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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유령들이 꼭짓점 댄스 추는 나라

등록 2006-04-12 00:00 수정 2020-05-02 04:24

▣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벌건 백주 대낮 서울 여의도에 유령이 나타났다. 유령은 술에 취해 강제로 <동아일보> 여기자 가슴을 만진 최연희 한나라당 의원의 사퇴 촉구결의안 투표장에서 요술을 부렸다. 결의안은 찬성 149표, 반대 84표, 기권 10표, 무효 17표. 찬성하지 않은 표가 111표나 된단 말이야? 당황한 국회의원들은 본능적으로 상대방을 향해 삿대질을 시작했다. “네 탓”을 외치며 상대방의 머리 끄덩이를 움켜쥐던 몸부림이 대략 개싸움으로 진화해갈 즈음 민주노동당에서 “그럼 유령이 나타나 표를 바꿨다는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맞아, 유령이었을 거야.” 양당 국회의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사건을 유령이 저지른 짓으로 선언합니다. 탕탕탕!” 양당 대변인의 공식 발표가 시작될 때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민노당(!) 무식하게 한발 더 나아갔다. “장난 그만하고, 의원들의 찬반 여부를 공개하라!” 80㏈ 주변에서 예쁘게 목소리 톤을 가다듬던 의원님들 깨끗하게 닥치시고 깔끔하게 집으로 퇴청하셨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엔 유령만 설치는 게 아니다. ‘앙마’의 활약도 못지않다. 앙마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은 열린우리당의 ‘꼭짓점 땐쑤’였다. 열린우리당은 4월10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 등이 국회 앞 분수대로 총출동해 ‘꼭짓점 댄스’를 출 계획을 밝혔다. “이건 표절이야!” 민주당의 월드컵 응원단 ‘민주앙마’들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꼭짓점 땐스가 무엇이던가. 3월17일 한화갑 민주당 대표, 박광태 광주시장 등이 나서 정치권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였던 바로 그 춤이 아니던가. 허탈해진 김정현 민주당 부대변인이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열린우리당 역시 진정으로 독일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바란다면 민주당의 베끼기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민주당을 제대로 따라하기 바란다.” 그나저나 정치인들께서 은근히 고난도인 꼭짓점 댄스를 어느 정도까지 소화하실지 걱정이다. 박자 제대로 못 맞추고 헛다리 짚으시다가 4천만 붉은 악마들에게 ‘’당하시지 않을까 걱정이다. 알아서 즐겁게들 추시고, 웬만하면 기자들 부르시지 말길 바란다.

그렇지만 이번주 한반도를 배회한 가장 큰 유령은 정치인들의 하인스 워드 마케팅이었다. 미국에서 최고의 스포츠 스타로 자리잡은 미식축구 선수 하인스 워드를 데리고 너도나도 사진을 찍어대는 꼴이 남우세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워드에게 풋볼 공을 던지는 장면을 연출했고, ‘테니스맨’ 이명박 시장은 하인스 워드에게 명예시민증을 주면서 역시 예쁘게 사진 한 장을 박았다. 미국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미 대사관은 그가 지닌 홍보적 가치를 높이 사 대사관 연회의 주빈으로 모셨다고 한다. 정치인들의 티나는 환대에 감사하며 울먹이던 워드에게 미안한 마음 감출 수 없다. 좀더 담백하고 세련되게 이 친구를 감싸안아줄 방법은 없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마가린·버터·돼지기름 뚝뚝 떨어지는 대한민국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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