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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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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필연

등록 2004-11-12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우연과 필연은 정말 종이 한장 차이일까. 사람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하나의 궁금증이다. 사람들은 우연한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면 필연이었다고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연과 필연은 늘 우리를 흥미롭게 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부시 대통령이 미 대선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11월4일(한국시각)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설이 나돈 것도 그 못지않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꽤나 욕을 얻어먹은 ‘세계의 대통령’은 당당하게 재집권에 성공한 반면, 50년 넘게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자치정부의 수반은 독립국가 건설을 지켜보지 못한 채 ‘식물인간’ 상태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의 표적으로 삼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과 아라파트가 공교롭게도 모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업가로서 크게 성공했고, 부(富)와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것도 과연 우연일까. 심지어 아라파트는 1992년 4월 리비아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로 실종됐으나 아버지 부시가 집권하던 미국의 도움으로 살아난 적이 있고, 빈 라덴은 오래전부터 그의 가문과 부시가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연을 갖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부시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이라크에서는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팔루자 대공세를 신호탄으로 종전 이후 미군과 저항세력간의 가장 격렬한 전투가 시작됐다. 아라파트 사망설 이후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는 장지 문제를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써부터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 부시의 재집권으로 이라크에서는 또다시 피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고 아라파트의 죽음은 팔레스타인에 피를 부르고 있어 지구촌을 전율케 한다.

그 모든 것을 우연과 필연이 빚어낸 역사적 오류쯤으로 되돌리고 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과연 없는 것일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시켜 팔레스타인에 파병할 것을 부시 대통령에게 제안해본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아시아네트워크 팀원인 다오우드 쿠탑 팔레스타인 알쿠드스 교육방송국장이 사석에서 한 처절한 절규가 늘 뇌리를 떠나지 않는 탓이다. “팔레스타인은 미국의 개입을 원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이라크는 미국과 싸우고 있지만, 우리는 미국이 군대를 파병해 이스라엘의 살육을 중단시켜달라고 오래전부터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파병을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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