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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대선 출마 ‘아무나 시대’

등록 2007-07-13 00:00 수정 2020-05-03 04:25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역사가 그를 무죄로 하리라. 30대 탈북자가 북한에 돌아가 부인과 몇 달씩 살면서 딸까지 낳았단다. 남한에서 숙박업소 종업원으로 일했지만 ‘남한에 와보니 실제 돈 벌기가 힘들고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북으로 돌아가 아내, 딸들과 살았단다. 혹시나 탈북한 남쪽의 어머니에게 누가 될까봐 다시 남으로 돌아와 살다가 잡혔단다. 그렇게 두 번이나 북한에 살다가 왔단다. 스릴도 넘치고, 가슴도 아프다. 도대체 이분이 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남북의 가족을 고르게 사랑한 죄밖에 없지 않느냐 말이다. 남북의 공안을 우롱하고 국경을 비웃으며 자유 왕래를 실현한 이분을 21세기의 문익환, 한국의 빠삐용이라고 칭한다면 오버인가. 차라리 허술한 ‘국경의 북쪽’을 지키는 조·중 국경수비대를, ‘국경의 남쪽’의 보안을 담당하는 경찰을 수배하라.

정녕 라면의 신화는 깨지는가. 빛나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유구한 역사에서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군신화에서 쑥과 마늘이 담당한 결정적 구실과 다르지 않았다. 반세기 승리의 역사에서 라면을 빼면 국물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일찍이 쌍팔년도 아니고 팔육년도에 우리의 임춘애 선수는 10대 소녀의 가냘픈 몸으로 무려 3관왕에 올랐다. 언론은 일제히 “라면을 먹고 뛰었다”며 그의 헝그리 정신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이렇게 라면의 역사는 불패의 역사였다. 유구한 전통에 따라서 노무현 선수는 과테말라 동계올림픽 유치대회에서 식사를 라면으로 ‘때우며’ 뛰었지만, 푸틴 선수의 소치에 역전을 당했다. 이제는 정녕 라면‘빨’의 헝그리 정신이 통하지 않는 시대인가. 하기야 임춘애 선수도 나중에 라면도 먹었지만, 라면만 먹었던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지 않았던가. 정녕 라면의 신화는 조작된 신화였던 것인가.

역시나 이 모든 것은 노무현의 탓인가 아니면 노무현의 공인가. 3김 시대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분들도 줄줄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유력이 아닌 후보에서 시작해 끝내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보 노무현’의 신화는 대통령 출마의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효과를 낳았다. ‘개천에서 용나는’ 신화가 필부들에겐 깨졌지만, 대통령 선거에 대해선 오히려 강화된 것이다. 더구나 그의 치정으로 여권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여권 대통령 후보 자리는 무주공산이 되었다. 이렇게 양날의 칼을 휘두르신 ‘바보 노무현’의 행적을 따라서 숱한 ‘혹시나’ 후보들이 출마를 선언했다. 김민석, 추미애 정겨운 그분들의 이름이 나오더니 결국엔 이인제 삼수생마저도 나섰다. 이분들이야 극구 범여권이 아니라고 손사래치겠지만, 남들이 ‘범여권’으로 꼽는 후보만도 20여 명에 이른다.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재의 지지율 따위야 뭐 그리 문제가 되리오. 이렇게 대통령 후보 출마의 대중화는 성취됐다. 역시나 모든 것은 노무현 탓이거나 노무현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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