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마밭의 멀칭(덮기) 실험. 왼쪽은 나무 톱밥을 깔 예정이고, 오른쪽은 종이상자를 깔았다.
본격적인 잡초 제거의 시기가 왔다. 잡초 제거는 시간 날 때 하는 게 아니라 생각나면 해야 하는 일임을 올해야 깨닫는다. 잡초를 잘라 흙이 보이지 않게 덮어주다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게으른 탓에 이번 봄 뭔가 심을 때가 다 되어서야 밭 갈무리를 했는데, 오히려 흙을 덮고 있던 마른 줄기가 흙의 수분을 유지해줬다는 사실에 소소한 안도감이 들었다. 위험해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큰맘 먹고 사들인 작두로 흙을 뒤덮고 있던 줄기를 그러모아 열심히 썰었다. 음식물쓰레기를 발효시킨 퇴비와 부엽토를 섞고 작물을 심고 열심히 자른 마른 줄기를 덮어줬는데, 몇 개월이 지나보니 잡초가 훨씬 덜 올라오는 듯하다. 물을 자주 줄 수 없는 환경에서 흙이 쉽게 마르지 않아 뿌듯함이 밀려온다.
지난해 이맘때쯤, 친절한 이웃분이 고구마가 가장 쉽다며 밭에 와서 직접 고구마를 심어주셨다. “두둑 두 개 정도 만들어놓으면 되겠네!” 하셔서 한 평 정도 되는 땅을 두 개로 갈라 밭을 만들어 거름을 섞어뒀다. 농사를 짓기로 하며 세운 원칙 중 하나인 ‘비닐 쓰지 않기’를 고려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비닐이 덮였고, 끝에 작은 유(U)자 모양의 도구를 이용해 고구마 줄기를 차례로 비닐에 푹푹 눌러 꽂으니 정말 순식간에 고구마밭이 완성됐다. “고구마는 관리할 게 없어. 가끔 물 주고 그냥 놔두면 돼. 줄기 많이 나기 시작하면 고구마 줄기 해먹어도 되고.” “네, 정말 간단하네요.” 그러고 나서 10월 말쯤 물을 두어 번 줬을 뿐인데, 고구마는 정말 손이 많이 갈 것도 없이 잘 자라주었다. 그해에 수확한 어떤 작물보다 월등한 성적을 거두었고 심지어 친구에게 조금 보내주기도 했다.
올해 역시 고구마를 심었다. 고구마는 정말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고구마 캐는 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저번 주 장날에 맞춰 시장에 나가보니 한 아주머니가 해남에서 꿀고구마 줄기를 가져오셨단다. 한 단에 1만원을 주고 고구마 모종을 샀다. 비가 온 후, 이번에는 조금 더 욕심을 내어 3m 정도 길이의 두둑 두 개를 만들었다. 사실 심기 전까지만 해도 비닐 멀칭을 할지 말지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는데 그래도 비닐을 쓰지 말자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기로, 우리 식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잘 사용하고 있는 목재 톱밥은 우리의 실험 대상 1호이자 든든한 멀칭 재료다. 지난해 양파밭에 써본 결과 잡초가 적게 자라고 수분 유지에도 성공적이었다. 그 양파는 놀랍도록 알이 굵고 건강하게 잘 자라서 곧 수확을 앞두고 있다.
올해 새로 시도하는 스틱브로콜리에도 톱밥을 꼼꼼히 깔아뒀는데 잎이 팔뚝만큼 커지는 동안에도 벌레 한 마리 오지 않았다. 꽤 놀라운 결과여서 연신 ‘와우!’를 반복하며 나름의 이유를 분석해봤다. 벌레들, 특히 여기저기 있는 잎을 모두 갉아먹어 버리는 달팽이가 톱밥이 까끌까끌해 오지 않는다고, 나무에서 나는 냄새가 싫어서 오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 확실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물론 비닐 멀칭만큼 완벽하고 덜 수고로운 건 없겠지만, 나름의 실험을 이어가며 밭의 사정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은 구슬땀만큼 빛난다. 지구에 빚졌다는 약간의 죄책감도 좀 덜면서 말이다.
글·사진 이지은 패브릭·그래픽 스튜디오 달리오로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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