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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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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디자이너 만만세

등록 2007-01-12 00:00 수정 2020-05-02 04:24

▣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별별 직업이 등장하고 별별 것이 학문으로 행세하며, 특히 대학에 별별 학과가 설치되는 세상이라 엔간한 것에 놀라지도 않게 되었지만 ‘행복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행복 관련 베스트셀러 저자들이자 최고 인기 강사로서 ‘행복학’이란 학문까지 이룩해 놀랍다. 올 대학입시에서도 새롭고 실용적인 희한한 학과가 인기를 끌었다는데, 새해에는 행복학과가 생기고 ‘행복 디자이너’라는 행복학 전문가들이 대학에서 엄청나게 쏟아져나와 우리 사회를 곧 행복하게 만들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고 느낀다더니 이젠 행복도 아는 만큼이로구나! 아, 행복한 21세기여!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지수는?

그것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붐으로 상당한 돈을 가지고 행복해지려고 훈련만 하면 행복해진다고 하니, 나처럼 행복은커녕 불행하기 짝이 없는 독재·범죄·분쟁·노동·빈곤 등을 고민하는 불행 디자이너보다는 얼마나 행복한가!

사실 우리나라만큼 행복학이 성장할 가능성이 큰 나라도 없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보급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호기심과 획일성과 첨단화의 풍토가 있고, 국민 모두가 행복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 우리에게 무슨 ‘주의’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돈과 지위를 포함한 행복주의(물질? 산업? 상업주의나 경제성장? 발전, 국민소득주의라고 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행복한 말인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의는 입만 벌리면 누구나 외치는 자유주의나 민주주의도 아니고, 또는 국군통수권이나 사립학교법 문제 등을 놓고 욕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아니다. 사실 자유로부터의 자유가 그리울 정도로 자유가 넘쳐나 이젠 자유가 방종도 아니게 되었지만 그것도 오로지 소유의 자유, 소유의 방종을 향한 행복인 판이다. 보수도 진보도, 빈민도 부자도, 도시도 시골도, 남녀도 노소도 모두 소유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주의자일 뿐이다.

따라서 행복은 소유가 아닌, 아니 소유의 부정인 무소유에서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하면 이는 최소한의 정신적 행복의 강조이기는커녕 정신 나간 미친 소리로 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하늘이 내린 행복 디자이너인 종교인도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라는 행복을 얻어주겠다고 열심히 빌고 빈다. 이처럼 모두 행복교인 점에서 똑같은 종교가 세계 최고로 성행하는데 행복학이 어떤 학문보다 하늘의 말씀으로 진리인 것이야 물어 무엇하랴?

그럼에도 왜 우리의 행복은 세계에서 100위권 정도일까? 게다가 미국은 우리보다 더 못한 150위권임에 비해 교육 정도가 낮아 행복학이란 걸 알지도 못하는 극빈국들이 제1위부터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돈과 행복학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난이 행복이고, 특히 지금 우리에게는 자발적이고도 창조적인 가난이 필요하며, 이제는 더 이상 발전이라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학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행복학을 배우지 못해 불행한 존재인가?

소유욕을 극복해야 행복이 온다

내가 공부한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은 최저한의 인간다운 노동 조건과 기본생활의 보장이 행복의 기본으로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부자의 경제적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소유를 행복의 척도로 삼는 곳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모든 개인의 자발적 가난에 의한 양보 외에는 달리 해결할 수 없다. 나아가 정신적 자유와 달리 경제적 자유가 제한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종래 인간의 창조적 기능이었던 학문과 예술마저도 강력한 사적 이해관계와 소유제도에 종속된 우리 현실에서 무엇보다 소유욕을 극복해야만 최저의 인간적 존엄과 가치가 회복될 것이다. 끝없이 뻗어가는 탐욕과 갈망, 지칠 줄 모르고 확장하는 사적 이익을 넘는 자발적 가난이 없이는 어떤 행복도 없다.

우리의 고질적인 가난에 대한 공포가 불행에 대한 공포로 변한 가운데 등장한 행복 디자이너들이, 특히 새해에 등장한 ‘행복 정치인’들이 과연 우리에게 행복을 내려줄까? 그리고 그 행복 디자인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재벌 자유기업 만만세’의 상품 행복이 한반도를 뒤덮어 올해는 드디어 저 지겨운 녹색 건강상품이 끝나고 분홍색 행복상품이 유행해 저 행복한 연예인들이 총궐기하여 그 광고 선전에 나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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