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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아마추어리즘 | 김무곤

등록 2005-04-1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무곤/ 동국대 교수·신문방송학

독도 문제가 이렇게 크게 불거지기 전의 일이다. 어느 신문에 일본을 비판하는 글을 썼더니 반응이 전에 없이 좋았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격려 전화가 오고 인터넷 기사에는 내 의견에 찬동하는 댓글이 달렸다. 내 의견에 찬동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자연인으로서 기분 좋은 일이지만, 내 글의 내용과는 관계없는, 아니 내 글의 의도와 정반대의 반응이 많아서 오히려 마음이 착잡했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맞습니다. 일본인들은 다 죽여야 됩니다.” “일본 열도가 지진으로 다 가라앉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쌀밥은 쌀로 만들었다!

며칠 전 어느 텔레비전 방송국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 우리 언론의 독도 관련 보도가 너무 선정적이라는 내용의 비평을 내보냈다. 문제의 본질을 분석하거나 대응방안을 꼼꼼히 따지는 것이 아닌 국민 감정에 불을 지르는 식의 언론 보도 태도에 불만이던 나로서는 오랜만에 보는 참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방송이 나가고 난 뒤 해당 프로그램의 홈페이지는 격렬한 비판과 욕설로 가득 채워졌다. “이 방송국은 일본 국영방송이냐?” “이 더러운 친일파들아.” 이런 와중에 독도를 북한 미사일 기지로 대여하자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자기 동포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갑자기 일어나서 입에 거품을 문다. 조금 더 조용히, 좀더 꼼꼼히 따져서 대책을 세워보자고 말하는 이는 곧바로 매국노가 되는 분위기다. 이건 아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일본의 과거 회귀 세력의 준동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겉으로는 ‘한-일 우정의 해’를 내걸고 뒤로는 남의 영토를 슬쩍 건드려보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의 처사에 화가 치민다. 그러나 ‘반일’의 명분으로도 ‘애국’의 이름으로도 그 어떤 이유로도 우리 사회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에 가혹한 억압을 당하면서도 반인류적이고 비합리적인 이념과 행위에 끝까지 저항했다. 파시즘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인본주의이며 비합리성을 깨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이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표시나게 속마음을 드러내고, 너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애국의 이름으로 이성적 토론의 여지를 없애고, 아마추어리즘이 전문성을 몰아내고 있다.

우리가 손가락을 자르고 일장기를 불태우는 동안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조례를 제정한 자들은 그들이 애초에 세운 목표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냉담하던 주민들의 관심도를 끌어올렸으며 전국적 지명도를 획득했다. 그뿐인가. 극우파 정치 모리배들과 선량한 일본 시민을 분리해내는 정교한 작업을 게을리함으로써 일본 내 양심세력들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은 “쌀밥은 쌀로 만들었다”는 말처럼 당연한 말이다. 이런 당연한 말 한마디를 외치는 것만으로 쉽게 애국자가 되려는 세태를 경계해야 한다. 미군에 의해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며칠간 반미,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지면 몇주간 반중, 독도 문제가 발생하면 몇달간 반일,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우리나라처럼 일본과 가깝고 우리나라 국민처럼 일본 때문에 고통받은 국민들이 또 있을까? 프랑스의 독일 연구, 미국의 일본 연구나 일본의 러시아 연구가 각각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것은, 과거사의 아픔을 헛되이 날려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실일 것이다. 일본 연구만은 한국이 당연히 메카가 되어야 함에도 일본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변변한 연구기관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목소리 큰 반일파와 애국자가 이렇게 많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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