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에 대한 글(969호 ‘연인의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 나가고 취재원이 이의를 제기했다. 첫 번째 ‘실험’ 이후 새 연인과 바로 헤어지지 않았고, 이혼도 그 뒤 오랜 시간이 흘러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또 하나는 첫 번째, 두 번째 등으로 지칭한 방식이었다. 관계가 그렇게 단절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연인과는 애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반드시 3명 이상의 관계를 유지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셋 이상의) 관계에 집착하느라 나타난 오류로 봤다. 나의 실수에 대해 사과하면서 한 번 더 만남을 요청했다.
우리의 재회는 질투나 소유욕 없이도 사랑이 가능한 사례를 먼저 꺼내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는 보노보 침팬지(사진)의 사례를 들었고, 그는 지금도 존재한다는 몽골의 모계사회를 언급했다. “그곳의 아버지들은 질투하는 법을 모르고, 그걸 보면 질투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질투로 여기는 감정을 잘 들여다보면 그 상당 부분이 실은 부러움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부럽다는 건 나도 가지고 싶다거나 나도 저러고 싶다는 욕망인데 이는 대화만 충분히 이뤄지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한다. “질투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 해결책은 잃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폴리아모리를 수용하는 연인들은 다른 사랑이 생긴다고 해서 내 사랑을 잃는 것이 아니니 폴리아모리 자체가 질투를 배제하는 사랑법이라는 얘기다.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질투는 상대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욕망에서 출발하기도 하는데, 그 헛된 욕망을 갖는 나 자신의 비루함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
완전한 소유가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질투는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러움을 열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가지고 싶고 저러고 싶듯 상대방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질투라는 감정을 종종 경험하는 듯했다. 다만, 그는 이런 태도와 신념으로 질투를 제어하고 이겨냈다.
폴리아모리가 양자 간 사랑에 비해 감정의 유효기간이 훨씬 길다는 경험도 비슷한 원리로 이해했다. 폴리아모리는 나의 사랑, 우리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객관화하면서 지켜봐야 한다. 이건 어떤 문제가 생겨날 때 초기에 발견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오래된 관계에서 나타나는 관성(의 태도)이 끼어들 틈이 적다는 걸 의미한다. 지나친 스트레스는 암을 유발하지만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이성욱 씨네21북스 기획위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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