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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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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버린 수거함 속 ‘헌 옷’ 어디로 갈까

프롤로그-헌 옷 쫓기의 시작
배우 김석훈 등 유명인 의류 포함 153점
‘스마트 태그·GPS 추적기’ 바느질해 달고 전국 수거함에 넣었더니
등록 2024-12-27 22:22 수정 2024-12-28 17:25
2024년 7월5일 한겨레21 취재팀이 방문한 경기도 포천의 국내 중고의류 수거 및 수출 업체 창고. 수거한 옷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2024년 7월5일 한겨레21 취재팀이 방문한 경기도 포천의 국내 중고의류 수거 및 수출 업체 창고. 수거한 옷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서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 해변. 물가에 20m 높이의 ‘절벽’이 솟아 있다. 이 절벽은 돌이나 흙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옷과 섬유가 쌓인 거대한 쓰레기 산이다. 옷 쓰레기 산꼭대기에서는 검은 소와 흰 소가 모여 풀을 뜯듯 옷의 잔해를 입으로 밀어 넣고 되새김질을 거듭하고 있었다. 소들이 먹는 옷은 유럽과 미국에서 사람들이 입던 것들이다. 아크라의 중고 시장에서마저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옷이 이곳에 쌓였다. 매주 약 1500만 벌의 중고 의류가 아크라로 쏟아져 들어오고, 이 가운데 40%는 곧바로 쓰레기 산으로 직행한다고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언론 에이비시(ABC)가 2021년 공개한 심층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영국 비비시(BBC), 미국 시비에스(CBS) 등에서도 비슷한 보도가 이어졌다. 중고 의류가 재활용되지 않고 결국에는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에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 보도들이다.

 

‘죽은 백인의 옷’이 만든 쓰레기 산

이렇게 기부되거나 헐값에 건너온 옷 쓰레기를 가나에서는 ‘죽은 백인의 옷’(Dead white man's clothes)이라고 부른다. 1960년대에 중고의류가 가나에 몰려들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 값싼 옷들이 백인들이 죽은 뒤 남겨진 옷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명칭을 붙였다. 외신 보도를 보면, 사람 허리 높이의 중고의류 한 꾸러미당 수십~수백달러(수만~수십만원) 안팎으로 팔리지만, 대부분 소비자에게 가지 않고 다시 버려진다. 가나 인구 3400만 명을 고려하면, 매주 1500만 벌의 옷은 사람이 입기에 너무나 많은 양이다. 세탁과 재단, 염색 공정을 거쳐 제 주인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언론 에이비시가 2021년 공개한 심층 다큐멘터리에는 서아프리카로 향하는 헌 옷 행렬이 등장한다. 이런 옷 쓰레기를 가나에서는 ‘죽은 백인의 옷’이라고 부른다. 에이비시 다큐멘터리 갈무리.

오스트레일리아 언론 에이비시가 2021년 공개한 심층 다큐멘터리에는 서아프리카로 향하는 헌 옷 행렬이 등장한다. 이런 옷 쓰레기를 가나에서는 ‘죽은 백인의 옷’이라고 부른다. 에이비시 다큐멘터리 갈무리.


아프리카 해변만큼이나 남미 칠레의 한 사막을 포착한 장면도 비슷한 문제를 드러낸다. 비비시, 프랑스 통신사 아에프페(AFP) 등 보도를 보면,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에는 헌 옷 무덤이 생겼다.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역시 유럽과 미국, 아시아 등을 거치다가 온 헌 옷들이다. 중남미에서 일부가 판매되다가, 결국 팔리지 않은 옷은 이렇게 사막으로 향한다. ‘기부든 헐값이든, 저소득층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헌 옷을 잘 입겠지’라는 생각은 선진국 사람들의 착각이다.

헌 옷들이 제3세계에 매립되고 소각돼 환경 문제를 만드는 현상은 옷의 트렌드와 관련이 깊다. 이는 자라(ZARA)와 에이치앤엠(H&M)으로 대표되는 ‘패스트패션’, 중국 이커머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의 저가 의류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울트라 패스트패션’ 등장으로 심화했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저렴하고 품질이 낮은 옷이 생산되고, 재고와 헌 옷이 쌓인다. 독일 연방경제협력개발부(BMZ)의 2018년 보고서를 보면, 지구에 1년에 1억t의 의류가 생산되고, 그중 75%가 소각 또는 매립 처리된다. 생산되는 옷 네 벌 중 세 벌은 헌 옷의 무덤에 쌓여 남미와 아프리카의 환경을 더럽히는 셈이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해변. 유럽의 의류 쓰레기가 주로 이곳에 버려진다. AP연합뉴스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해변. 유럽의 의류 쓰레기가 주로 이곳에 버려진다. AP연합뉴스


가나 아크라의 해변 옷 쓰레기 산과 칠레 아타카마사막의 헌 옷 무덤은 먼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약 49조5천억원(2023년 한국 패션 소비 시장 빅데이터)의 패션 시장 규모를 가진 한국은 이 산더미 같은 헌 옷들의 무덤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국내 통계를 봐서는 한국의 옷들이 자국과 타국에 얼마나 버려지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표면적으로는 멀쩡히 재활용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22년 환경부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 통계를 보면, 의류수거함에 분리배출된 폐의류가 연간 10만6536t이다. 분리 배출된 품목은 매립, 소각, 재활용된 것으로 결과가 분류되는데, 공식 통계상에서는 매립이나 소각되지 않고 모두 ‘재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옷만 유독 모두 재활용돼 어떠한 환경적 피해도 주지 않는다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통계의 비밀은 수출에 있다. 중고의류 수출은 공식적으로는 ‘재활용’으로 집계돼왔다. 한국은 글로벌 주요 중고의류 수출국이고, 폐의류 중 80% 이상이 수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고의류 수출 규모는 2021년 33만5772t, 2022년 30만1376t, 2023년 29만5498t(한국무역협회)이다. 해마다 30만t 정도 수출된다. 이는 미국, 중국, 영국,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에 해당하는 수치다.(2022년 BACI 국제 무역 통계)

 

수거함에 들어가는 옷, 한 해 10만여t

수출된 ‘폐의류’는 수출입 통계로 어느 나라로 갔는지 정도만 추정할 수 있다. 수출된 국가는 2023년 중량 기준 인도(8만422t), 말레이시아(5만8030t), 필리핀(2만5001t), 타이(2만930t), 파키스탄(2만773t), 나이지리아(1만8014t), 캄보디아(1만7050t) 등이다. 그 나라에서 이 중고의류가 매각됐는지 혹은 소각됐는지 추적은 전혀 되지 않는다. 그저 한국 땅 안에서 공식적으로 매각이나 소각되지는 않았으므로 ‘재활용’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렇게 국내 통계를 본다면, 한국에서 생산되는 헌 옷들이 얼마나 쓰레기 산을 만드는지 추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심지어 수출되는 ‘중고의류’의 양(연간 30만t)이 연간 국내에서 집계되는 중고의류 분리배출량(연간 10만t)보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헌 옷 수거함에 넣는 의류보다 더 많은 양이 국외로 나간다는 것인데, 이 차이는 지방자치단체마다 집계가 들쑥날쑥한 데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집계되지 않은 재고 의류 등이 국외로 수출되는 영향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통계가 이렇게 허점이 많다보니 폐의류가 국내나 국외 중 어디로 가는지, 국외로 나간다면 어떻게 최후를 맞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서울의 한 의류 수거함. 사진 조윤상 피디

서울의 한 의류 수거함. 사진 조윤상 피디


이는 중고의류와 이 옷들의 재활용을 연구한 논문들에서도 지속해서 지적돼온 문제다. 2019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발간한 ‘중고의류 재사용·재활용 정책’(박훈 산업연구원 등)은 “우리나라 중고의류 배출량은 매년 ‘폐의류’라는 명칭으로 국내 전체와 지역별 통계를 발표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중고의류 수거에 대한 보고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1명당 배출량이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매년 통계값이 등락을 거듭하는 등 불안정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폐의류 처리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한국기계연구원 무탄소연료발전연구실, 2022) 또한 사람들이 헌 옷을 넣는 의류수거함이 민간 소유여서 발생량과 그 처리 과정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지적한다. “폐의류는 통계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공동주택(아파트)과 계약을 체결한 업체가 공동주택 쪽에 일정액을 지불하고, 폐의류를 수거하는 과정에서 폐의류가 생활폐기물이므로 폐기물관리시스템에 발생량을 입력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폐기물 발생량 통계는 폐기물관리 정책수립의 기본 자료이므로 폐의류 발생량이 정확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넣으면, 누구도 그 옷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대책도 만들 수 없다. 이 때문에 외신 보도들을 보고 국내 상황을 판단하는 근거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신 보도의 옷 쓰레기 산은 주로 유럽과 미국의 옷이 이동하는 아프리카와 남미에 대한 내용이다. 이 보도를 보고 한국의 옷이 ‘죽은 백인의 옷’ 이야기처럼 아시아권 제3세계의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상이고 추정일 뿐이다.

 

마땅한 ‘추적기’가 없었다

한국 옷의 행방을 알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이런 고민이 이어지다 나온 결론은 결국 한겨레21이 직접 헌 옷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보자는 생각으로 연결됐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외신 보도들에서 레퍼런스(참고 사례)부터 찾아야 했다. 독일 언론 ‘플립’은 2021년 버리는 신발에 추적기를 설치해 동유럽과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사례들을 추적했다. 2022년 슬로베니아의 탐사보도 언론 ‘오스트로’도 쓰레기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플라스틱병, 티브이(TV), 컴퓨터, 아기 인형, 배낭 및 진공청소기를 포함한 30가지 가정용품에 추적기를 장착해 이 가정용품 쓰레기가 크로아티아와 파키스탄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이 보도들에서 어떤 방식의 추적기를 사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겨레21 취재팀은 일단 이 보도들을 길잡이 삼아 취재 계획을 짰다. 버릴 예정인 옷에 추적기를 달고 한국 곳곳에 있는 헌 옷 수거함에 넣고 이 옷이 어디로 가는지 경로를 따라가본다면 헌 옷이 어디로 수출되고 매립되고 소각되는지 최후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2023년 11월 국제 탐사보도 콘퍼런스에서 만난 슬로베니아 ‘오스트로’ 소속 기자에게 추적기 설치 보도에 대한 노하우도 들어봤다.

하지만 외국 언론의 아이디어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넘어야 할 큰 벽이 있었다. 사용할 만한 마땅한 추적기가 없었다. 유럽 언론인들이 사용한 와이(Y)사의 추적기는 아시아에서 작동하는 기종이 아니었다. 게다가 유럽에서는 50유로(약 7만4천원)짜리 추적기로도 국경 너머까지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반면, 한국에서는 같은 가격대 추적기로 같은 성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인공위성 기반의 지피에스(GPS·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 추적기 업체를 알아봤지만, 추적기 크기가 옷에 부착하기 힘들 정도로 컸고, 가격도 하나에 수백만원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수십만원짜리 기기도 있었지만 국경을 넘어 작동하지 않았다.

① 취재팀은 블루투스 기반 스마트 태그와 GPS 기반 위치추적기를 헌 옷에 달았다. 사진은 GPS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① 취재팀은 블루투스 기반 스마트 태그와 GPS 기반 위치추적기를 헌 옷에 달았다. 사진은 GPS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스마트태그’를 발견하다

절망 속에서 ‘추적기’ ‘GPS’ 등으로 검색을 계속하던 중 시선을 잡아끈 온라인 문의 글이 있었다. “국외에서도 갤럭시 스마트태그가 되나요?” 삼성전자 누리집에 올라온 글이었다. 이 글을 보고 갤럭시 ‘스마트태그’가 뭔지 찾아봤다. 갤럭시 스마트태그는 통신 기능이 없는 열쇠나 반려동물 등에 부착해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바일 액세서리다. 질문은 이 기기의 ‘오프라인 찾기 기능’을 국외에서도 활용할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회사 쪽은 긍정적 답을 내놨다. 애초에 이 스마트태그는 국외여행 때 여행용 가방의 위치를 파악하는 용도로도 홍보되고 있었다. 이 글을 보고 스마트태그로 헌 옷을 추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태그는 위성 GPS를 쓰지 않아도 반경 120m 안에 갤럭시 스마트폰 사용자가 있으면 이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교신해 자신의 위치를 스마트태그와 휴대전화를 연결해둔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세계 어디서든 주변에 블루투스로 연결할 수 있는 갤럭시 스마트폰만 있다면 위치 전송이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스마트태그는 가격도 2만원이 채 되지 않을 만큼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이에 한겨레21 취재팀은 우선 한국의 헌 옷이 주로 버려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로 이 스마트태그를 하나 배송시켜봤다. 확인 결과, 기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오프라인 찾기’ 기능을 활용하니 동남아시아로 보낸 스마트태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갤럭시 스마트폰 점유율은 1~2위를 다투기에 스마트태그의 위치를 알려줄 만큼 주변에 충분히 갤럭시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았다는 얘기다. 취재팀은 곧바로 스마트태그 98개를 구입했다.

하지만 스마트태그에만 의지하진 않았다. 버려지는 헌 옷 더미가 사람들이 사는 동네 인근이 아니라 황무지에 있다면 반경 120m 안에 갤럭시 스마트폰 사용자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마트태그는 위치 오차가 1㎞ 안팎이어서 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추적기도 필요했다. 이에 GPS 추적기 55개도 업체로부터 대여했다. 여러 업체를 물색한 끝에 개당 20만원으로 가장 저렴하게 대여해주는 제품을 구했다. 이 GPS 추적기는 조난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도록 구명조끼에 넣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업체가 사용하는 것으로, 일반 사람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 이렇게 153개의 스마트태그 혹은 GPS 추적기가 확보됐다.

②-1취재팀은 추적기를 달기 위해 폐기가 예정된 헌 옷들을 기부받았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헌 옷 수거장에서 버릴 옷을 모아 담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②-1취재팀은 추적기를 달기 위해 폐기가 예정된 헌 옷들을 기부받았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헌 옷 수거장에서 버릴 옷을 모아 담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추적기 문제가 해결되면서, 취재는 본격 궤도에 올랐다. 이제는 헌 옷 수거함에 버릴 의류를 구해야 했다. 단순히 헌 옷을 확보하는 것보다 많은 이의 눈길을 끌 방법을 생각하다, 유명인의 옷을 기부받아 이를 취재에 활용하기로 했다. 헌 옷과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유명인에게 수백 통의 전자우편을 보낸 결과 5명에게 답변을 받았다. ‘쓰레기 아저씨’로 불리며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배우 김석훈씨, ‘환경에 진심인 배우’로 알려진 박진희씨가 참여했다. 김석훈씨는 옷을 기부하며 “옷들이 우리나라를 떠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제로웨이스트(일상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자는 사회운동) 가게를 낸 방송인 줄리안씨, 한겨레에 ‘캡틴락 항해일지’를 연재하고 있고 환경오염과 관련한 노래를 작곡하기도 한 펑크 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씨, 옷 소비에 대한 고찰을 다룬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돌고래, 2023년) 저자 이소연씨의 의류를 기부받았다. 또한 한겨레21 기자들의 신발과 의류, 취재팀 본인과 가족의 의류도 실험 대상에 넣었다. 한 단체가 버리려 했던 옷도 받아 왔다.

②-2 취재팀은 추적기를 달기 위해 폐기가 예정된 헌 옷들을 기부받았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헌 옷 수거장에서 버릴 옷을 모아 담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②-2 취재팀은 추적기를 달기 위해 폐기가 예정된 헌 옷들을 기부받았다. 경기도 의정부의 한 헌 옷 수거장에서 버릴 옷을 모아 담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5일간, 30시간 옷마다 라벨링·바느질

추적기가 있고, 옷도 있다. 그런데 아직 준비가 끝난 게 아니었다. 추적기는 옷에 쉽게 부착되는 게 아니었다. 스마트태그는 플라스틱 재질이고, GPS는 외형이 비닐 재질로 덮여 있다. 에폭시 접착제를 활용해 추적기를 옷과 신발에 붙여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접착제는 단단한 소재에는 힘을 발휘했지만, 유연한 천과 신발 재질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접착제를 이용해 붙이더라도 수출 과정에서 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한겨레21 취재팀이 자문한 중고의류 수출업체 대표는 “헌 옷이 더운 지방으로 선박을 타고 이동하면서 습기가 많이 발생한다”고 했다. 습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는 접착제는 소용없는 것이다.

이때 대안으로 떠올린 게 바느질이다. 옷 사이의 올을 올 따개로 딴 다음 추적기를 집어넣고 다시 바느질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외관상으로 소매는 하나의 천이지만, 자세히 보면 올을 뜯을 수 있고 그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열어 추적기를 넣고 바느질로 입구를 다시 닫으면 어떻게 될까? 추적기는 옷 안에서 돌지만 결과적으로 옷에 붙어 있게 된다. 스마트태그가 가로 39.1×세로 39.1×높이 10.4㎜로 성인의 엄지손가락 정도 되는 크기이기에, 이 공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③-1 옷 안에 추적기를 넣고 미싱기를 이용해 바느질 하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③-1 옷 안에 추적기를 넣고 미싱기를 이용해 바느질 하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결국 한겨레21 취재팀 네 명(박준용 탐사팀장, 채윤태·곽진산 기자, 조윤상 피디)은 2024년 7월19일 의류에 추적기를 다는 작업을 시작했다. 의류마다 라벨링을 하고, 소매나 주머니 등의 올을 따고, 추적기를 휴대전화에 연결했다. 추적기는 의류에 넣은 채 미싱기로 박음질했다. 미싱 작업에는 박준용 탐사팀장의 배우자까지 투입됐다. 취미로 하던 미싱 기술, 보유하고 있던 미싱기가 이 작업에 박차를 가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렇게 추적기 부착 등의 작업에는 모두 5일에 걸쳐 30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이렇게 넣어서 추적이 잘 될까요?” 작업 중에도 취재팀 기자 누군가가 말했다. 옷들이 그 먼 거리를 이동해 실제로 국외로 갈지, 그리고 옷에 달린 추적기가 성능에 맞게 신호를 보내올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먼지 탓에 따가워진 목으로 몸 컨디션이 저하된 것도 부정적인 생각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달리 뾰족한 수도 없었기에 묵묵히 라벨링과 바느질을 이어갔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의류 153벌에 추적기 달기를 완성했다.

③-2 취재팀은 바느질을 통해 추적기를 헌 옷에 달았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③-2 취재팀은 바느질을 통해 추적기를 헌 옷에 달았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먼지를 마시면서 전국 의류수거함을 돌다

이제 추적기를 단 옷을 의류수거함에 버리는 일이 남았다. 추적기 달린 옷을 한 동네에서만 버린다면, 특정 수출업체나 수거업자만 이 옷을 가져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도와 연구적 가치도 적어질 수밖에 없다. 전국의 의류수거함은 집계된 것만 10만 개가 넘는다. 한겨레21 취재팀은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부소장과 협업해 연구 설계를 하고, 이에 따라 도심과 시골에 있는 의류수거함에 추적기가 부착된 옷들을 나누어 버리기로 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지역도 안배했다. 지역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 지인에게 택배로 보내는 방식을 통해 150여 개의 의류를 수거함에 버렸다. 옷을 버리기 전에 향후 옷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하기 위해 중량을 재고, 성분도 꼼꼼히 기록해뒀다. 2024년 8월 한 달간 취재팀 차량에는 중고의류가 뿜어내는 먼지가 가득했다.

④취재팀은 추적기를 단 헌 옷을 전국의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의 한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넣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④취재팀은 추적기를 단 헌 옷을 전국의 헌 옷 수거함에 넣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의 한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넣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이렇게 ‘죽은 한국인의 옷’을 찾으려는 추적기 설치와 의류 폐기 작업이 끝났다. 2024년 7월 시작한 작업은 8월 중순에야 마무리됐다. 수출업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옷들이 국외에 가는 데는 최소 한달 반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옷에 달린 추적기는 과연 어딘가 이국땅에서 신호를 보내올 것인가, 아니면 기술적 한계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말 것인가. 막연하고도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한겨레21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보도는 12월27일부터 2025년 1월2일까지 매일 이어집니다. 한겨레21 통권호(1545호)로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조윤상 피디 jopd@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곽진산 기자 kjs@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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