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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스타] 투사 헬렌 켈러

등록 2007-07-13 00:00 수정 2020-05-03 04:25

▣ 박상철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justin22@hani.co.kr


생후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헬렌 켈러. 7살에 만난 설리번 선생의 헌신과 강한 의지로 장애를 극복하고는 20살에 대학에 입학하며 말한다. “난 더 이상 벙어리가 아닙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어린이 위인전’에서 읽은 헬렌 켈러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이후에 헬렌 켈러는 어떻게 살았을까? 동화에서처럼 멋진 왕자님을 만나 잘 살았던가?

지난 5월 교육방송의 는 ‘미국의 우상’이란 제목의 동영상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헬렌 켈러의 그 이후의 삶을 조명했다. 그 내용이 이글루스 등의 블로그를 통해 퍼지면서 뒤늦게 ‘헬렌 켈러의 진실’이 누리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동영상은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첫 번째 부분은 ‘모두가 알고 있는’ 그녀의 20살까지의 이야기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헬렌 켈러가 88살에 숨을 거두기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다. 헬렌 켈러는 ‘장애를 이겨낸 기적의 여인’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그 불굴의 의지로 사회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동영상을 보면, 그녀는 29살에 미국 사회당에 입당했고, 여성 참정권 운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도 참여했다. 한 미국 쇼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자, 그녀는 “쓸모보다 목숨이 길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1차 대전 당시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일에 선전포고한다”고 선언했을 때는 “수많은 흑인을 학살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배자는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에서 “헬렌 켈러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고 수군거리자 그는 “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 빈민가에도 방문했다. 볼 수 없을지라도… 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라고 자신의 의지를 설명했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한 헬렌 켈러에 대해 우리 사회는 왜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을까? 동영상에서는 그 이유에 대해 “헬렌 켈러의 감춰진 삶은 FBI(연방수사국)의 감시 속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사회와 여론은 그녀가 ‘투사’가 되는 것보다는 ‘기적의 여인’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동영상과 블로그의 글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한 누리꾼은 “어른이 된 헬렌 켈러를 사회운동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사람이었군요. 존경스럽습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는 글 감사드립니다”라고 썼다. 또 다른 누리꾼은 “정말 그 이후의 삶은 몰랐네요. 장애를 극복한 것만큼이나 위대한 삶을 살았군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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