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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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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공간- 그곳은 원래 바빴다네

등록 2004-04-29 00:00 수정 2020-05-03 04:23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북한 용천역 사고 뒤 7년 만에 서울 마포구 마포동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에 기자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이 단체 사무실은 마포대교 근처에 있어 강바람이 거센데다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기자들의 발걸음이 뜸했다. 하지만 용천 사고가 나자 북한 ‘퍼주기 논란’을 주도했던 기자도 한동안 이 사무실에서 붙박이 취재를 했다.

이 단체는 1997년 봄 굶주리는 북한 동포 돕기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여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당시 북한에 들어갈 수 없었던 기자들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조사한 북한 식량난 실태를 취재해서 기사를 썼다. 그해 여름까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북한동포돕기운동을 이끌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만 좋아하는 기자들은 점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에 발을 끊었다. 일상적인 대북지원 활동은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이 알아주든 말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대북지원 활동을 이어갔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활동과 농업, 축산, 보건의료 분야 등에서 남북 협력사업, 남북 민간교류협력의 활성화를 위한 각종 활동을 벌였다.

용천 참사가 알려진 뒤 하루 만인 4월24일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이하 북민협) 긴급운영위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에서 열렸다. 30여개 국내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의 협의체인 북민협은 4월25일 긴급구호 실무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고 4월27일 ‘용천돕기운동본부’를 띄웠다.

북민협은 우선 회원단체 갹출로 약 3억원을 모았다. 이용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은 “시민단체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렵지만, 일단 우리가 먼저 나서 동포돕기의 물꼬를 터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쪽은 정파·종교·이념을 뛰어넘어 북쪽을 돕고, 북쪽은 긴급구호뿐만 아니라 복구 과정에도 남쪽 인력의 참여를 허용하면 용천 참사가 남북 상생의 가교가 될 것”이란 희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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