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홍규 영남대 법대 교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상에서 TV를 가장 많이 본다고 하는데 특히 요즘 와서 더 그런 것 같아 걱정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토크쇼니 뭐니 하는 것들은 출연 연예인들의 영화나 노래, 심지어 개인사업을 위한 광고로 이용되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연예인들이 연예활동의 목표인 양 재벌들 광고에 출연해 큰돈을 벌고 싶은 것을 노골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심지어 ‘얼짱’ ‘몸짱’을 노골적으로 구별해 그 차이에 따라 사람을 차별한다.
‘거짓 연애놀이’ 방송에서도 노골적인 차별을 가하는가 하면, 성형수술을 받은 사실을 당당하게 밝혀 그것이 상식인 양 치부한다. 서로 형님, 아우, 누나, 동생, 선배, 후배 하면서 연예인들의 사적인 인간관계에 의존하는 가족주의 측면이 너무 강해 도대체 왜 이런 사적 내용을, 공적 성격을 갖는다는 방송에서 보여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재벌 가족 중심의 행복한 결혼을 향한 황당무계한 가족주의 이야기로 엮어지는 드라마 출연 주인공들도 그 드라마 앞뒤의 광고에까지 버젓이 나와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TV는 사실상 모두 광고인가? 그것도 몇 재벌의 광고 일색인가? 방송에는 사회정의커녕 최소한의 공적 사명감조차 과연 존재하는가?
형님·아우들의 인간적 세계?
옛날부터 TV를 바보상자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기본적인 공사 구분조차 없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런 연예인들이 자신을 모두 까발리는 것을 ‘인간적’이니 ‘서민적’인 솔직함이니 하고 칭찬하는 이상한 언론도 없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큰 회사 광고로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연예인의 목표라는 것을 보여주는 TV, 그것을 위해 철석같이 뭉친 바보 같은 얼짱 몸짱 형님·아우들이 억지 ‘서민적’이고 ‘인간적’으로 열심히 노는 것을 보여주는 수준 이하 TV를 세상 어디에서 또 볼 수 있을까? 기껏 일본 사영방송(그 일본에서도 공영방송의 경우에는 있을 수 없다)에서 볼 수 있는 정도이나, 일본 연예인들도 이 정도로 노골적이지는 않다.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듯이, 일본 TV의 사적인 욕망 표현을 극대화한 것이 우리 TV이다. 심지어 우리 영화에서도 그런 이기주의와 가족주의는 극대화된다. 최근 크게 흥행했다는 영화 대부분이 바로 그런 코드이다. 게다가 집권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를 위시해 경제, 사회, 문화 모두가 이기적 가족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보수도 진보도, 우익도 좌익도, 모두 패거리 이기주의임에는 다름이 없다.
아이들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나
더욱 걱정인 것은 아이들이 그런 연예인들 흉내를 낼 뿐만 아니라 아예 사고방식이 그렇게 굳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생조차 유일한 관심사는 취직과 결혼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얼짱’ ‘몸짱’이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사이는 부모형제와 선후배 동창뿐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경우를 위시해 주변 패거리에 사로잡혀 있음을 최근 자주 본다. 그래서인지 대학에는 동창회 포스터밖에 없고, 학생들의 인간관계도 동창회를 중심으로 한다. 하기야 과거 운동권이나 학술모임 같은 것도 동창회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허울만으로도 그런 모임은 없다. 사회 자체가 사적인 혈연이나 지연 또는 학연의 패거리 중심이어서 아예 공사구분조차 안 되니 아이들을 탓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점점 더욱더 심해지는 듯해 참으로 걱정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TV나 부모나 선배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도록, 그 권위를 의심해보고 홀로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하도록 권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완전히 고독하게 왕따로 사는 것을 의미하니 힘들기 짝이 없다. 나는 약 20년 전부터 단절한 각종 동창회를 비롯해 약 10년 전부터는 학교 회식이나 관혼상례까지 모두 포기했고, 나름으로 자발적 왕따가 되고자 시골로 아예 이사해 학교와 집을 자전거로 오가는 것 외에 모든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있으나 역시 쉽지 않다. TV와 완전히 반대로 살기란 아예 TV를 없애는 것인데, 그것조차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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