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트에서 산 뉴질랜드 단호박 속을 파내어 얻은 씨앗을 밭에 넉넉하게 넣었다.
아직 밭 몇 고랑이 비긴 했다. 그래도 올봄 농사는 얼추 마무리된 거 같다. 무·열무·알타리 같은 여름 김치용 작물을 좀더 넣고 고구마 순도 내야 하니 빈 밭 다 채우는 건 시간문제다. 이제부터 가을까진 풀 잡아주고 수확하는 일이 전부다.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등 열매채소는 자리를 잘 잡았다. 작두콩과 수세미도 본격적으로 줄기를 올리기 시작한다. 2024년보다 더위가 더디 와서인지 모종 낸 잎채소는 더디 자란다. 대신 씨앗 듬뿍 뿌린 잎채소 발아율은 기대 이상이다. 솎아낸 여린 잎채소 가운데 큰 놈들로 골라 빈 밭 한 고랑을 새로 채웠다. 무탈하게 잘 자리를 잡아준다면, 곧 풍성한 잎채소를 즐길 수 있겠다 싶다.
한 고랑에 절반씩 심은 쑥갓과 아욱은 곧 수확을 시작할 수 있겠다. 간만에 뿌린 당근은 너무 빽빽하게 올라와 곧 솎아줘야 할 거 같다. 잘못 보관해 싹이 났던 콩과 팥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어 밭 뿌렸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줬다. 한국과 슬로베니아산 두 종류로 한 고랑씩 심은 완두는 벌써 꼬투리가 제법 달렸다. 꽃이나 보려고 집에서 싹 난 것 몇 알 가져다 심은 감자도 제법 실하게 줄기를 뻗었다.
지난해 무더위 속에 몇 개 수확하지 못했던 오이는 올해 아예 내지 않았다. 역시 몇 개 수확하지 못했지만, 호박만큼은 빼놓을 수 없다. 열매도 열매려니와 호박잎은 한여름 가장 즐기는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잘 씻어 끓는 물에 찌면 최고의 쌈이 되고, 숭덩숭덩 썰어 넣고 된장국을 끓여도 그만이다. 그런데 올봄 농사에서 가장 고전하고 있는 게 호박이다. 사연은 이렇다.
애초 올해 우리 밭에선 외국 사는 밭장의 동무가 갖다준 ‘유럽 호박’이 자라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밭장이 일이 많아져 밭에 나오지 못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4월 중순 호박씨 넣기 딱 좋은 시기에 잠시 짬을 낼 수 있게 된 밭장은 나눔 받은 호박씨가 사라졌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비닐봉지에 넣어 식탁 곁에 뒀는데, 오래 방치해두니 필요 없는 물건으로 여겨 누군가 내다 버린 게다. 투덜대는 밭장을 달래 종묘상에서 얼룩풋호박 씨앗을 사다 뿌렸다.
얼룩풋호박은 좀처럼 싹을 내지 못했다. 한두 개 떡잎 나온 걸 본 듯도 한데, 풀 잡아주고 다시 살펴보니 온데간데없다. 새가 종자를 골라 쪼아 먹기라도 한 건가? 호박씨 발아율 0%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다시 종자를 구하려는데, 마침 큰형이 나눔 받은 호박씨가 있단다. 일본에서 개량해 럭비공 모양으로 자라는 만차랑 단호박이다. 열매는 물론 잎과 줄기까지 맛 좋다는 말에 주저 없이 밭 한 고랑에 호미 하나 간격으로 종자를 넣었다. 밭장이 얼룩풋호박 씨를 낸 밭도 그대로 둘 순 없다. 호박죽 끓이려고 마트에서 산 뉴질랜드 단호박 속을 긁어내니 씨앗이 풍년이다. 통에 넣어 밭으로 가져와 얼룩풋호박 뿌린 밭 여기저기 충분히 넣어줬다.
잎채소가 더위에 녹아내리는 시기에도 호박잎은 기세 좋게 덩굴을 뻗으며 싱그럽게 밭을 물들인다. 언제쯤 떡잎을 만날 수 있을까? 두어 주 안에 발아하는 기미가 없으면 화훼단지에서 모종이라도 구해야겠다. 텃밭 농사를 시작한 뒤로 호박잎 없이 여름을 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게 됐다.
글·사진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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