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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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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에 나타난 2년 전 미나리

강원 평창 편_마지막회|그러려니 한 기후위기, 올해는 밭에서 체감… 대를 뜯 열매 맺는 고추처럼 2년 만에 얼굴 내미는 미나리처럼 완주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등록 2024-07-27 14:10 수정 2024-08-01 20:53
고라니에 뜯어 먹혔어도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은 콩.

고라니에 뜯어 먹혔어도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은 콩.


기후위기, 기후위기 말은 많았어도 그러려니 했는데 올해는 확실히 느끼고 있다.

봄에는 가물었다. 6월까지는 고질적으로 물이 많이 나는 우리 밭의 오른쪽 부분까지 바싹 말라 흙이 퍼석퍼석했다. 산에 먹을 게 없는지 고라니가 내려와 고추 모종의 대를 다 분질러먹었다. 그래 너희들도 먹고살아야겠지 했더니, 콩싹도 다 뜯어 먹었더라. 엄마 말이 고라니는 원래 맛있는 것만 먹고, 이것저것 다 조금씩 뜯어 먹어서 농사 망쳐놓는다더니 과연. 

기온이 올라서인가 밭의 풀 식생도 많이 달라졌다. 잡초 이름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주로 뾰족한 잎이 나고 웃자라는 풀, 덩굴지는 풀, 콩싹 닮은 풀, 망초와 같이 다양한 풀이 많았는데, 지금은 밭 윗부분을 클로버가 점령했다. 클로버는 무성해져도 높이 자라지 않고 예쁘기도 해서 그냥 두니까 편하긴 한데, 괜찮은 건가 마음이 좀 찝찝하긴 하다.

옥수수밭에는 옥수수 사이사이로 명아주가 빽빽이 자랐다. 숫제 명아주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옥수수밭에도 쇠비름처럼 낮게 깔리는 풀이 많았는데, 높이 크는 풀만 남았다. 이건 기후위기 탓이 아니라 옥수수 사이에서 햇빛 경쟁에 승리한 애들만 남은 건가? 아무튼 딴 얘기지만 명아주 지팡이를 짚으면 장수한다는데, 그냥 명아주를 키워서 지팡이 장사를 해볼까 실없는 생각도 해봤다.

지난주 밭에 갔더니 ‘옥수수 개꼬리’가 올라왔더라. 옥수수 꼭대기에 벼처럼 올라와 몇 가닥으로 축 늘어지는 그거. 그게 옥수수 꽃이다. 어떻게 꼭대기에 핀 꽃이 수정돼 중간에 열매로 달리는지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다. 이맘때면 옥수수밭이 벌떼로 붕붕거린다. 그런데 지난주엔 시기가 일러서 그런지 벌이 별로 안 보이고 개꼬리에 풍뎅이 같은 벌레들이 짝짓기하면서 많이 붙어 있었다. 벌이든 풍뎅이든 수정만 되면 장땡이지 싶으면서도 역시 좀 찝찝하다.

그렇게 가물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끝없이 쏟아진다. 날씨가 중간이 없다. 바싹 말랐던 밭이 다시 질퍽질퍽해졌다. 2~3년 전에 밭이 워낙 질퍽하니 미나리가 될까 싶어서 미나리 한 줌을 심어본 적이 있다. 그게 자취도 없더니, 올해 그 일대가 미나리로 덮였다. 어디 있다가 올라온 건지. 고라니에게 대를 뜯긴 고추도 곁가지를 내서 열매를 달고 있다. 콩은 10㎝도 자라지 못했는데 꽃도 피우고 콩꼬투리도 매달았다. 가물어도 장마가 져도 하여간에 땅은 종류만 달라질 뿐 풀로 뒤덮이고, 뿌리만 살아 있으면 식물은 어떻게든 생명을 이어간다.

변화무쌍. 이 말뜻이 또 새롭게 새겨진다. 변하는 정도가 비할 데 없다. 그래도 살아남는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 변화무쌍하다. 자연은 최선을 다한다. 농사지으며 배운 이치다. 기왕 태어난 거, 잡초처럼 벌레처럼 나도 완주를 위해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2021년 6월부터 ‘농사꾼들—강원 평창 편’을 연재해온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수고하신 김 대표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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