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문학
고교등급제 실시로 논란이 되고 있는 수시전형은 원래 다양한 능력과 개성을 지닌 학생들을 선발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서 출발한 수시전형이 지금 존폐 기로에 서 있다. 그 책임은 무엇보다 고교와 대학에 있다. 고교에서는 다양한 능력과 개성을 지닌 학생들을 교육해내지 않았고 대학들은 수시 모집의 취지에 맞는 다양한 전형 방법을 개발하는 데 소홀했다. 이번 파동에서 고교와 대학은 상대에게 책임을 미루는 데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성해야 한다.
수시전형에 참가해보면 신뢰할 만한 전형 자료가 없어서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봉사활동 실적이라고 하지만 아파트단지 풀 뽑기, 가스 안전 점검하기 같은 것들이다. 봉사활동 시간 수는 많지만 그 내용은 전혀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신뢰할 수 없는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심한 경우 전교생의 70%가량이 수를 받는 내신성적, 한두 줄뿐인데다가 지극히 형식적이고 천편일률적으로 적혀 있는 담임교사의 학생 생활 평가 등의 전형 자료를 앞에 놓고 있으면 무엇을 근거로 삼아 학생을 뽑을지가 난감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개발한 다른 전형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논술형 시험을 추가해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과 개성이 아니라 학력을 평가하는 것이 전부이다.
수시전형에 참가했을 때의 막막함
수시전형이 이런 문제에 봉착하면서 일부 대학들은 고교등급제를 새로운 전형 요소로 등장시켰다. 현실에 존재하는 고교간 학력 격차를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다. 물론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학력 차이를 전혀 의미 없는 것으로 보는 것, 있는 차이를 없다고 애써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다. 그리고 입시가 어차피 상대적인 서열을 매겨 학생을 선발하는 것인 이상, 대학으로서는 학생들 사이에 학력 차이를 드러내 변별력을 확보하는 것이 대학 전형에서 필수적이다.
따라서 문제는 학생들의 학력 차이를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인데, 고교등급제는 전혀 그 답이 아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학력 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거주지를 기준으로 특정 집단 전체를 하나로 뭉뚱그려 평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교등급제는 평준화 폐지 주장보다 더 문제가 있다. 예전 비평준화 시절에도 고교등급제와 같은 경우는 없었다. 경기고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입시에서 경기고 출신들이 모두 가산점을 받은 적이 있는가.
학생들 사이에 학력 차이가 존재하면 어디까지나 학생 개개인의 학력 차이를 드러낼 방법을 강구해야지 특정 지역이나 고교를 대상으로 집단적으로, 그것도 선배들이 잘했기에 후배들도 잘할 것이라는 추단을 근거로 후배들에게 일률적으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특정 지역, 특정 고교 출신을 집단적으로 배려하는 등급제는 학력 등급제가 아니라 지역 등급제, 경제 등급제이고 새로운 봉건적 신분제이다.
얼마 전, 수시전형에서 지식 기반 사회가 되면 누구나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고 신분이동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글과 예전보다 부가 더 소수에게 집중되어 신분이동의 기회가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글을 토대로 자신의 입장을 서술하라는 논술형 문제를 채점했다. 그런데 답안지에서 80% 이상의 학생들이 신분이동 가능성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고 절망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소득 차이에 따라 지식에 대한 접근 기회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절대 다수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교등급제가 그렇지 않아도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강남의 극소수 학생들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대다수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그들 부모가 느끼는 절망감과 모멸감이 어느 정도이겠는가. 우리 사회가 그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감과 모멸감을 장차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고교등급제 문제는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고교등급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무슨 좌파적 발상도 아니고 차이를 없애자는 평균주의 만능론도 아니다. 공정한 경쟁 속에서 차이를 만들자는 것이고, 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정한 경기의 규칙과 기회를 적용하는 문제이다. 자기 선택과 무관하게 자기 삶을 옭아매는 선천적 억압에서 점점 인간을 해방시켜가는 것이 문명화의 길일 터인데, 세상은 갈수록 거꾸로이며 야만적으로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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