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고건 국무총리 후임자 지명을 둘러싸고 나라 안이 한동안 시끄러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혁규 전 경남지사에게 마음을 두었으나 각계의 반대에 부닥쳐 뜻을 접어야 했다. 뜨거웠던 ‘김혁규 논쟁’은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제 이 지명자의 총리 자질을 국회가 검증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김혁규 카드’가 폐기된 뒤 총리 후보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전윤철 감사원장이 후보로 거론된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감스런 일이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려는 이유는 감사원장의 총리 후보 거론 자체가 국가적 불행이기 때문이다. 이해찬 지명자가 총리가 되더라도 노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도 더욱 그렇다.
감사원이 어떤 기관인가. 감사원은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에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의 헌법기관으로, 업무의 성격상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감사원장에 대해서는 임기 4년을 보장하고 있을 정도로 정치적 중립을 생명으로 삼는 국가기관이다. 청와대보다 북쪽에 위치한 국가기관 청사는 감사원이 유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통령 견제의 소임도 맡고 있다.
취임한 지 7개월밖에 안 된 전 원장이 총리 후보로 거론된 데 대해 관가에는 두 가지 설이 파다하다. 하나는 그가 공정거래위원장, 기획예산처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부총리 등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데서 연유한다. 노 대통령도 낙점의 유혹을 받기에 충분한 경력이다. 경제 살리기의 총대를 메게 하려 했던 김혁규 전 지사의 대체 카드로 꽤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전 원장의 ‘자가발전’설이다. 김대중 정부 때 ‘잘나갔던’ 그가 참여정부에서도 감사원장에 발탁된 데 자신감을 얻어 다음 수순으로 총리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감사원 직원들 사이에서는 “곧 떠날 사람”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돌 정도라고 한다.
어느 쪽이건 간에 국가적 불행을 불러오기는 마찬가지다. 마땅한 총리 후보가 없다고 대통령이 임기제의 의미를 망각한 채 감사원장을 ‘무 뽑아먹듯’ 총리로 지명하려는 것이나,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감사원장이 ‘영전’에 눈이 어두워 대통령의 눈치를 본다면 나라꼴이 어찌될 것인지 걱정스럽다.
김영삼 정부 시절, 국방부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감사로 전직 대통령들에게 칼을 들이대 ‘대쪽’ 이미지를 얻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감사원장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총리로 영전한 것을, 감사원 직원들은 씻을 수 없는 수치스런 일로 기억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전 원장이 그들의 ‘아픔’을 알고는 있는 것인지….
총리 인사 때마다 대통령이 감사원장을 후보로 검토하고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신경쓰는 감사원장이 있는 한,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불량 만두와 공적자금으로 배를 채우는 악덕 기업주들을 발본색원해주기를 감사원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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