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언제 주실 거예요?”
마감날 오후 누군가 전화기를 들고 빚쟁이처럼 말합니다. 전혀 친절하지 않은 말투입니다. “오늘은 좀 빨리 주시죠?”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 몇 마디를 나눈 뒤 대화는 늘 이렇게 갈무리됩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하여튼 늦으면 안 돼요.”
그러나 또 늦습니다. 오늘도 꼴찌를 기록합니다. 더구나 ‘일시불’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할부’처럼 두세 차례로 나눠 마감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징~합니다. 2~3주에 한 번씩 이런 풍경이 되풀이됩니다. 벌써 6년째입니다.
퀴즈를 한 가지 내겠습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의 누군가와 가장 서먹서먹한 관계일까요. 은밀히 정답을 말씀드리면, 유현산 기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퉁명스런 빚쟁이’가 바로 그입니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담당해온 운명 탓입니다. 마감날 원고 독촉을 하는 그의 음성은 언제나 ‘그대 고운 목소리’가 아닙니다. 심사가 잔뜩 꼬여 있습니다.
필자 흉을 봐 죄송합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십시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와 석별의 정을 나누려는 작은 세리머니입니다.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중단하게 된 겁니다. 워낙 오래 연재를 하다 보니 고운 정만큼 미운 정도 많이 들었습니다. 마감시간 때문에 이를 바득바득 간 가족들이 많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요.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는 을 빛낸 대표적인 인기 칼럼 중 하나였습니다. 2001년 1월 연재를 시작하기 전까지, 시사잡지에서 역사칼럼은 낯설었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역사물은 재미없고 딱딱하다”는 통념을 처음으로 깨준 시사주간지 필자가 아니었나 합니다.
그가 독자를 매료시킨 무기는 ‘팩트’와 ‘입담’이었습니다. ‘주장’보다는 미주알고주알 역사적 사실들을 앞세웠기에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아득한 과거의 일들을 오늘의 현실과 맛있게 비벼 풀어냈기에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6년에 걸친 연재물들은 (한겨레출판)라는 단행본으로 묶여 서점가에서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벌써 3권이 나왔고, 조만간 제4권이 햇빛을 봅니다.
사실 천성적으로 느긋한 그가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글을 썼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늦어서 속을 썩였을지언정 펑크를 낸 적은 없으니까요. 그것조차 한계에 다다랐기에 두 손을 들었나 봅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을 많이 벌여놓은 ‘사업가’입니다. 의 베트남 캠페인을 모태로 태어난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상임이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상근위원…. 여기에 치여 시간을 쪼개다 보니, 원고를 보내놓고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본래 무거운 몸이 더 무거워졌답니다.
연재물은 중단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평화사업’의 경험들을 잘 발효시키시길 기대합니다. 기약할 수 없는 어느 때에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시즌2’를 만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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