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기후위기 말은 많았어도 그러려니 했는데 올해는 확실히 느끼고 있다.
봄에는 가물었다. 6월까지는 고질적으로 물이 많이 나는 우리 밭의 오른쪽 부분까지 바싹 말라 흙이 퍼석퍼석했다. 산에 먹을 게 없는지 고라니가 내려와 고추 모종의 대를 다 분질러먹었다. 그래 너희들도 먹고살아야겠지 했더니, 콩싹도 다 뜯어 먹었더라. 엄마 말이 고라니는 원래 맛있는 것만 먹고, 이것저것 다 조금씩 뜯어 먹어서 농사 망쳐놓는다더니 과연.
기온이 올라서인가 밭의 풀 식생도 많이 달라졌다. 잡초 이름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주로 뾰족한 잎이 나고 웃자라는 풀, 덩굴지는 풀, 콩싹 닮은 풀, 망초와 같이 다양한 풀이 많았는데, 지금은 밭 윗부분을 클로버가 점령했다. 클로버는 무성해져도 높이 자라지 않고 예쁘기도 해서 그냥 두니까 편하긴 한데, 괜찮은 건가 마음이 좀 찝찝하긴 하다.
옥수수밭에는 옥수수 사이사이로 명아주가 빽빽이 자랐다. 숫제 명아주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옥수수밭에도 쇠비름처럼 낮게 깔리는 풀이 많았는데, 높이 크는 풀만 남았다. 이건 기후위기 탓이 아니라 옥수수 사이에서 햇빛 경쟁에 승리한 애들만 남은 건가? 아무튼 딴 얘기지만 명아주 지팡이를 짚으면 장수한다는데, 그냥 명아주를 키워서 지팡이 장사를 해볼까 실없는 생각도 해봤다.
지난주 밭에 갔더니 ‘옥수수 개꼬리’가 올라왔더라. 옥수수 꼭대기에 벼처럼 올라와 몇 가닥으로 축 늘어지는 그거. 그게 옥수수 꽃이다. 어떻게 꼭대기에 핀 꽃이 수정돼 중간에 열매로 달리는지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다. 이맘때면 옥수수밭이 벌떼로 붕붕거린다. 그런데 지난주엔 시기가 일러서 그런지 벌이 별로 안 보이고 개꼬리에 풍뎅이 같은 벌레들이 짝짓기하면서 많이 붙어 있었다. 벌이든 풍뎅이든 수정만 되면 장땡이지 싶으면서도 역시 좀 찝찝하다.
그렇게 가물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끝없이 쏟아진다. 날씨가 중간이 없다. 바싹 말랐던 밭이 다시 질퍽질퍽해졌다. 2~3년 전에 밭이 워낙 질퍽하니 미나리가 될까 싶어서 미나리 한 줌을 심어본 적이 있다. 그게 자취도 없더니, 올해 그 일대가 미나리로 덮였다. 어디 있다가 올라온 건지. 고라니에게 대를 뜯긴 고추도 곁가지를 내서 열매를 달고 있다. 콩은 10㎝도 자라지 못했는데 꽃도 피우고 콩꼬투리도 매달았다. 가물어도 장마가 져도 하여간에 땅은 종류만 달라질 뿐 풀로 뒤덮이고, 뿌리만 살아 있으면 식물은 어떻게든 생명을 이어간다.
변화무쌍. 이 말뜻이 또 새롭게 새겨진다. 변하는 정도가 비할 데 없다. 그래도 살아남는다. 아니 살아남기 위해 변화무쌍하다. 자연은 최선을 다한다. 농사지으며 배운 이치다. 기왕 태어난 거, 잡초처럼 벌레처럼 나도 완주를 위해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글·사진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2021년 6월부터 ‘농사꾼들—강원 평창 편’을 연재해온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수고하신 김 대표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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