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역시 ‘난년’은 다르다, 고 첫 문장을 시작하려다 심호흡을 고른다. “괜찮을까?” 옆 자리에 앉은 박아무개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예상대로다. “음, 남자인 당신! 잘 생각해야 될걸?”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단군 이래 가장 대담한 학벌 사기로 서울 주요 대학의 교수 자리와 내로라하는 일간지의 고정 칼럼니스트, 그도 모자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미술축제의 예술총감독의 자리에 오른 신정아씨를 표현할 다른 말이 있을까. 도하 신문은 “우리 학계 검증 능력의 부재”를 우려하는 한탄조의 사설과 “외국 박사라면 모두 껌뻑 죽는 학벌 지향 사회의 폐해를 보여줬다”는 공자님 말씀으로 지면을 도배하는 중이다. 그러나 기뻐하자! 그동안 남성만의 세계로 여겨졌던 ‘사기’(詐欺) 업계에 빼어난 여성 신예가 나타났다는 것만으로 축하해야 할 일은 아닐까. ‘신정아 사태’는 해방 이후 62년 만에 우리나라 양성평등이 비로소 질적인 도약을 했다는 증거로도 읽히는데, 뭐라, 안 웃긴다고? 그럼 말고!
그는 아마도 세상의 질서를 부정하고 싶었던 휴머니스트였는지도 모르겠다. 서울구치소 교도관 Y. 그는 서울구치소에 근무하던 지난해 사형수 L과 인연을 맺게 된다. 싸늘하게 부는 가을바람에 마음이 스산해지던 지난해 11월, L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Y에게 진지한 얼굴로 부탁을 한다. “형님, 어떻게 담배 한 대만.” 집으로 돌아온 Y는 이불을 뒤척이며 밤새워 고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한 대로 시작된 담배는 한 갑으로 늘었고, 결국 통닭, 족발, 보쌈 등으로 메뉴도 다양해졌다. 족발에 쌈장을 찍으며 다른 날은 통닭에 소금을 찍으며, 사형수 L은 행복했을까. Y는 L을 잘 아는 사람에게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8차례에 걸쳐 1800만원을 통장으로 송금받았다. 그런 돈을 통장으로 받은 것을 보면, Y는 세상 물정 모르는 휴머니스트거나, 간이 배 밖에 나온 생양아치 부패 공무원이었을 것이다. L은 비릿한 돼지 비계를 씹으며 행복했을까, Y는 족발에 새우젓과 풋고추도 잊지 않았을까.
요즘은 어딜 가나 주식 얘기다. 동네 이발소에 머리 깎으러 가서도, 회사 근처 허름한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을 때도, 심지어 올해 환갑을 맞은 어머니와 텔레비전을 볼 때도 “지금이라도 들어가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뿐이다.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1천대 초반에서 놀던 종합주가지수는 불과 몇 달 만에 1900선을 찍었고, 이제 2천 돌파를 앞두고 있다. 연초마다 올해 시황 전망을 하며 “올해엔 2천까지 갈 수 있습니다”라고 침 튀겨대는 사람들을 보며 “너도 먹고살기 힘든가 보다”고 측은지심을 가져왔던 터다. 조금 더 기다리자. 세탁소 박씨 아저씨와 117동 수위 아저씨가 주식 투자로 팔자 고쳤다는 얘기가 들려올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유치원 꼬마들과 동네 강아지들까지 앞다퉈 증권회사로 달려가는 순간, 지체 없이 모든 주식을 투매해야 한다.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리니, 시장은 곧 추락할 것이고, 많은 경우 추락하는 것들에게 날개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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