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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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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변종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결혼신고만 하는 결혼?
등록 2013-06-15 09:00 수정 2020-05-03 04:27

주말에 강원도 인제군의 험한 산등성이를 꼬박 7시간 동안 오르락내리락했다. 토박이가 된 어느 산장 여주인을 선봉장으로 산나물 캐기에 나선 참이었다. 서울에서 온 남자 둘, 여자 여섯이 초행길로 따랐고 중간에 2명이 포기하고 먼저 하산했다. 산장 주인이 키우는 개 다섯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행을 호위했다. 그중 수컷 두 마리는 젯밥에 관심이 더 컸다. 가장 잘생기고 멋진 암컷 ‘캔디’를 쉼없이 쫓아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지친 몸도 쉴 겸 싸간 맨밥에 막 채취한 산나물을 흙먼지 그대로 고추장에 쌈으로 싸먹는 점심 자리에서 사태가 벌어졌다. 수컷 한 마리가 드디어 교미에 성공한 것이다. 민망하게 식사 자리 바로 옆이었으니 어색한 대화가 오갔다. “개들이 하는 거 처음 봐.” “개들이 저런 체위로 하네.” 식사가 마무리될 쯤 그들도 일을 끝냈다. 미혼 여성들 틈이라 불편했는지 달게 먹은 밥이 체했다.
목적을 달성한 수컷은 산행 내내 고달파 보였다. 캔디를 호시탐탐 노리는 다른 수컷을 몰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다. 다른 수컷은 좀체 포기하지 않는 눈치다. 사람이라 다를까. 다만 사람은 ‘지속 가능한 사랑의 제도화’를 통해 힘겹게 으르렁거리지 않을 뿐이다.

한겨레 박승화 기자

한겨레 박승화 기자

결혼식을 했지만 결혼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부부를 이따금 보게 된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공식적으로 선언했을 뿐 동거와 다를 바 없다. 어느 한쪽에게 새 사랑이 싹트거나 신뢰에 커다란 금이 가는 유사시에 법원을 찾지 않고 즉각 헤어질 수 있다. 이렇게 ‘돌싱’이 됐어도 기록상 흔적이 없으니 처녀·총각으로 완벽히 복귀할 수 있다. 돈이 얽혀 있더라도 법적 보호가 가능하다. 사실혼으로 인정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단점? 둘만의 결혼이 아닌 가족 간의 결혼에 가까운 우리나라 관습상 상대 가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나는 그 거꾸로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결혼식은 하지 않고 결혼신고만 하고 사는 방식 말이다. 이론상, 여자에게 특히 난감한 가족끼리의 결혼 관습을 최대한 회피하면서 상대방에 대해 법적 충성을 맹세할 수 있다. 듣자 하니, 사회주의를 거치며 가정 내 남녀 위상이 우리나라와는 반대가 됐다는 중국은 결혼 방식도 좀 달랐다. 결혼식을 하기에 앞서 결혼신고부터 하는 게 관례다. 결혼식 1~2년 전에 결혼신고하고 동거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신혼 생활부터 하고 자금이 마련되면 혼례를 치른다. 혼례의 절정은 결혼신고서를 하객에게 보이는 차례다.

결혼의 변종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결혼신고 없이 살고 있는 4년차 부부의 신부, 16년차 부부의 신랑에게 이런저런 궁금증을 물어봤다.

이성욱 씨네21북스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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