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성형수술의 경제학

등록 2007-12-14 00:00 수정 2020-05-03 04:25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성형수술이 좋으냐 나쁘냐와 같은 복잡하고 요란한 논란에 나 같은 필부가 어리석은 말을 덧붙일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그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금융화에 수반해 나타나는 ‘만물의 자산화’나 ‘만인의 투자자화’와 같은 사회현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만 잠깐 생각해보려고 한다.

몸과 얼굴도 하나의 자산?

먼저 ‘소유’. 이것이 서양에서 제일 처음으로 정의된 바는 고대 로마법의 ‘도미니움’(dominium)이라는 개념이었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못 쓰게 만들’(perish) 수 있을 만큼의 절대 권한이라고 정의되었다. 애초에 쓸모가 있어서 소유물로 거두었을 테니 그렇게 ‘못 쓰게 만들’ 일이야 있으랴만 그저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소유자의 절대 권한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투자자’는 ‘소유자’와 다르다. 소유자는 자신의 소유물을 사용가치, 즉 구체적인 쓰임새로 바라보지만 투자자는 그것을 교환가치, 즉 지금 시장에 내다팔았을 때 얻을 수 있는 가격, 즉 ‘자산가치’로 바라보게 마련이다. 예전의 소유자들은 그 소유물의 물리적·생물학적 성질에 나름대로 적응해 그것을 잘 ‘사용’하려고 했다. 은하수만큼이나 긴 숫자를 늘어놓으며 자신이 소유한 별을 헤아리던 이에게 어린 왕자가 소유란 “그것과 내가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나지막이 꾸짖었을 때의 소유가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에게 그의 소유물은 무슨 수를 쓰든 시장가치를 극도로 끌어올려야 할 ‘자산’이다. 따라서 그것과 ‘친구가 되기’는커녕 고대 로마법 도미니움의 ‘못 쓰게 만들’ 만큼의 극한적 수단까지 동원해 그것의 자산가치를 올리기 위해 바꾸고 또 바꾸는 ‘칼질’을 서슴지 않는다. 이것이 80년대 미국에서 기업의 ‘자산화’가 본격화한 이후 그 주주들, 즉 ‘투자자’들이 서슴지 않고 행한 대규모 ‘구조조정’, 즉 부서 통폐합과 수천 명 정리해고의 이면에 작동하고 있는 논리다.

사람이 사람의 외모를 바라보는 관점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관상 보는 점술가, CF 감독, 기업의 면접관, 공항의 입국심사관, 어제 만난 남녀와 10년 사귄 애인, 에 나오는 인육 백정 등은 모두 각각의 관점에서 사람의 얼굴과 몸을 바라볼 것이다. 그런데 만물이 자산으로, 만인이 투자자로 변해가는 거스를 수 없는 21세기의 흐름 앞에 우리가 우리의 얼굴과 몸을 바라보는 관점도 ‘자산’을 바라보는 ‘투자자’의 관점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금융화의 물결이 여기까지

성형수술을 하게 되는 동기는 사람마다 가지가지일 테니 그 개개인들의 속사정도 모르는 국외자가 이러쿵저러쿵할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 동기가 스스로의 몸과 얼굴을 하나의 ‘자산’으로 보아 그것의 가치를 올려야겠다는 것이라면 이는 전형적인 ‘투자자’의 행태요 수술실의 ‘칼’도 구조조정으로 노동자 수천 명의 목을 치는 칼과 본질적으로 동일할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경우에 한해서는 성형수술이란 수술실의 칼을 사용해 자신의 자산인 몸과 얼굴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행하는 일종의 구조조정이라고 하는 것이 직근유(genus)와 종차를 밝힌다는 사물 분류법에 합당한 사고라 할 수 있다.

우리말 ‘얼굴’의 옛말은 ‘얼골’이었다. ‘얼’이 깃들어 있는 ‘골’(洞·동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기업에서 정리해고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이들도 모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참으로 고충이 많을 것이다. 설령 ‘구조조정으로서의 성형수술’을 결정한 이들도 여러 고민과 희생을 각오해 내린 결정이니 타인들의 비난이나 비판 따위는 언감생심 당치도 않은 일이리라. 이 짧은 글은 단지 금융화의 물결, 그리고 그로 인한 만물의 자산화와 만인의 투자자화의 물결이 이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이 깃들어 있는 바로 문턱까지 와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적어본 잡문일 뿐이다.

* 경제평론가 정태인씨가 개인사정으로 연재를 마치고, 이번호부터는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인 홍기빈씨가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