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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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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패

등록 2004-10-21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알카에다의 테러와 관련해 두 가지 얘기가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며 간담을 서늘케 하는 한 가지 얘기는 지하철이 테러 대상이라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테러하기가 가장 쉽다는 게 그 이유이다. 다른 한 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카에다는 한국에서 테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교통체증으로 도로가 막혀 테러범들이 약속한 시각에 테러 장소에 도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외국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한국민들의 습관 때문에 테러범들이 폭발물을 설치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게 그 이유이다. 섬뜩하다가도 엉뚱하기 짝이 없는 얘기여서 그나마 안도하게 된다. 하루 네 차례나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아빠가 걱정스러웠던지 고교생 딸아이는 “지하철 대신 버스 타고 출퇴근하세요. 저도 지하철은 안 탈 거예요”라고 말한다. 웃을 수도 없고 그저 씁쓸할 표정을 지을 수밖에….

정부가 이라크 아르빌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의 파병 기간을 2005년 말까지 1년 더 연장하기로 하고 절차를 밟는 모양이다. 파병 연장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과 이라크의 어둡고 차가운 ‘악연’이 당분간 계속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물론 올 초 파병 논란으로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도착이 늦어졌고 11월 초부터나 임무 수행에 들어간다고 하니 올해 말 철군을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파병 연장은 국정감사와 고교등급제 파문 등에 가려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알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로 추정되는 인물이 지난 1일 처음으로 한국을 지목하면서 한국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짓누른다. 우리 정부가 아무 생각 없이(?) 파병 방침을 재확인한 뒤 납치된 김선일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되돌아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과 미국이 지나칠 정도로 끈끈함을 과시하고 있는 것도 그들을 자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지난 10일 자이툰 부대를 깜짝 방문했고, 지난달 말 미국을 방문한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일찌감치 파병 연장 동의안 처리를 약속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달 25일로 예정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갑작스런 방한도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한국이 미국과 영국에 이어 가장 많은 2800명의 병력을 파병하고 있는 탓에 이미 오래전부터 이라크 저항단체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면서 아르빌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김영미 분쟁전문 프리랜서 PD의 전언은 이라크 상황을 더욱 불길하게 만든다.

이라크 파병에 이어 파병 기간 연장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한-미 동맹 강화와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 및 석유자원 선점 등을 내세우며 자이툰 부대의 파병을 바둑의 ‘꽃놀이패’에 비유하곤 한다. 결과야 어떻게 되든 우리에게는 피해가 없고 오로지 이득만 챙길 수 있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얘기다. 과연 정부가 자이툰 부대와 국내에서의 테러 위험을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파병 기간 연장 방침을 정했는지 궁금하다. 테러 위협이 상존하는 한, 이라크 파병은 결코 ‘꽃놀이패’가 아니라는 점을 정부는 늘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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