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연임’ 대통령제 개헌을 제안했을 때 1987년의 ‘뜨거웠던 거리’가 떠올랐습니다. 그해 4월13일 전두환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며 발표한 ‘호헌 선언’은 광범위한 대중 투쟁에 기름을 끼얹었고, 전국은 자욱한 최루탄 연기와 “호헌 철폐, 독재 타도”의 외침으로 뒤섞였습니다.
그런 어느 날 오후, 광주 도심에서 시위에 열중하다 한 대학 선배와 조우했습니다. 중앙 일간지의 사회부 기자로 광주로 출장을 온 그는, 그 순간 ‘기록자’가 아니었습니다. 기자의 목숨이라는 펜과 취재수첩은 그의 손에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깨진 보도블록 조각을 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조금은 감격적인 포옹에 이어, 팔을 치켜들고 “호헌 철폐”를 외쳤던 모습이 흐릿한 영상으로 어른거릴 따름입니다. ‘그때는 기자도 시위대의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만큼 참 절박했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이제 오늘로 돌아와봅니다. 노 대통령은 “역사적 책무”라는 진정성의 이름으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야당의 반대를 돌파할 무기로 ‘국민적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국민의 힘은 개헌의 중요한 추진력이었습니다. 국민의 분출된 열망이 관철해낸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개헌’입니다. 1960년 4·19 혁명 뒤의 내각제 개헌, 87년 6월항쟁의 결과인 직선제 개헌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강행한 유신 개헌의 동력이었던, 강압적이고 물리적인 통치력과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국민의 절대적 동의가 뒷받침된 두 사례에서 개헌은 사실상 선(善)이자 정의(正義)였습니다.
강압이나 물리력과 애초부터 거리가 먼 노 대통령으로선 국민의 동의 외에 기댈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국민은 4년 연임 개헌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 ‘국민이 없는 개헌’ 국면이 연출됩니다. 근본적으로 대통령 4년 연임제가 5년 단임제보다 ‘선’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탓입니다. 국민이 무지해서일까요? 아닙니다. 국민의 절대 관심사인 양극화 심화나 높은 실업률, 집값 불안,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 저하 등이 권력 구조의 변화로 해결된다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노 대통령식 개헌에 절박해하지 않습니다. 국민은 오히려 되묻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진 것이 대통령과 여당의 무능, 그리고 개혁의 부재 탓이지 5년 단임제 때문이냐”고.
게다가 87년 이후 20년 동안 한국 사회의 변화가 요구하는 평화 체제 구축과 사회·경제적 형평성 제고,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등의 과제는 노 대통령의 제안에서 배제돼 있습니다. 이런 ‘절름발이’식 개헌론으론 국민이 참여하는 생산적 논의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노 대통령을 이번 644호의 표지에 올립니다. 고개를 조금 수그린 작은 모습의 노 대통령과, 그의 앞으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그가 내놓은 개헌안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표현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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