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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주지스님을 K-1으로?

등록 2006-10-1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물론 배 아파서 하는 소리지만, 고위 공무원들의 낙하산과 회전문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됐다. 고시 합격 이후 30년 가까이 두루 요직을 거쳐 50대에 이른 2~3급 공무원들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젊은 후배들의 도전을 받게 된다. 끝발 좋은 재경부나 건교부 출신이라면 연봉 1억원을 가뿐히 넘기는 산하기관 장이나 감사 자리가 예약돼 있고, 좀더 젊은 친구들은 주요 대기업의 채용 1순위 표적이 된다. 지난 2001년부터 2006년 6월까지 삼성(64명), 현대차(10명), LG(17명), SK(14명) 등 4대 기업에 채용된 공무원들은 모두 10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무원들이 업무상 연관을 맺고 있는 사기업에 취업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지만, 취업승인 심사에서 취업이 제한된 예는 지금까지 덜렁 1건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이 회전문을 타고 다시 공직 사회에 복귀해 국가 정책을 손에 넣고 주무른다. 대한민국은 이제 ‘공무원의 나라’다.

1년10개월 만에 보는 소림사 혈투는 역시 소름 끼쳤다. 어슴푸레하게 날이 밝아오던 10월8일 오전 7시, 전남 순천에 자리한 선암사에서는 새 주지 임명 여부를 놓고 선암사 제적승들과 태고종 총무원 관계자들 사이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조폭스런 용역업체 직원들까지 개입된 이날 활극으로 일부 스님들이 다쳐 순천 중앙병원으로 옮겨졌고 시라소니 이정재 옆차기하듯 놀라운 무예 실력을 뽐내신 스님 몇 분과 조폭 오빠 26명은 경찰에 연행됐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2004년 12월31일의 강북구 우이동 보광사 혈투 때는 ㅎ스님과 ㅅ스님 사이에 혈투가 벌어져 닷새 동안 네 번이나 사찰 주인이 바뀌는 명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산은 산이로되 물은 물이라는데, 선암사 주지스님! K-1 결승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한 우리 ‘홍만이’의 사부님이 돼주시렵니까.

어쩌면 그것은 차라리 코미디라 불러도 좋았다.
지난 추석 기간 동안 대한민국 뉴스 포털을 들쑤신 최고의 핫이슈는 의친왕의 둘째딸 이해원(88) 옹주가 대한제국 30대 황위 계승자로 옹립됐다는 소식이었다. 노란색 치마 ‘황복’에 모조품임이 분명한 왕관과 귀걸이를 건 옹주의 사진 한 장이 9월29일 열렸다는 대관식의 성격을 한마디로 압축해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넷 포털 ‘네이버’의 관련 기사에는 “황실 놀이 재밋삼?”류의 댓글이 7천 개 넘게 붙었고, 관련 단체들에서는 “사회적 합의 없는 추대 강행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성명서를 돌렸다. 1910년 몰락 이후 “황실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따금 들려오긴 하지만, 무능했던 그들에 대한 평가는 (안타깝지만) 이미 여러 세대 전에 마무리된 게 아닌가 싶다. 곱게 늙은 80대 노파를 앞세워 주변 사람들이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황실 놀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까지 들먹이셨던데, 종친을 광대 삼아 능멸하면 어떤 죄를 받게 되는지까지 혹시 검토해보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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