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12월10일 대추리를 다녀왔습니다. 제겐 처음 길이었습니다.
이 ‘올해의 인물’로 대추리 주민들을 정하고 나서 대추리를 가봐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이 발길을 재촉했는지 모릅니다. 수없이 화제의 대상으로 삼았으면서도 형체가 분명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 대추리를 피부로 느끼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1호선 평택역에서 택시로 1만원 거리. 대추리는 먼저 ‘섬’으로 다가왔습니다. 대추리를 둘러싼 철조망과 마을 초입의 경찰 검문소는 대추리와 바깥 세상의 소통을 차단하고 있었습니다(이럴 때 기자 신분증은 훌륭한 ‘승선권’ 노릇을 합니다).
대추리엔 땅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질긴 의지와 황폐함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방인’인 제겐 황폐함이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철거 작업으로 폭격을 맞은 듯 부서진 채 내팽개쳐진 집들과 드문 인적, 무너진 대추초등학교의 잔해, 황새울 들판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까지.
그 황량함이 바깥 세계의 무관심을 방증하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좁은 마을 골목길에서 어쩌다 어른들과 마주쳐도 죄송한 마음에 눈길을 아래로 깔아야만 했습니다.
대추리가 그나마 정치·사회적 쟁점이 된 것은 올 들어서지만, 그 투쟁의 뿌리는 훨씬 멀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4년 9월 시작된 주민들의 촛불집회로만 쳐도 800일을 훌쩍 넘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대추리와 황새울은 울고, 투쟁이 어떻게 귀결될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대추리 주민들과 정부는 여전히 평행선입니다. 다만, 그 팽팽한 대치를 좁힐 첫 단추가 무엇인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대추리를 찾기 며칠 전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의 한 논설위원 동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속된 김지태 이장을 석방하고, 노무현 정부가 무릎을 꿇고라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김 이장의 석방과 정부의 진솔한 사과, 이 두 가지가 새 출발점이어야 합니다. 이는 이념이나 논리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의’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예의를 되찾지 못한다면 대추리의 해법도, 우리 사회의 신뢰와 통합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대추리는 우리 사회의 진보·평화 세력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태도를 가늠하는 마지막 잣대가 되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언론의 본분은 ‘관찰’과 ‘기록’이라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당연히 그 바탕은 ‘현장’이겠지요. 593호(1월17일)부터 한 해 내내 성실하게 대추리를 기록해온 류우종·길윤형 두 기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주민들과 삶을 함께하는 대추리의 ‘지킴이’들, 그리고 ‘평화의 땅 1평 지키기’ 모금에 1억1천만원이 넘는 성금을 보탠 얼굴 모를 우리 사회 곳곳의 ‘대추리 지킴이’들에겐 더 큰 고마움이 전해져야겠지요.
대추리의 올겨울이 좀더 따뜻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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