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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사랑을 사랑하는 것

세 연인, 폴리아모리
등록 2013-07-10 16:04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결혼은 미친 짓’이라거나 ‘아내가 결혼했다’고 괴로워하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할 일이다. 타협을 불허하면 삶이 힘들어진다. 내가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도 일종의 타협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숨기려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며(그리고 완벽히 성공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몸과 맘으로 정성을 다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귀찮다. 그 피곤함을 무릅쓰느니 안 하고 만다는 게 내 타협점이다. 이런 타협이 싫다면 영화 처럼 너를 사랑하지만 저 사람도 사랑한다는 걸 공개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이는 질투와 소유욕이라는 ‘괴물’과 처절하게 싸워 이겨야 한다는 걸 뜻한다.

다자간 연애를 뜻하는 ‘폴리아모리’(Polyamory)는 이런 무시무시한 일을 치러낸 뒤에야 가능하다. 실제로 가능할까?

(완벽 익명을 요구한) 그는 결혼 16년차에 별거를 시작했다. 애정 문제가 아닌 다른 이유였다. 문제가 해소되자 아내는 다시 합치자고 했다. 곤란했다. 별거 중에 연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했고, 타협을 거부했다. “난 이 사랑도 저 사랑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둘째애를 낳았다고 아이를 향한 애정이 2분의 1로 무 자르듯 쪼개지는 건 아니지 않나. 두 달 동안 실험을 해보자.” 그의 설득으로 세 명은 애정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두 달이 되기 전에 실험은 실패했다. 새 연인이 한순간 질투심에 사로잡혔고, 아내를 도발했다. 새 연인과 끝장났고, 아내와는 이혼 절차를 밟았다. 뭐가 문제였을까?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의 실험이 같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애정 형태와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전문용어로 ‘메나주 아 트루아’(ménage à trois)라고 지칭한다는 것, 더 넓은 개념인 폴리아모리가 실재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두 번째 시도는 남편이 있는 여자였다. 그 남편의 동의와 참여로 일을 도모했다. 시간으로 치면 짧았지만, 가능성을 보았다. ‘질투’를 대체하는 개념인 ‘컴퍼션’(Compersion)에 열쇠가 있음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생기는 따스한 감정’이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다른 사람과 연애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고 기뻐해주는 거다. 바람피우다 누군가는 파괴되는 결론에 비하면, 두 번째 폴리아모리는 훨씬 좋게 정리됐다. “룰이 필요한데 그건 대화의 룰이기도 하다. 아주 많은 대화로 어떤 영역을 사적인 영역으로 인정해주고 침범하지 않을지 세세히 정해야 하고 그 룰은 공통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세 번째, 네 번째 폴리아모리의 지속 시간은 체감상 무척 길었고, 예상치 못한 걸 체험했다. 둘 사이의 연애에선 3개월이라느니 최장 30개월이라느니 하는 유효기간이 무효가 되는 경험이었다. 권태로움이 아주 느리게 나타나거나, 또는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이성욱 씨네21북스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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