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연/ 서강대 교수 · 중국문학
중국을 빈번히 드나드는 사람에게도 요즘 중국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느껴진다. 변화의 속도에 어지럼증이 난다. ‘지금 중국의 모습은 이것’이라고 말하는 순간에 그 중국은 벌써 옛날 중국이 되어버릴 정도이다. 가령 여성과 관련한 것만 해도 그렇다. 마오쩌둥 시대 중국에는 남녀의 성적인 구별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든 남자든 똑같이 동지라는 뜻인 ‘퉁즈’(同志)로 불렀듯이,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별다른 차별이나 구별이 없었다. 무성의 시대, 심지어는 여성의 남성화 시대였다.
‘샤오제’는 ‘술집 아가씨’로 바뀌고…
그런데 개혁개방 이후 여성에게 여성의 호칭이 생겨났다. 아가씨란 뜻인 ‘샤오제’(小姐)라는 호칭이 그것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샤오제’는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중국인들 표현에 따르면 문명과 현대화를 상징하는 호칭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성별화하는 호칭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미용실이 늘고 여성들이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년대 말부터 또 한 차례 거대한 변화가 일었다. 현대화와 문명의 상징이던 ‘샤오제’라는 말이 어느새 유흥업이나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자들을 부르는 말로 변했다. 요즘 중국, 특히 남쪽 지방에서 여종업원을 부를 때 종업원이라는 뜻의 ‘푸우위안’(服務員)이라 부르지 않고 ‘샤오제’라고 부르면 여종업원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급히 혼인법을 개정해 제동을 걸었지만 부유층의 축첩이 부활하고 성매매가 급속히 확산되는가 하면 학벌 좋은 여대생과 돈 많은 남자의 결혼이 새로운 사회적 조류가 됐다.
그런 가운데 공산정권이 들어선 뒤 사라졌던 ‘전업주부’ ‘가정주부’가 생겨났다. 원래 중국은 모두 맞벌이이고, 집안일도 당연히 분담한다. 그런데 부유층을 중심으로 전업주부가 생겨나고, 남자들은 바깥일을 하고 여자들은 육아와 집안일을 하는 새로운 가정 패턴이 부활하고 있다. 그에 맞추어 여성잡지들이 쏟아져나오고, 피부를 가꾸는 스킨케어나 다이어트, 성형수술이 대유행이다.
원래 중국인들은 변화에 능하다. 집착이 없다. 중국인들은 흔히 “상황을 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때의 논리, 상황의 논리에 따라 사고와 행동이 자주 변한다. 강물의 중심은 강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바뀌듯이 중국인들에게 진리란 어떤 고정된 본질적 실체가 아니라 늘 움직인다. 참으로 현실주의적이다. 서구 마르크시즘을 중국식으로 개조한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 혁명이 성공한 것이나 덩샤오핑이 시장경제와 사회주의를 접목해 ‘중국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라는 기발한 노선을 발명한 것도 크게 보자면 그런 ‘시중(時中)적 세계관’의 표현이다.
중국의 빠른 변화를 중국인들이 능히 감당하고 있는 것은 원래 변화에 능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의 덕이 크고, 더구나 많은 중국인들이 그동안 수많은 우회로를 거친 끝에 이제야 중국이 제대로 갈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력이 증진되는 가운데 민족적 자부심이 높아지고 생활 여건이 좋아지면서 지금 대다수 중국인들은 발전주의 신화에 취한 채 변화의 흐름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중국 밖의 국외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 중국의 빠른 변화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상이 아니라 일종의 편향이자 극단이다. 마오쩌둥 시대, 더 좁게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국이 범했던 편향과 극단을 바로잡아 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극단과 편향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에 여성의 성적 차이를 부정하던 무성의 논리가 하나의 극단이자 편향이었다면, ‘샤오제’라는 호칭이 술집 아가씨를 말하는 것으로 변질된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 역시 또 다른 편향이다. 편향과 극단의 길을 가파르게 치닫고 있지만 그것을 편향과 극단으로 여기기보다는 정상화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보면, 지금 중국 사회는 문화대혁명의 역사적 대가를 아직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낳은 중국 시장경제의 편향
루쉰은 모든 문명을 하나의 편향적인 발전일 뿐이라고 했지만, 한 시기의 역사가 극단과 편향으로 가면 그것을 바로잡아 가는 과정에서 쉽사리 또 다른 극단과 편향의 시대가 이어지기 마련이다. 야만적인 사회주의 이후에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천하가 된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시계추처럼 오가며 극단의 시대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적 지혜가 더없이 아쉬운 것이 어디 중국에만 해당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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