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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값 폭등’ 기사가 말하지 않는 것들

등록 2024-03-08 15:49 수정 2024-03-11 23:05
2023년 6월26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 감귤밭에서 채호진 농민을 만났다. 김양진 기자

2023년 6월26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 감귤밭에서 채호진 농민을 만났다. 김양진 기자


과일값이 정말 많이 오른 걸까. 대표적 겨울 과일인 귤의 가격을 보면, 2023년 2월과 견줘 2024년 2월 78.1% 올랐다.(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 “장바구니 물가 초비상”이라는 언론보도의 근거다. 범인은 이번에도 “기상이변”이다. 결말도 늘 같다. “수입 확대로 과일값을 잡겠다”는 정부 대책이 나왔다.

이 스토리텔링은 구멍이 숭숭 뚫린 엉터리다. 소비의 ‘뒷면’인 생산, 즉 비료·농약값, 인건비 등 기타 물가의 상승 상황에 소비자와 똑같이 노출된 농민 그리고 농업 이야기가 빠졌다. 농민은 생산량이 늘든지 줄든지 상관없이 늘 낮은 가격에 만족해야 할까.(2022년 농민 1인당 연간 농업소득은 949만원이다.) 농산물값을 시장에만 내맡긴 채 수십 년째 농민과 농토가 줄어드는 걸 방치해놓고 날씨 탓만 하는 정부의 태도도 영 어색하다.(2013~2023년 농지 면적은 11.6% 줄었다.) 귤농사 등 1만 평 농사를 짓는 제주 농민 채호진(제주농민회총연맹 사무처장)씨에게 연락해봤다.

—2023년 6월 제주 제2공항 문제(제1470호)로 만난 지 9개월 만입니다. 요즘 귤값이 많이 올랐다는데 형편이 나아졌습니까.
“지금 귤값은 지난 10년 정도를 놓고 보면 농민 처지에선 당연히 받아야 할 정도예요. 그 정도는 받아야 농사가 유지됩니다. 인건비·생산비·비룟값·임대료 등은 2~3년 전과 비교해도 60~100% 올랐는데 가격은 10년 전이나 차이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물가상승률을 봐야죠. 농민도 소비자입니다.(사단법인 제주감귤연합회 자료를 보면 1㎏ 하우스 감귤 가격은 2013년 3982원에서 2022년 3861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는 15.8% 급등했다.) 또 이번에 귤값이 오른 건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인데, 가격이 올라야 농민 수입도 유지되죠. 소비자가격만 생각해서 정부가 가격을 때려잡겠다는 건 농민을 죽여버리는 거죠.”

—정부 대책을 보면 △수입농산물 관세 추가 인하 △수입농산물 직수입 확대 △농·축·수산물 판매 할인 600억원 지원 등입니다. 농민 지원은 없는데,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농민들이 꾸준히 요구하는 게 비료·농약 같은 필수농자재의 지원을 대폭 늘리는 것입니다. 농사를 더 편하고 많이 짓도록 해야 생산량이 늘어나고 소비자물가가 안정되겠죠. 이상기후 대책도 없어요. 올겨울 작물들을 보면 기온 상승 탓에 제대로 된 게 없어요. 무만 해도 2월에 수확할 게 1월에 다 커버려요.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금 탄소를 줄이려는 실천에 적극적이지 않잖아요. 친환경 농업 확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부 지원은 친환경 농사를 지을 때 생산비를 조금 지원하는 게 전부예요. 농사 짓고 나면 파는 건 농민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이에요. 생활협동조합이나 학교급식을 빼면 팔 데가 없어요. 소비자는 모양이 예쁜 걸 찾는데, 친환경은 그걸 맞출 수 없습니다. 판로는 없고 농사는 더 고된데 친환경 농사를 어떻게 짓겠습니까.(친환경 인증 농지 면적은 2020년 8만1827㏊에서 2022년 7만127㏊로 오히려 뒷걸음질하고 있다.)”

—<한겨레21>이나 언론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언론에서 농산물 가격이 물가상승의 주범이라고만 쓰는 건 잘못됐죠. 근본적인 농업정책 문제는 얘기하지 않아요. 그리고 소비자지출에서 농산물 지출이 가장 큰가요? 농산물값만 문제라는 식으로 다루는 게 맞습니까?”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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