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여러 해 전, 우리 쉼터에 일자리를 옮기려는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들이 대거 모여 있을 때다. 십수 명이 대여섯 달씩이나 일을 못 구해 애타는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본래 규정대로라면 업체 이동 기간에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앙회)가 숙식을 책임지게 되어 있었지만 중앙회는 그 책임을 완벽하게 외면했다. 연수생들은 잠자리는커녕 밥 한 끼 먹을 돈조차 없어 고통받았는데, 심지어 노숙을 하는 이도 있을 지경이었다.
중앙회가 꺼내 쓴 돈 이자만 25억
그때 연수생 중에 재미난 이야기꾼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권세깨나 누린다는 장관 차를 운전했다는데, 자기가 보고 들은 온갖 정치 비화를 재미나게 풀어냈으니 그 인기가 날로 새로웠다. 한데, 그의 이야기 하나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장관 수하에 인력 송출회사 사장이 있었는데, 장관은 그 사장을 비호해준 대가로 젊은이들 몇을 한국 연수생 티오(TO)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단다. 그때 장관과 사장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송출 비용을 너무 많이 받는 것 아니냐는 장관의 질책에 사장이 답하기를, 송출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한국에 엄청난 로비 자금을 풀었으니 그것을 벌충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란다. 그는 장관 덕에 집 두 채 값이나 되는 웃돈을 내지 않고도 한국에 올 수 있었다며 은근히 자랑까지 했다. 그 이야기 때문에 늘 기죽어 있던 동료들이 새삼스런 분노를 터뜨리며 관리회사로 몰려가, 빨리 일자리를 달라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오래전부터 민간단체들은 중앙회가 연수생 송출 관련 비리에 깊이 연루돼 있음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중앙회는 물론이요, 관리감독기관인 중소기업청까지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실로 연수제도가 ‘노예제도’라고까지 불리게 된 과정을 보면, 노동자성 불인정과 같은 제도적 결함 외에도 중앙회와 같은 이익집단에 운영권을 주어, 조직과 관계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제대로 감시하거나 단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증폭된 측면이 무척 크다.
지난 7월11일, 감사원은 ‘외국인산업연수제도 운영과 관련한 중소기업중앙회의 업무처리 및 중소기업청 지도·감독의 적정성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를 보면 중앙회가 중소기업의 뒷심이 되어주기는커녕 얄팍한 속임질로 뒷돈이나 챙겨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회는 2003년부터 2007년 3월까지 업체에 연수생을 배정할 때 받는 연수관리비로 총 12억5천만원을 부당 징수했다. 무려 5900여 업체가 피해를 당했다. 그리고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연수제도 운영비’에서 마음대로 빼쓴 돈이, 2006년 인건비로 6억원, 연수제도와 무관하게 사무실 임대와 자동차 구입에 쓴 돈이 6억원이란다. 게다가 몇 년간 마음대로 돈을 꺼내 쓰고 떼먹은 이자만 해도 무려 25억원이라고 한다. 감사원도 차마 몽땅 조사하지는 못했는지 최근 내용만 밝힌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연수제도가 운영된 지난 13년간 얼마나 많은 돈을 몰래 삼켰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연수제도는 중앙회의 ‘돈줄’이었던 것이다.
송출 비용도 밝혀라
중앙회는 연수제도 폐지가 논의되던 2000년부터 온갖 로비와 대규모 집회를 동원하며 ‘반대운동’에 주력해왔다. 중소기업들은 중앙회가 그리 뒤통수를 치는 줄도 모르고 ‘연수제도 폐지 반대 집회와 서명운동’에 끌려다니며 땀을 흘렸으니, 아마 지금쯤은 그 진실을 깨닫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일은 연수생들의 목을 졸랐던 송출 비용과 중앙회의 관계를 따져보는 것이다. 연수생들이 송출업체에 갈취당했던 그 돈이 어떻게 중앙회로 흘러들었는지를 밝혀야만 비로소 연수제도의 역사가 정리될 것이다. 연수제도는 사라졌지만, 그 역사를 정리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중앙회와 그 구성원들이 고스란히 고용허가제 운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야만 중소기업의 권익 또한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무안공항 181명 탄 제주항공 외벽 충돌…최소 28명 사망
[영상] 무안 항공기 생존자 “한쪽 엔진서 연기 난 뒤 화재”
한덕수는 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을까
전광훈 집회서 큰절한 윤상현 “탄핵 못 막아, 사죄…민주당이 내란세력”
[속보] 소방청 “무안 항공기 최소 28명 사망·2명 구조”
윤석열, 3차 출석요구도 불응…공수처 체포영장 검토할 듯
[속보] 국힘 “무안 항공기 추락사고, 인명구조 최우선으로 임해 달라”
[속보] 이재명,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에 “모든 지원 다할 것”
[속보] 무안 항공기 충돌 최소 47명 사망…2명 구조
[속보] 최상목 권한대행 “무안 항공기 사고, 인명 구조에 총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