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아마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건 기자는 없을 것이다. 강대원 전 남대문서 형사과장. 지난 몇 해 동안 한국 사회를 뒤흔든 강력 사건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2004년 유영철 연쇄 살인사건 때가 그랬고, 지난해 용산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 때도 그랬다. 그는 굵직한 강력 사건의 수사 책임자로 기자들과 부딪치며 말로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애증의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냈다. 아들과 싸운 술집 종업원들을 두드려팬 대기업 회장님의 사건 중심에, 어라! 또 그가 있었다. 그가 일을 몰고 다닌 것인지, 일이 그를 따라다닌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는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조폭 두목과 세 번 만나 밥을 먹었고, 마지막 만남이 있은 지 이틀 만에 조폭은 해외로 도피했다. 강 과장은 여러 게시판을 옮겨다니며 “언론의 횡포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글을 퍼날랐고, 한화 쪽의 금품 회유가 있었다는 말을 흘렸다가 다시 주워담았다.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궁지에 몰려 살아남고 싶었을까. 자기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알고 있을까.
아마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건 기자는 없을 것이다. 경기도 가평에 사는 함형욱씨. 자신의 집 앞을 지나는 서울~춘천 고속도로 민자건설 사업을 막기 위해 몇 년째 동분서주하는 중이다. 현대산업개발 등 6개 회사로 꾸려진 ‘서울~춘천 고속도로 주식회사’는 2009년 8월까지 서울~춘천 사이에 길이 61.4km짜리 길을 내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교통수요 예측치를 뻥튀기했고, 이를 잡아내야 할 국토연구원은 날림 검토를 했으며, 사업 전반을 심의해야 할 기획예산처는 위원들의 ‘팩스’ 심의서로 위원회를 대체했다. 엉터리 수요 예측으로 건설자본들은 산을 쪼개고 들을 갈라 길을 닦는데, 통행량이 목표치에 미달하면 그 돈을 메우는 것은 시민들의 세금이다. 해도해도 너무하다고 느꼈는지 국책연구기관인 교통연구원은 5월26일 공청회를 열어 “쓸데없는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중단하라”고 제안했다. 함씨의 투쟁은 승리할 수 있을까.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 대한민국 만원짜리 지폐의 가운데나 살아생전 한 번도 가보시지 못한 덕수궁 안뜰, 또는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 구석에 한 손에 책을 든 한결같은 뻘쭘한 자세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계시다. 5월 어느 봄날 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또 하나의 세종대왕이 탄생하셨다. 우리 해군의 장거리 작전 능력을 가능케 하는 이지스 방어체계가 장착된 차세대 구축함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다. 우리가 모두 아는 청와대의 그분은 “앞으로 2호, 3호의 이지스함을 비롯해 차기 호위함, 3천t급 잠수함 등이 갖춰지면 우리 해군은 명실상부한 대양 해군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중국은 미 군함에 대항할 수 있는 대형 구축함 4척을 러시아에서 사들였고, 일본도 이지스함의 수를 8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세종대왕의 영역은 만원 지폐와 덕수궁 안뜰과 초등학교 운동장을 넘어 남해 바다까지 확장됐는데, 그 배가 동북아에 평화를 가져올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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