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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대한민국 호주대사관 폭격사건

등록 2004-09-17 00:00 수정 2020-05-03 04:23

▣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이 노래는 랩으로 불리어야 한다. ‘젊어서 놀’ 나이에 든 이들의 노래방 18번이 돼야 한다. 그런데 꼭 ‘젊어서 못 논’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막걸리 한잔 하면서 흥얼거리기 일쑤다. 사실 늙어서도 놀아야 한다. 인생의 황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겨야 탈선하지 않고 멋지게 인생을 정리할 수 있다.
한때 ‘고매’하셨던 분들이 ‘치매’에 걸렸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겠다. 최근 ‘원로’의 탈을 쓴 노인네 1400여명이 국가보안법을 지키자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고 한다. ‘맥주거품’처럼 날아갈 일이지만 안쓰러움을 지울 수 없다. 얼마나 심심하셨으면 그랬을까. 1400여 가호의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은 그동안 할아버지와 얼마나 놀아줬는가 되돌아봐야 한다. 사회복지 시스템에도 책임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수구적 어르신들을 위한 국가적인 경로잔치와 묻지마관광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 문화패 ‘극단’ 여의도는 ‘극단적인’ 연극작품 로 무료 봉사하기 바란다. 나랏일엔 신경 끄고 전국을 돌며 약을 팔아도 좋다. 실버전문 유랑극단으로 변신하시란 말이다. 더불어 정부는 ‘애국원로’들의 여가선용을 위하여 장기판을 대량 보급하라. ‘장군’ 출신들이 마음놓고 ‘장군멍군’할 수 있도록!(시국엔 ‘훈수’금지!)


곱게 늙어야 한다. 이번 ‘원로탈선’ 사건을 접하며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곱게 늙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훈련을 해야 한다. 내가 아는 30대 중반의 한 여인은 애가 둘이나 딸렸음에도 “아줌마” 호칭을 죽도록 싫어한다. 어디서든 20대 아가씨로 봐줘야 흡족해하는 이상한 습관을 가졌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몇살이냐”고 물으면 꼭 “알아맞혀보라”며 시간 끄는 인간들, 남녀와 직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많다. 실제 나이보다 적게 답하면 예외 없이 희희낙락하며 자신을 고무·찬양한다. 자신이 늙기 시작했다는 걸 부인하며 나이를 기만하려는 것, 처녀총각처럼 보일 거라고 착각하며 우기는 것, 이건 국보법에 매달리는 노인들처럼 추하게 늙을 수 있는 징후의 시초가 아닐까? 까짓거 피부엔 검버섯이 피어도, 생각만 싱싱하다면 곱고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 청년들에게 ‘영감’을 주는 ‘영감님’이 돼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늙어서 젊은이들에게 다음 두 가지 중 어떤 평가를 들을지 선택해야 한다. “참 고와요” 또는 “참 꼬와요”.


그들은 ‘메이드 인 오스트레일리아’도 사랑할지 모른다. 그들은 자카르타에 있는 호주대사관 폭격사건 뉴스를 접하며, 서울의 호주대사관도 폭격당했다며 슬퍼할지 모른다. 대한민국 ‘호주제’의 근간이 몰락하는 것은 테러조직에 의해 ‘호주대사관’이 무너진 것처럼 경악스러운 일로 비치리라. 호주제는 ‘국가보안법’처럼 중요한 ‘가족보안법’이었다고 주장할 거다. 이제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혼 만세”를 외치는 여성들을 어쩔 거냐며 엄살도 부릴 거다. 김부장·이부장·박부장이 아닌, 이 땅의 숱한 가부장들이!!
‘호주제 폐지’라는 낙타가 곧 정기국회의 바늘을 통과할 예정이다. 이는 법원의 ‘부부강간죄 인정’과 맞먹는 빅뉴스다. 남편의 강제적인 성관계 요구를 처벌할 수 있게 된 일이 여성의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일이라면, 호주제 폐지는 여성의 ‘성적(姓的) 자기결정권’에 손을 들어준 일이라 할 수 있다. ‘갓’ 쓰고 다니던 향수를 버리지 못하는 유림 여러분, 짜증 난다고 이렇게 욕하지는 마세요. “갓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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