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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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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근] 잃은 건 돈이요, 얻은 건 허망함

등록 2001-02-06 00:00 수정 2020-05-02 04:21

대박의 꿈꾸며 정선 카지노로 몰려드는 군상들, 그들의 욕망에 동참하여 빈 손으로 돌아오다

“카지노는 잃은 돈과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자만이 출입할 자격이 있다더라. 먼저 자신의 돈으로 카지노를 해라. 자기 돈으로 해야 뒷골이 땡기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강원도 태백, 정선, 고한읍 등 폐광지역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0월28일 백운산 1150m 고원에 처음 문을 연 강원랜드 카지노. 개장 초반 3천명의 인파가 넘쳐나던 열기가 잠시 진정되는가 싶더니, 설 연휴 동안에 배당금 1억2700백만원짜리 메가잭팟이 터졌다는 소식에 자극받은 사람들이 다시 ‘대박’의 꿈을 안고 몰려들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카지노 체험을 결정한 지난 1월26일 기획회의때까지도 “우리 주머니를 조금씩 털어 판돈을 대주겠다”고 큰소리치던 선배·동료들의 태도가 출발 하루 전인 1월29일 이렇게 바뀌었다. 총무인 구본준 기자는 “부운영비에서 30만원을 나중에 지원해주겠다”면서 “그렇지만 어이없이 돈을 잃을 경우 모른 체 할 수도 있다”는 협박(?)까지 해댔다.

나는 갔다, 동료들의 밥값을 지고

이때부터 내 머리에는 쥐가 나기 시작했다. 대중화된 고스톱도 제대로 못 치는 주제에 첨단의 카지노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급한 마음에 강원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카지노에 개설된 게임 운영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블랙잭, 바카라, 룰렛, 빅휠, 타이사이…. 하나같이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료들의 밥값을 무작정 날릴 수는 없다’는 각오로 5시간 동안 씨름을 거듭한 끝에 게임의 규칙을 대부분 파악했다.

문제는 이론이 아닌 실습이었다. 궁리 끝에 퇴근길에 동네 문구점에서 9천원짜리 트럼프 한 세트를 샀다. 그리고 도박에는 나만큼 재주가 없는 아내를 앉혀놓고 2시간 동안 도상연습을 실시했다. 연습을 끝낸 아내는 “회사에서 대주는 판돈 이상을 날리면 일날줄 알라”는 경고를 덧붙였다. 1월30일 오후, 총무인 구본준 기자는 “현장 감각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블랙잭을 1시간 동안 집중 실습시켰다. 나름의 자신감이 붙은 나는 “돈 따면, 휴대폰 하나씩 새것으로 바꿔주겠다”는 말을 남긴 채 오후 2시 당당하게 신문사를 나섰다.

그러나 눈쌓인 산길을 굽이 돌아 오후 8시30분께 카지노 초입인 정선군 고한읍에 도착하자 상황이 만만찮음을 직감했다. 허름한 탄광촌 길 양쪽에서 빛나는 불빛은 대부분 전당포 간판이었다. ‘차차차(車車車)전당사’, ‘럭키 전당포’, ‘왕대박 전당포’…. ‘최고가 매입, 최저금리 대출’, ‘24시간 출장대출’, ‘로랙스 고가매입’ 등 밑천 떨어진 사람들의 귀중품을 겨냥한 문구들도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을 굳게 먹고 10분을 더 내달리자 강원랜드 카지노 호텔이 나타났다. 5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해 카지노장에 들어서자 별천지가 펼쳐졌다. 450대의 슬롯머신과 인터넷을 통해본 블랙잭, 바카라, 룰렛, 빅휠, 타이사이 등 22개의 게임 테이블은 이미 초만원 상태였다. 1천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이틀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해볼 생각으로 탐색전을 시작했다. 먼저 딜러와 고객이 카드를 주고받아 그 합이 21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장 높은 수의 합이 나온 쪽이 이기는 게임인 블랙잭 테이블로 다가갔다. 미리 실전연습까지 한터라 붙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게임의 법칙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3분 정도 블랙잭을 지켜본 나는 곧바로 주눅이 들었다. 판돈이 문제였다. 테이블마다 1명의 딜러가 좌석에 앉은 7명이 고객과 대결하는 게임에서 한번에 베팅할 수 있는 액수는 최소 5천원에서 최고 50만원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고객은 1분이면 판가름 나른 이 게임에 거침없이 50만원을 베팅했다. 동료들 밥값에서 30만원을 지원받기로 약속받고 온 나는 자리가 난다 해도 부끄러워 명함도 못 내밀 상황이었다. 그러나 게임에 열중인 갬블러들에게 50만원은 그저 옅은 황색의 10만원짜리 동그란 칩 5개에 불과했다. 10분여 동안 펼쳐진 15차례 블랙잭 게임에서 500만원을 잃고도 태연히 100만원짜리 수표 몇장을 꺼내드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 뒤에는 또 수백만원어치 칩을 바꿔들고 빈자리가 나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득했다. 기다리다 지친 몇몇은 아예 자리를 차고 앉은 사람의 어깨 너머로 판돈을 거는 이른바 ‘사이드베팅’을 벌이고 있었다.

걱정이 앞섰다. ‘30만원 판돈으로 카지노 체험담을 쓰기로 했는데, 아예 끼어들지도 못하게 생겼군….’ 오후 9시30분, 1시간여의 망설임 끝에 슬롯머신에 앉았다. 1차례 기본 베팅단위가 500원인 데 반해 잭팟이 터질 경우 운 좋으면 수천만원짜리 대박이 터질 수도 있고, 딜러나 다른 갬블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기계와 대적하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몇천만원은 기본

그러나 슬롯머신도 장난이 아니었다. 1만원으로 채 1분을 버티기도 힘겨웠다. 1만원권 지폐를 넣고 버튼 한번 누를 때마다 어김없이 500원씩 사라졌다. 단 한 차례 베팅액의 15배인 7500원이 추가되는 배당표가 화면에 나타났을 뿐 몇 차례 버튼을 누르자 다시 지폐를 넣으라는 신호가 켜졌다. 그렇게 3분여 동안 버튼 몇번 누른 게 고작인데 어느새 3만원이 훌쩍 날아갔다. 허망했다. 순간 전날 밤 자문을 구했던 한 고수 갬블러의 당부가 떠올랐다. “슬롯머신에는 절대 앉지마라. 적은 베팅으로 대박이 터진다고 기대하지만 기계에 내장된 수백만분의 1의 확률과 싸우는 것인 만큼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게임이다. 30만원은 1시간이면 거덜난다. 오히려 딜러와 머리 싸움을 벌이는 블랙잭 등에 소액으로 베팅하라. 따진 못해도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한숨을 돌린 뒤 마음을 다잡았다. ‘원래 외국의 카지노는 100달러만 가지고도 즐길 수 있다는데…. 대박을 노리며 판돈만 키운 ‘속물’들이 문제지 내가 왜 기죽어야 하나. 눈치보지 말고 소액베팅에 나서자. 월급쟁이한테는 30만원도 살떨리는 돈인데. 또 뭐 해본 게 있어야 기사를 쓸 것 아니냐.’

이번에는 룰렛 테이블로 다가섰다. 게임 규칙은 간단했다. 딜러가 0과 00 그리고 1부터 36까지의 모두 38개의 번호 홈이 있는 룰렛 휠에 작은 흰색공을 돌리고, 고객은 이 공이 들어갈 홈의 번호를 맞히는 것이다. 확률에 따라 배당액이 1배(홀수인지 짝수인지를 맞힐 경우)에서 35배(정확한 숫자를 맞힐 경우)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좀처럼 끼어들 틈새가 보이지 않았다. 12명이 앉는 룰렛 테이블 4대에는 먼저 자리를 잡은 갬블러들로 넘쳐났다. 1시30여분 동안 500만∼600만원은 족히 잃었다 싶어 ‘이제는 일어서겠지’라고 생각하면 또다시 고액권 수표를 꺼내 칩으로 교체한다.

이때 한 인기연예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6일째 룰렛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 숫자 가운데 3분의 1인 25∼36번 위에 무조건 기본베팅을 하고, 가끔 자신의 느낌에 따라 한두개 번호에 고액베팅을 하는 게 그의 게임법이다. 적중 확률을 3분의 1로 높임으로써 일정액의 판돈으로 오랫동안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도 6일 동안 적어도 1천여만원 정도의 판돈을 잃었을 것으로 사람들은 웅성였다. 그러나 이 연예인은 “이 번호가 나올 것이라는 느낌이 올 때 과감히 베팅하고 그것이 적중했을 때 느끼는 쾌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면서 “돈을 따겠다는 생각보다는 도를 닦는 기분으로 즐긴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일 동안 무리한 베팅을 계속하다가 하룻밤에 수천만원씩 날리는 사람을 많이 봤다”고 관전평을 내놓았다.

대박 노리다 쪽박차는 사람, 사람들

1월31일 새벽 1시, 카지노에는 대박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온갖 행태가 목격됐다. 슬롯머신 버튼을 누르는 것도 귀찮아 수십만원씩 기계에 집어넣은 뒤 버튼에 재떨이를 올려놓고 잭팟이 터질 때만을 기다리는 사람, 1회에 50만원인 최고 베팅액 규정이 답답하다는 듯 다른 사람을 시켜 여러 테이블에 동시에 수백만원을 베팅하는 사람, 한판에 50만원씩 판돈을 걸고 졸고 있는 한가한 젊은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대박을 노리다 쪽박을 찬 경우도 적지 않다. 신정 연휴 때 1억2천여만원을 잃고 본전 생각이 나서 다시 들렀다는 한 부부는 설 연휴 때부터 하룻밤에 2천만원씩 모두 8천만원을 더 날렸다. 이들을 지켜본 한 갬블러는 “좀 딴다 싶을 때는 환호하더니 밑천이 거덜나자 서로의 말을 듣지 않아 돈을 잃었다며 싸움을 해댔다”고 전했다.

물론 카지노 출입자들 모두가 돈을 잃는 것은 아니다. 몇몇은 운이 따랐다. 30일 오후 9시19분께 슬롯머신 버튼을 누르던 60대 초반의 부부는 환호했다. 잭팟이 터진 것이다. 그러나 당첨금은 180여만원에 불과했다. 최고 당첨액이 적은 게임기였다. 이들은 이내 “저쪽 것을 했어야 하는데…”라고 아쉬워했다. 바로 옆에 20대의 슬롯머신이 동시에 연결돼 누적 당첨금이 4천여만에 이르는 강원메가 잭팟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의 비법으로 하룻밤에 수백만원씩 따는 사람도 있다. 대구에서 왔다는 50대 초반의 한 여성은 “블랙잭으로 오늘밤에만 270만원 정도 벌었다”고 자랑했다. 그의 비법은 갬블러들 가운데 승률이 높고 신중한 사람을 선택해 그가 한도액 이하로 베팅을 할 때 그 차액만큼 자신의 칩을 얹는 사이드베팅이다. 그는 “카지노에서 거액을 베팅해 한번에 큰돈을 딸 수는 없는 만큼 ‘티클 모아 태산’ 전법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50대 여성의 이 비법에 용기를 얻은 나는 딜러에게 7만원을 내밀었다. 그리고 1만원짜리 칩 7개를 받아들었다. 30여분 동안 블랙잭 판에서 사이드베팅할 갬블러를 물색했다. 1월31일 새벽 1시9분 한 갬블러에게 얹혀 첫 베팅을 시도했다. 베팅액은 1만원. 그 갬블러가 받아든 카드 2장의 합은 18. 출발이 좋았다. 손에 진땀이 흘렀다. 10짜리를 첫 카드로 받아든 딜러는 3과 10짜리를 잇따라 받고 23이 됐다. 21을 넘어선 딜러의 패배였다. 베팅한 1만원짜리 칩은 2만원이 돼 내손에 돌아왔다. 첫 승리에 가슴이 뛰었다. 1만원짜리 소액베팅을 몇 차례 계속했고, 15분여 만에 1만원짜리 칩이 12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수십만원씩 고액 베팅을 하는 갬블러들은 은근히 눈치를 줬다. 그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나는 한판에 3만원까지 베팅액을 높였다. 그러나 행운은 계속되지 않았다. 딜러와 몇 차례 승패를 주고받는 사이에 첫 밑천이었던 칩 7개까지 모두 딜러의 손에 들어갔다. 새벽 1시43분. 34분 만에 거덜이 난 셈이다. 다시 갈등했다. “칩을 더 바꿔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이쯤에서 멈춰설 것인가?”

잠 잘 곳 없어 헤매던 그 밤

그러나 내 밑천으로는 고액베팅자들 틈에 낀다는 것은 무리였다. 더욱이 딜러와 내가 직접 머리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갬블러의 판단에 나의 승패가 맡기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위험이 따르더라도 내 판단을 적용할 게임을 찾기 시작했다. 타이사이가 눈에 들어왔다.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쉐이크) 속에 들어 있는 주사위 3개를 기계적으로 흔들어 나오는 수자 조합을 미리 맞히는 경기다. 이 게임은 판돈이 더욱 컸다. 20명 정도가 ‘10초의 기계적 떨림’으로 판가름 나는 한번의 게임판에 베팅한 칩 가격은 1500만원선이었다. 중소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이 한꺼번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갬블러들은 주저함이 없었다. 30대 중반의 한 갬블러는 그 심리를 이렇게 말했다. “일단 현금을 칩으로 바꾸고 나면 돈 나가는 줄 모른다. 그저 모두 한장의 칩일 뿐이다. 일시적으로 칩을 좀 따 모았다 해도 돈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내돈이 아닌데도 승리감에 도취돼 베팅액을 늘리고, 딜러에게 팁을 주다보면 어느새 밑천은 바닥난다.”

다시 5만원을 투자해 칩을 바꾼 나는 3개 주사위 숫자의 합이 홀인지 짝인지를 맞히는 가장 단순한 선택에 한번에 1개씩의 칩을 얹었다. 배당률이 1배밖에 안 되지만 확률은 2분의 1로 그나마 안전하게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반대였다. 불과 5번의 떨림으로 5만원이 또 사라졌다.

새벽 3시15분. 판돈의 절반인 15만원을 날린 나는 피곤한 몸을 뉘일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지노 호텔의 하루 숙박비는 11만원선. 출장비가 제한된 나에게는 너무 고액이었다. 고한읍까지 내려가기도 마땅치 않았다. “웃돈을 주고도 잠잘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귀띔했기 때문이다. 결국 호텔로비에 있는 의자에서 밤을 지새기로 했다. 그러나 30개 정도되는 의자는 이미 갈 곳 없는 갬블러들로 초만원이었다. 한 자리씩 차지한 채 웃옷을 덮어쓰고 몸을 구긴 채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호텔에 딸린 사우나도 카지노가 끝나는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영업을 한다. “노숙자들이 사우나에 몰려들어 잠을 자기 때문”이라는 게 호텔쪽 설명이다. 어쩔 수 없이 호텔로비와 주차장을 서성이며 시간을 죽이던 나는 결국 폐장을 1시간 앞둔 카지노장에 다시 들어섰다. 때마침 룰렛 테이블에 한 자리가 빈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얼른 10만원을 내고 1천원짜리 칩 100개를 받아들었다. “이제 한번 정식으로 붙어보자.” 그러나 10번의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칩은 딜러의 손으로 들어갔다. 1∼36까지의 번호 가운데 나름대로 누적 확률이 높은 것을 예측해 5곳에 2개씩 신중하게 베팅했지만 소용없었다. 몇몇 갬블러들은 폐장시간이 다가오자 거의 모든 번호에 남은 칩을 무작정 싸놓는 ‘묻지마 베팅’을 하기도 했다.

전당포 찾는 도박환자들

오전 6시, 폐장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카지노에 남아 있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썰물처럼 흘러나갔다. 어둠을 가르고 하나둘 어디론가 사라졌고, 몇몇은 자동차에 히터를 틀어놓고 잠을 청했다. 호텔로비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한숨만 내쉬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좀 땄어요”라고 물었다. “따긴 뭘 따요, 왕창 날렸지.” 밤새 로비에 진을 치고 앉아 있던 몇몇 ‘꾼’들은 전날 전적에 대한 품평회를 열었다. “어제 2천만원 이상 잃은 사람이 12명 이래” “봤어, 부친이 사망했다는 안내방송 듣고 나왔다가 아버지한테 멱살잡혀 끌려간 남자….”

개장중에는 촬영이 금지된 카지노장을 찍기 위해 아침 일찍 강원랜드 홍보팀 관계자를 만났다. 그에게 간밤의 경험을 말한 뒤 “돈 따는 방법이 있냐”고 넌지시 물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평상심을 잃지 말아라. 조금 땄다 싶으면 털고 일어서라. 대박을 기대하기보다는 일정한 돈으로 즐긴다고 생각하라.” 욕심을 버리면 묘미도 생기고, 확률상 보장된 정도까지 돈을 따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피곤한 몸을 2시간 정도 사우나에 뉘인 뒤 1월31일 낮 고한읍 내 전당포를 찾아나섰다. 전당포 주인이 접한 고객의 모습은 도박환자 수준이다. “보름 동안 차를 맡긴 사람이 10명 정도다. 벤츠를 몰고와 급하다며 2천∼3천만원씩 급전을 빌려가는 사람도 3명이 있었다. 또 은행 마감시간이 지난 한밤중에 수천만원이 든 통장을 가져와 현금을 달라는 사람도 있다.” 카지노 초입에 위치한 한 전당포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좀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다른 전당포 주인은 “여기를 찾는 사람은 차까지 저당잡히고 차비도 없어, 금반지나 낡은 시계를 뽑아오는 사람들이다. 나도 카지노로 먹고살지만 나라에서 왜 이런 것은 허가내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오후 6시께 다시 카지노로 돌아왔다. 첫날 밤 25만원을 날렸으니 이제 베팅할 수 있는 공식 자금은 5만원뿐이었다. “게임을 즐긴다는 마음으로 임하라”는 강원랜드 관계자의 말을 따르기로 다짐했다. 더욱이 1일 아침 6시 고한역으로 나가는 첫 셔틀버스가 출발할 때까지는 5만원으로 버텨야 했다. 카지노장에 들어선 뒤 5천원짜리 햄버거로 우선 끼니를 때웠다.

시간을 최대한 끌기 위해 버튼 한번 누르는 데 100원씩하는 크리스탈 슬롯머신에 앉기로 했다. 베팅액이 가장 작지만 잭팟이 터지면 100만원까지 건질 수 있었다. 문제는 기계 수가 적다는 데 있었다. 450대의 슬롯머신 가운데 이 기계는 20여대 정도. 한번 앉은 사람은 거의 일어서는 법이 없었다. 자리가 날 때를 기다리며 틈틈이 블랙잭, 바카라, 룰렛 등의 게임 테이블 주변을 기웃거렸다. 밤 10시30분께 기다림에 지친 나는 “무엇을 해도 판돈을 모두 날릴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고 일찌감치 호텔로비의 빈 자리라도 차지할 요량으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요금 1만원은 남겼네…

출입문을 막 나서려는 순간 뒤쪽에서 한바탕 웅성임이 들렸다. 빅휠게임기가 있는 쪽이었다. 1, 2, 5, 10, 20, 40이라는 6개의 숫자가 빼곡이 적힌 큰 원판을 돌린 뒤 가죽에 멈추는 번호를 미리 선택한 사람에게 베팅액에 그 숫자를 곱해 돌려주는 경기다. 여기서 40배수의 베팅에 성공한 사람이 나온 것이다. 1만원을 베팅한 20대 중반의 한 젊은이는 40만원어치 칩을 돌려받고 마냥 즐거워했다. 금방 2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너도나도 베팅을 했다. 이곳에서는 5천원이나 1천원짜리 칩으로 소액베팅하는 사람들이 적잖게 눈에 띄었다. 나는 결국 카지노 문을 나서지 못하고 나머지 5만원을 5천원짜리 칩 10개로 바꿨다. 이것은 빈털터리가 되는 시작이었다. 눈치 보지 않고 소액 칩으로 베팅할 수 있고, 내가 선택한 번호에 멈출 듯하다가 다시 넘어가는 그 긴장감에 빠져든 것이다. 결국 지원받기로 한 30만원을 모두 날리고 지갑에서 3만원씩, 3만원씩 사비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지갑이 얇아 질수록 본전이 생각나 베팅배율은 높였고 적중률은 그만큼 낮아졌다. 결국 1시간 만에 다음날 서울로 올라갈 기차요금 1만원만 남긴 채 17만원의 여윳돈을 모두 털어냈다. ‘어! 이거 장난이 아니네….’ 속으로 이렇게 외치던 내 귀에 30대 초반의 두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좀 땃냐.” “40시간 동안 앉아서 2천만원이나 날렸어. 그저 40배짜리만 한번 터지면 집에 가려고 하는데 영 기회가 안 오네.”

이제 호텔로비 의자에 앉아 코트를 덮어쓴 채 고한역으로 실어다줄 셔틀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무작정 버티기에 들어갔다. 로비에서는 전날 밤에는 목격하지 못했던 카지노의 또다른 밤 풍경이 펼쳐졌다. 돈을 잃은 데 흥분해 “외국 카지노에 비해 여기는 서비스가 너무 안 좋다”고 소리치는 사람. “당신이 나 여기 오는 데 언제 돈 대준 적 있어요”라며 전화에 대고 남편에게 고함치는 40대 중반의 여인네…. 그리고 이들을 유혹하는 사람들. “돈삥 안 할래요.” 사채업자인 이른바 ‘꽁지’들이다. 관심을 보이면 본격적인 흥정이 시작된다. “내가 돈은 댈 테니, 따면 절반씩 나눕시다. 대신 20% 선이자만 내면 돼요.” 이를 지켜보던 옆자리의 한 50대 남성은 나에게 이렇게 귀띔한다. “따면 나눠갖자는 말에 돈 얻어 썼다가 도망다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예요. 조심하세요.”

자다깨다를 반복한 끝에 어느덧 시계는 2월1일 새벽 6시로 다가가 있었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셔틀버스는 도착한지 1분도 안 돼 콩나물 시루가 됐다. 몇몇은 차에 오르자마자 차창에 기댄 채 졸기 시작한다. 차를 타지 못한 몇몇은 버스를 뒤쫓으며 태워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이미 포화상태가 된 버스는 매정하게 내달린다. 버스 속 몇 사람은 넋두리처럼 내뱉는다. “서로 같은 신세인데…. 조금씩 밀착해서 좀 태워주지.”, “돈 가지고 올 때와, 다 털고 갈 때 인심이 다르잖아요.”, “좀 땄어요?”, “따긴요. 돈 생기면 또 와야지요.”….

글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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