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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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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미래

등록 2007-01-26 00:00 수정 2020-05-02 04:24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1. 발렌베리의 경우
1856년 은행으로 출발해, 5대를 거치며 현재 스웨덴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40%가량을 차지한 대표적 가족경영 그룹입니다. 한 해 20조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하는 통신장비업체 에릭손을 비롯해 ABB, 일렉트로룩스, SABB 등 세계적 기업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발렌베리는 이들 기업보다 사회적 책임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받습니다. 발렌베리 일가가 아니라 발렌베리재단이 지주회사를 통해 계열사를 소유하고, 계열사는 각각 독립기업으로 운영됩니다. 수익의 대부분은 재단을 거쳐 과학·기술 발전 자금으로 전해집니다. 지주회사인 인베스터의 피터 발렌베리 명예회장과 야코브 발렌베리 회장은 자산이 각각 200억원과 60억원 안팎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발렌베리는 소유지배구조의 투명성과 노조의 경영 참여, 세금 인상 등이 뼈대인 ‘사회적 대타협’에 참여해 기업의 공공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기업과 정부, 노동자 세력의 상생 모델입니다. 발렌베리의 가족경영은 일반주보다 의결권이 수십 배 높은 차등주로 보호받습니다.

2. 존슨앤드존슨의 경우

1887년 로버트 우드 존슨과 제임스 우드 존슨 형제가 시작한 가족경영 기업은 세계적 명성을 지닌 건강·의약품 제조업체로 발전했습니다. 존슨앤드존슨은 로버트 우드 존슨 2세가 1963년에 물러나면서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겼고, 40년이 넘게 전문경영인 체제가 이어져옵니다. 창업자를 기리는 존슨 재단이 2%가량의 지분을 지니고 있을 뿐, 대부분의 주식은 연·기금과 일반 투자자 등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신 전문경영인은 로버트 우드 존슨 2세가 1943년 정립한 창업자의 ‘신조’(크레도)를 철저히 지킵니다. 이 크레도는 경영진이 소비자와 임직원, 사회, 주주에 대해 어떤 책임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크레도에 얼마나 충실한 인물인지 여부는 최고경영자 선출의 주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3. 삼성의 경우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삼성상회의 문을 연 뒤 이제 70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2005년 기준으로 매출 144조원, 순이익 9조6천억원을 기록하는 등 그 위상은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신뢰와 사랑이라는 관점에 서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이건희 회장은 4%대의 일가 지분으로 순환출자 등의 방식을 동원해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합니다. 특히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발행 등을 통해 경영권을 외아들 이재용씨에게 몰아준 것은 큰 도덕성 논란을 낳았고, 사법적 판단의 최종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대주주가 절대지분을 갖고 있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지배구조를 갖춰야 하는 상장기업의 경영권은 사유물이 될 수 없다. 사유재산의 이전과 경영권 세습은 차원이 다르다”(2006년 7월 대한상의 강연)고 주장합니다.

전무 승진과 함께 삼성전자의 최고고객경영자(CCO)를 맡으며 ‘3세 경영시대’에 한층 다가선 이재용씨와 삼성은 이 문제 제기에 답해야 합니다. 삼성의 미래는 어찌 보면 또 하나의 한국 사회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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