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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학교 | 정재승

등록 2006-03-18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바이오시스템학과

요즘 로버트 로플린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의 중간평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과학계의 히딩크’를 기대하며 카이스트가 ‘노벨상 수상자 외국인 총장 영입’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시도한 지 2년. 이제 로플린 총장의 공과를 평가하고 그에게 앞으로 2년 동안 학교를 더 맡길지 말지를 점검하는 시기이다. 이 문제가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회적 이슈가 된 데에는 카이스트라는 특정 대학의 학내 문제를 넘어, 앞으로 다른 대학에도 도입될 ‘외국인 총장 제도’의 성과와 한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보수파 교수들의 반발일까

그동안 카이스트는 총장 업적을 평가하는 기구를 조직하고 교수들이 참여한 총장 연임 설문조사를 통해 로플린 총장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시도했다. 놀랍게도 설문조사 결과, 카이스트 교수들의 90% 이상이 총장 연임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로플린 총장은 이 사실에 대해 ‘개혁에 대한 실력 없는 교수들의 반발’이라며 격분했다. 언론은 현 사태를 ‘선진국형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개혁 총장과 현실에 안주하려는 보수파 교수들 간의 충돌’ 구도로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 여론도 언론과 비슷하다. 이번 논란을 ‘카이스트의 성장통’으로 보고, 카이스트가 외국인 총장의 과감한 개혁을 받아들여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길 기대한다. 만약 다른 대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나 역시도 한국의 교수들보다는 외국인 총장의 개혁 의지를 좀더 신뢰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대학의 막내 교수로서 내가 바라보는 이 문제는 좀 다르다. 나는 이 문제가 ‘개혁 대 보수’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 개혁과 한국적 개혁’ 간의 충돌이라고 생각한다. 카이스트는 외국인 총장을 영입할 만큼 개혁을 원하고 있었으며, 아마 로플린 총장이 연임되지 않더라도 차기 총장을 다시 외부 인사에서 찾을 만큼 개혁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교수들이 원하는 개혁은 ‘교수 승진 심사 기준을 세계 유수 대학 수준으로 강화하고 신임 교수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반면, 로플린 총장은 카이스트가 서비스해야 할 학부모와 학생의 요구에 맞춰 의대·법대 전문대학원 진학반을 개설하고, 모든 학부생에게 중국 연수 기회를 주고, 대신 학부생 수를 2만 명으로 늘리고 학부모들에게 등록금을 받자는 것이다. 교수들은 로플린 총장이 한국 대학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로플린 총장은 교수들이 정부 지원에 안주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총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는 로플린 총장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 부족’도 한몫을 했다. 카이스트를 지칭할 때 “당신들의 대학”(your university)라고 부르고, 카이스트 총장으로 부임하게 된 이유에 대해 “나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왔다. 한국 정부가 너무 큰돈을 제시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총장에게 교수들은 많이 놀랐던 것 같다.

외국인 총장제 실패로 여기지 말길

카이스트에서 회자되는 ‘로플린 어록’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정부 예산 요청을 위해 열심히 뛰는 보직교수에게 제안서가 형편없다며 “거울로 너 자신을 쳐다보고 자부심을 느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라”고 말하는가 하면, 교수들과 논쟁할 때면 “구글에서 내 이름을 쳐봐라. 나는 카이스트의 그 누구보다도 유명하기 때문에, 내 말이 정답에 더 가깝다”라는 말도 자주 한다. 해외 석학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자는 교수들의 의견에 “해외 석학은 나 하나로 족하다”며 반대하는 총장을 신뢰할 교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 벌어진 논란으로 인해 ‘외국인 총장 제도’를 다른 대학에서 ‘실패한 프로젝트’로 간주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과 총장이 함께 노력한다면 외국인 총장 제도가 대학 발전에 긍정적일 수도 있다. 풍부한 행정 경험을 갖추고, 내가 일하는 터전을 ‘우리 대학’이라 부르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개혁을 향해 교수들을 설득하는 외국인 총장이라면, 대학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거울로 자신을 바라봤을 때 자부심을 느끼는’ 총장들만 우리나라에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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