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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입니까? 패션입니다! | 박민규

등록 2005-10-20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박민규/ 소설가


그것은 열정(Passion)이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바꾸고 말리라는 의지가 있었다. 자신을 불살라 변혁의 불씨를 지핀 인간들과, 이윤과 불이익을 초월한 투신이 있었다. 당연히 저 뿌리에서 뻗어나온 가지야, 나는. 자신의 밑동을 걱정하는 근심과, 글쎄 불휘 기픈 남간이 바라매 아니 뮈기를 바라는, 그래서 하강하던 낙엽들이 정말이지 있었다. 무엇보다 감격하고, 밑거름이 되고, 철학과 세계관에 가슴이 뜨거워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깃을 치며 파닥이던 새의 왼쪽 날개와, 하물며 파닥이던 오른쪽 날개가 있었다. 그것은 모두 열정이었다. 반공을 외치는 자도 반제국주의를 외치는 자도, 열정에 상응한 열정의 반응이자 싸움이었다. 해서 격렬하던 날갯짓과, 해서 알 수 없던 우리의 행선지가 이곳일 줄은 미처 몰랐다. 여긴 어디지? 글쎄,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기도 해.

그러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그러나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실은, 아직도 너는 어느 편이냐를 묻는 시각과, 유추와, 질문과, 추궁 앞에 우리는 서 있다. 가늠쇠는 좌익과 우익의 사이에, 역시 진보와 보수의 갈림길에 언제나 설치되어 있었다. 너는 어느 편이냐? 하나의 사건을 보는 견해에서 어떤 방송, 어떤 신문을 읽고 탐독하는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열정의 날개는 여전히 깃을 치며 퍼덕이는 중이다. 곶 됴코 여름 해도, 우리의 진보 정당과 보수 정당, 우리의 진보 단체와 보수 단체, 우리의 좌파와 우파는 열정, 그 자체인 갈등과 반목을 늦춘 적이 없었다. 친구여, 여전히 너는 거기서 그 일을. 그래, 너도 태도를 견지하고 있겠지? 하지만 아버지는, 끝끝내 아버지는 입장을 철회하지 않고 아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래서 이 새는, 그래서 퍼덕이는 우리의 대한민국은. 여긴 어딜까? 글쎄, 바로 그 자리인 것 같기도 해.

하지만 세상은 많이 변했다. 그러나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문득 반전(反轉)하고 싶어진다, 눈앞의, 저 열정 어린 싸움 앞에서 반전(反戰)하고 싶어진다. 친구여, 여전히 나는 여기 있다니까. 얘야, 내 아직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지만, 뜨고 있겠지, 있겠지만,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혹시 이것은 패션(Fashion)이 아닐까? 혹시 이것은 설정이자 곧 무늬가 아닐까? 이 의복을 벗으면, 혹시 우리의 알몸은 같은 게 아닐까? 우리의 이 패션은, 그래서 말하자면 교복이요, 제복이요, 갑옷이 아닐까? 두렵지만 이 옷 속의 알몸들은 모두 동일한 대상과의 섹스를 꿈꾸는 게 아닐까? 말하자면 돈과, 혹은 권력과- 이 잠잠한, 미끄러지는, 컬러풀한 활강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진보도 보수도 하나의 밥그릇이 아닐까

그럴 리 없겠지만, 나는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진보도 보수도, 이제 하나의 밥그릇이 아닐까라는 두려움. 좌익과 우익이, 실은 같은 재질의 날개가 아닌가라는 민망함, 그래서 이것은 퍼덕이는 새의 비행이 아니라 행글라이딩이 아닐까라는 당혹감, 기류를 타고 기류를 타고, 우리의 도착지를 젠장 저 기류에 맡겨야 한다는 황당함. 그래서 이것이 패션이라면, 이제 너는 어느 편이냐는 질문은 수정돼야 한다. 옷을 벗어라, 옷 속의 누드를, 그 재질을 파악할 수 없다면 이제 패션의 확인 따위는 무용지물이 아닐 수 없다. 해서 격렬하던 날갯짓과, 해서 알 수 없던 우리의 행선지가, 그 가능성이 눈물겹게 그리운 요즘이다. 당연히 저 뿌리에서 뻗어나온 가지라면, 열정으로, 글쎄 우리가 자신의 밑동을 다시 한번 걱정할 수 있다면,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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