게 됩니다. 언론 검증이 ‘건강한 무자비함’을 유지할 때만 유권자가 제대로 된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사건’에서 ‘사법적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경준씨가 검찰의 발표 내용을 부인하고 검찰이 자신을 회유했다는 역주장을 편데다, 핵심 사안인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소유주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분분합니다.
은 지난 7월부터 BBK와 김경준씨,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의혹을 집중 추적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과정에서 기준으로 삼은 게 있다면 아마도 ‘검증의 제1 원칙은 건강한 무자비함’이라는 것, 그리고 ‘지도자의 제1 덕목은 정직’이라는 것 두 가지였을 겁니다. BBK에 대한 이명박 후보의 ‘달라지는 말’에 유독 주목한 이유입니다. 물론 그 검증의 순간마다 김경준씨의 주장과 이명박 후보의 반박을 공평하게 의심했는지, 그리고 합리적 판단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는지는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숙제겠지요.
은 이 두 기준 아래서 BBK 보도에 더욱 충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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