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동 시금치 캔 뒤 팥을 뿌린 밭에서 용케 살아남은 시금치가 꽃대를 올려 씨앗을 품고 있다.
해가 뜨거워졌다. 볕 피하려 얇은 점퍼까지 입었는데 숙인 등이 따갑다. 간만에 땀이 흠뻑 났다. 더위가 시작됐다.
토요일에 다들 이런저런 일이 있어 모이지 못했다. 일요일 오후 부랴부랴 도착한 밭에서 얼굴이 붉어진 막내가 쇠스랑을 휘두르고 있다. 해마다 봄에 밭을 만들어놨다가 여름이 올 즈음 고구마를 심은 고랑이다. 올봄에는 퇴비도 넣지 않고 방치했더니, 풀은 무성하고 땅은 딱딱해져 있다. 흙이 잘 부서지지도 않는 수준이어서 고구마순 넣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다른 수를 내야지.
미리 만들어둔 밭을 살폈다. 뭔가 종자는 넣었는데 풀만 무성한 게 두 고랑 보였다. 그중 한 고랑을 쓰기로 했다. 역시 땅이 꽤 딱딱해 물을 충분히 뿌린 뒤 쇠스랑으로 뒤집었다. 이마와 등에서 연신 땀이 흘렀다. 뒤집은 뒤 갈퀴로 툭툭 긁어내면 쉽게 빠지는 풀뿌리가 땅이 딱딱해서인지 좀처럼 빼내기 어렵다. 장갑 끼고 손으로 털어내는 수밖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다 정리하고 나니 “잠깐 쉬자”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이 없어 캔맥주로 갈증을 풀었다.
공동경작 대신 손수경작을 고집하는 텃밭 동무가 자기 밭에 심고 남은 고구마순을 평상 위에 두고 갔다. 양은 많지 않지만 한 고랑 내기에 충분하다 싶다. 고랑을 반으로 갈라 세로로 두 줄 심기로 했다. 물에 잠깐 담갔던 고구마순을 반으로 갈라 막내랑 한 줄씩 넣었다. 고구마순은 잎과 줄기는 세우고 뿌리 쪽은 옆으로 눕혀 심는다. 고랑이 작아 금세 끝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 걸 아는지 모종 심은 상추는 곧 꽃대를 올릴 기세다. 씨 뿌려 여린 잎이 나왔을 때 옮겨 심은 잎채소도 밭에 해가 잘 들어서인지 색이 진해졌다. 색이 진해지면 쓴맛이 강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키를 키우며 꽃대를 올린다. 모둠 쌈채 세 종류를 뿌린 밭은 일부러 일조량이 서너 시간밖에 안 되는 쪽을 택했다. 발아율이 좋아 여러 차례 솎아주고 일부 뽑아 옮겨심기도 했는데 여전히 쌩쌩하다. 모종 상추와 옮긴 상추가 꽃대를 올린 뒤에도 몇 주는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상추는 이맘때 매주 따줘야 한다. 잎이 너무 많아도 꽃대를 쉽게 올린다.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땄는데도 수확할 게 많이 남았다. 10여 년 텃밭 생활 중 하루 기준 가장 많은 양을 수확한 듯하다. “이거 집에 가져갈 게 아니라 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거 아냐.” 실없이 웃었다. “형님이 상추 따다 지친 건 첨 보네요.” 막내도 따라 웃는다.
완두는 일주일 새 잎이 누레졌다. 국산과 슬로베니아산을 한 고랑씩 심었는데, 어느 쪽이 ‘물 건너온’ 완두인지 알아볼 수 없다. 한 밭만 대충 수확했는데도 꼬투리를 까보니 완두콩밥 서너 번은 해먹을 만큼이나 됐다. 남은 건 다음주에 감자 캐고 동무들이랑 안주 삼아 삶아 먹으면 되겠다 싶다. 그러고 보니 하지(6월21일)가 코앞이다.
오후 늦게 비가 온다 해서 물은 충분하지 않을 정도만 줬다. 여리여리 키를 키운 고추가 비에 꺾일까 싶어 지주대를 세웠다. 애먹이던 호박은 걱정이 사라졌다. 큰형이 구해온 만차랑 단호박 씨앗이 발아에 성공해 제법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다음주엔 에이(A)자 지주대를 세워줘야 할 것 같다. 호박죽 끓여 먹고 남은 속을 한 움큼씩 집어넣은 뉴질랜드 단호박도 신기할 정도로 잘 자란다. 뿌듯했다. 집에 도착할 무렵 하늘에서 물방울이 톡톡 떨어지기 시작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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