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겨울의 길목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매서운 추위와 황량함의 상징인 시베리아 벌판을 떠올리곤 한다. 왠지 겨우내 삶이 회색빛에 둘러싸여 힘겹기만 하고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 같은 우울한 생각에 빠져들기 때문일 것이다. 솔제니친의 소설 에 등장하는 수용소가 시베리아쯤일 것이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어두운 모습을 들여다보면 더욱 그런 느낌에 빠져든다. 벌써부터 봄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날씨 탓인지 정치권과 정부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우리를 몹시 힘겹게 한다. 늘 그러려니 하다가도 사사건건 대치와 파행을 일삼는 국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답답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새해에는 우리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각종 법률안 심의와 새해 예산안 처리에 열정을 쏟는 국회의 모습을 보고 싶었건만 역시 무리였던 것 같다. 노동3권 완전보장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 공무원노조와 정부가 강경하게 맞서고 있는 모습 또한 정치권 못지않게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을씨년스러운 이 겨울을 견뎌내는 데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은 소식이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로부터 들려온 것은 분명 행운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노 대통령이 동포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경제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고, 이에 앞서 이미 청와대가 이를 해결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가동에 들어갔음을 이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 그것이다. 참여정부 경제정책 기조에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어서 그 파장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소득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술 및 임금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희망적이다. 양극화 문제가 어제오늘의 이슈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분배를 통해 적극적인 해결에 나서면서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가동하겠다고 하니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어떤 모습으로 선명성을 드러낼지도 관심거리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양극에 서 있는 당사자들이 이번 정책에 공감하는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일 것이다. 고소득층이, 대기업이, 정규직이 분배를 위한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고 저항한다면 그동안의 여러 정책에서 보았듯이 시작부터 어려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저소득층이, 중소기업이, 비정규직이 정부 조처가 기대에 못 미치고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며 실망하게 된다면 의도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고소득층과 대기업, 정규직에게는 양극화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에게는 양극화의 분노를 삭이려는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 대통령은 틈만 나면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면서 카를로스 메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의 ‘변신’을 사례로 들곤 한다. 이제 노 대통령은 양극을 설득해 경제 양극화의 난맥상을 바로잡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설득에 실패할 경우 노 대통령은 스포츠 경기의 심판이 동전을 던져 코트를 결정해주듯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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