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
한 달 전 경찰이 보도자료를 내어 연인 사이의 이별 방식에 대해 한마디 했다. 일방적 이별 통보에 따른 사건·사고가 많은 모양이다. 어차피 이별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데,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말라니 갑갑한 노릇이다.
오래전, 그녀의 집 부근 편의점에 들어가 가장 큰 커터칼을 샀다. 사람을 해하려고 산 것은 아니었으나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칼로 뭔 짓을 저질렀는지 밝히긴 곤란하다. 다음날 난 홀로 동해안에 닿아 있었다. 화재 전 낙산사 원통보존의 고요하디고요한 마당에 이르렀을 때, 그녀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었다. 마당에 곱게 심은 야트막한 나무들의 잎사귀는 누가 뿌려놓았는지 물방울로 촉촉했고, 한낮의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평화롭고 예쁜 저 물방울이 금방 사라질 것을 생각하자 모든 게 그와 같다는 깨달음이 왔다. 깨달음은 개뿔, 칼까지 샀으니 더 이상 내 방황을 이어갈 용기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 칼이 준 느낌을 잊지 말자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고, 이별을 대하는 데 분기점을 맞았다. 이보다 무서운 수렁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 수렁은 주관의 세계라는 걸 알았다. 이후로 연애가 잘됐다. 이별을 잘할 줄 알아야 연애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별을 대하는 최악의 태도가 앞선 내 경우이고, 그 엇비슷한 게 인질극 이별이다. 주로 남자들이 저지른다. 자기 맘은 이미 이별인데 상대방이 헤어지자고 먼저 말하도록 알게 모르게 고문하는 것이다.
수렁 이후 택해온 방식은 ‘만리장성 이별’이다.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판단되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통보한 뒤 재빨리 만리장성을 쌓아버리는 것이다. 재결합 따위 개에게나 줘버려라, 는 차가운 태도다. 상대가 되도록 빨리 마음을 접도록 하는 것이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했다.
아직 해볼 틈이 없었으나 최상의 이별법은 애프터서비스를 동반한 만리장성법이다. 만리장성의 조그만 문을 열어놓는 거다. 그 문을 통해 드나들고 살펴보며 허물어질 기세가 없다는 걸 자각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냉정하게. 이별을 통보받는 쪽이 맘을 가다듬을 물리적 시간 정도는 주는 게 옳지 않나? 만나자고 할 때 적어도 만나는 줘야 한다. 그렇다고 이별여행이나 이별섹스 같은 건 꿈도 꾸지 마라. 인질극 이별보다 더 나쁘다.
사이코패스 빼고 분리불안증 없는 사람이 있을까? 호감이 느껴져 탐색을 시작했을 때, 이 사람과는 잘 헤어져질까 고민할 정도로 깊이 앓는 사람이 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볼테르의 명언을 살짝 바꿔 명심하자. ‘나는 당신의 (이별)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어쩔 것인가?’
이성욱 씨네21북스 기획위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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