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서울 정도로 빨리 자라는 만차랑단호박이 열매를 맺었다.
어디 돈 벌겠다고 나섰을까? 그래도 대형마트에서 파는 채소 가격이 싸면 쌀수록 ‘이러려고 농사짓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때’가 있다. 여름은 텃밭 농부에게 힘든 시기다. 2025년 7월6일 오후 2시께, 밭장 차를 타고 밭에 도착했을 때 ‘외기 온도’는 35도였다.
먼저 온 막내는 벌써 얼굴이 땀범벅이다. 계획하고 온,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상추·고추·가지 등 작물을 충분히 수확하고, 지난주 만들어놓은 밭 두 고랑에 추석 즈음에 먹을 옥수수를 파종해야 한다. 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단 막내가 가져온 막걸리부터 한 순배 돌렸다.
도대체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0분 일하고 ‘사이드카’, 10분 일하고 ‘작업중지명령’ 발동이 되풀이됐다. 열에 익어 평상 위에 쳐놓은 타프가 군데군데 터지기 시작한다. 땀이, 땀이, 딱 수도꼭지 튼 것처럼 죽죽 흐른다. 아무리 수건으로 얼굴을 훔쳐도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손녀 육아 때문에 밭에 못 온 동무가 ‘지구가 큰일’이란 문자를 보내왔다.
일주일은 얼마나 긴 시간인가. 상추는 모조리 꽃대를 올렸다. 망연자실인데, 일주일이라도 더 수명을 늘리려 쪼그리고 앉아 ‘이등병’ 머리칼처럼 상춧잎을 다 따줬다. 풀을 잡아준 밭의 상태가 더 심각하다. 풀과 같이 산 상추는 상태가 훨씬 낫다. 키 큰 풀이 햇볕도 막아주고, 맥없이 흘러갈 물도 잡아 상추와 나눈 덕이다. 풀과 작물의 공생은 신비롭다.
만차랑단호박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파종 일주일 만에 떡잎을 내고, 한 달 만에 줄기를 곧추세웠다. 올해 파종한 씨앗마다 발아율이 떨어져 ‘마이너스의 손’이란 별칭을 얻은 밭장이, 자기 없을 때 심어 자란 만차랑을 바라보며 신기해한다. 지난주 덩굴 타고 자라라고 세워준 타원형 지주대에 줄을 감아 그물망까지 만들어준다. 아래로 덩굴을 뻗어 다른 밭으로 가려던 녀석들을 다 포박해 지주대 쪽으로 다시 올렸다. “형, 이놈들 크는 게 무섭소.” 삽시간에 흘린 땀이 ‘서말닷되’는 족히 됐을 밭장이 흐뭇하게 웃는다.
‘월간 원예’ 보도를 보면, 만차랑은 ‘단호박의 왕’으로 불린다. 단호박 중 당도가 가장 높고 포기당 40~100개 정도 과실을 얻을 수 있는 다수확종이란다. 종자 가격이 비싸다는데 텃밭 큰형이 어딘가에서 종자 10개를 얻어왔고, 그중 7개가 발아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큰 건 호박잎이 아니라 연잎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씨 뿌려 자란 친구가 저 정도일 줄이야. 언뜻 세어도 꽃 밑에 자란 열매가 7개, 아직 열매가 나지 않은 꽃도 숱하다. 손으로 잎을 따던 밭장이 낫을 잡는다. 만차랑은 잎과 열매는 물론 줄기도 달단다. 밭장이 잘라낸 호박잎과 줄기를 가져와 된장국을 끓였다. 그야말로 북한산이 놀라고, 구파발이 말 울음소리를 낼 맛이었다. 다음주엔 만차랑 열매 첫 수확을 할 수 있을 듯하다.
‘아침의 영광’(모닝글로리)으로 불리는 공심채가 차랑차랑 자랐다. 지난주 첫 수확 뒤 더 잘 자라는 것 같다. 아직 본격적으로 수확하지 못한 가지며 고추, 토마토 따위 열매채소는 아래쪽 잎을 쭉 정리해줬다. 지난주 만들어놓은 밭 두 고랑에 자경하는 동무가 나눔한 옥수수 종자를 호미 하나 간격으로 넣었다. 물 두 차례 잔뜩 주고 돌아섰는데, 기세 좋은 풀 탓에 누가 다녀간 기색이 전혀 없다. 두 시간 남짓 ‘사우나’였다. 일을 마치고 나니 외기 온도는 33도까지 떨어졌다. 아유, 여름이 한창이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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