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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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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당신은 ‘어닝머신’을 뛰고 있다

등록 2005-02-2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봄’이 고문이다. 봄, 봄, 봄, 또 봄. 1년, 5년, 10년, 19년이 지나도 계속 봄! 꼴보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에도 무한정 봄!!! 당신에게도 그런 ‘봄’이 있는가.
여기서 부처님의 말씀 한 토막을 보자.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보면 괴로우나니,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못 보면 괴로우나니.” ‘꽃구경’도 ‘불구경’도 아닌 ‘법구경’의 한 구절이다. “고문한 인간들이 싸돌아다니지 말게 하라… 텔레비전 보는 게 고문이나니.” 고문한 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법을 구경’하고픈 이들의 또 다른 ‘법구경’이다. 고문 피해자 양홍근씨는 정형근 의원에게 직접 당했다며 몽따주까지 만들었다. ‘몽따주’에 담긴 의미는 ‘목따주’일까. 정치적인 모가지! 그는 다른 고문 피해자들과 함께 정형근 의원 퇴출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그들은 정 의원에게 다음과 같은 선언을 요구한다. “나가리. 그만 나가리.”(정치권에서…) 그러면서 기원하리라. 자신들의 목표가 절대 ‘나가리’ 되지 않기를!
“내가 하면 로맨스, 니가 해도 로맨스.” 21세기에 걸맞은 진보적인 표어다. 고문업계의 비상임 고문으로 대접받는 정형근 의원을 향해서도 예외 없다. 정치권에서 “나가리”를 실천하기도 전에 호텔방에서 “나가리”를 강요받은 비극적 운명. 정형근 의원의 부인이 ‘고소’도 하지 않았는데, ‘고소’하다는 시민들이 있다. 당사자 역시 별로 높지도 않은 호텔 24층 룸에서 잠시나마 지독한 ‘고소’공포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지러워서…. 그에게도 ‘봄’은 고문이었다. 호텔을 기습해 복도에서 렌즈를 들이밀고 있는 카메라를 봐야 하는 당혹스런 순간. 그러니까 “니가 해도 고문, 내가 해도 고문”이란 말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심복이었지만, 비판적 관계로 변신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활약을 보는 게 고문이었다. 결국 ‘법구경’의 구절을 되새기며 ‘38구경’ 권총으로 죽이라고 지시한 것은 아닐까. 당시만 해도 박정희와 사이가 좋았던 김재규의 ‘깽판’으로 김형욱은 파리에서 파리 목숨이 됐다고 한다. 깽판…. 깽을 판치게 해서 청부살인했단 말이다.
‘헬스’클럽은 ‘헬쓱’클럽인가. 헬쓱해지기 위해 운동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한겨레신문사는 지난 몇주 동안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얼굴이 반쪽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곳곳에서 이런 인사들도 난무했다. “운동 잘되십니까?” 스포츠가 아니다. 숨쉬기 운동도 아니다. 선거, 선거운동이었다. 집안 이야기라 민망하지만, 한겨레신문사는 지난 2월18일 사원들의 직접선거로 대표이사 사장을 뽑았다. 22살 차이가 나는 두 후보의 대결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뜨거웠다. 격렬한 선거운동이 격렬한 스포츠와 다른 점은 ‘몸’보다 ‘마음’이 더 고생한다는 거다. 그래도 운동기간 중엔 ‘닭살’보다 ‘곰살’이 더 유행한다. 괜히 친한 척 ‘곰살’맞게 구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거다. 이를 ‘거북살’스럽게 여기는 이들과 함께.
봄이 되면 진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상당수가 ‘러닝머신’을 선택한다. 나는 러닝머신에서 뛰는 사람들을 보며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이미 기계적으로 뛰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러닝머신’이 아니다. ‘어닝머신’(earning marchine). 당신도 지금 ‘어닝머신’에서 뛰고 있진 않은가. 하루하루가 힘들지라도, 봄은 온다. 지금 창밖에선 봄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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