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현 자유기고가 groove5@naver.com
학벌[hakb∂l] 명사. 學閥
학문을 닦아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출신 학교의 사회적 지위나 등급. “우리 회사는 학벌보다는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문장이 무리 없이 성립하는 것으로 보아 학벌과 실력은 서로 반대의 뜻을 지니기도 한다. 때론 학벌이 재벌, 군벌, 문벌처럼 파벌의 하나로 작용한다. 폐쇄적인 무리는 때때로 부조리한 이득을 취한다. 1등급 학벌은 수요를 부르고 고객은 뒷거래로라도 인기 상품을 손에 넣고자 한다.
그래서 1993년 1월에는 한 고교 교사가 대입 수험생 부모에게 돈을 받고 대입 시험을 대리로 봐줄 대학생을 구해주다가 적발됐다. 2000년 12월에는 서류를 몽땅 위조해 명문대학에 입학한 재외국민 부정입학 사건이 있었고, 2004년에는 20대 여성 에로배우가 ‘서울대 출신’을 사칭해 연예기획사에서 2500만원의 계약금을 받아낸 사건도 있었다. 모두 학벌을 뜯어고치다가, 혹은 뜯어고치는 성형수술을 끝내자마자 잡히는 바람에 수술 효과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예일대 박사로 학벌 수술을 하고 금호미술관의 이름 없는 아르바이트생에서 동국대학교 교수로,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올라선 신정아씨의 화려한 사기극이 드러나면서 한국 사회에서 학벌 위조 수술은 성형수술처럼 할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실험 데이터를 남기게 됐다.
서울대 출신과 비서울대 출신, 유학파와 비유학파, 강남 주민과 비강남 주민.‘나는, 내 자식만은 비를 맞게 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학벌주의의 촉매제다. 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자크 들로르, 영국 존 메이저 전 총리,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 배우 우디 앨런. 대학 졸업장 없이 성공한 이들의 이름이 힘없이 열거된다. ‘정의구현사전은 서울대 출신의 유학파 필자가 집필하는 코너’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쨌든 다음주에 한 명 더 보는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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