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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오브제가 된 한옥, 현대화를 허하라

등록 2024-10-12 10:25 수정 2024-10-16 07:57
정기황 건축가. 사진 현린

정기황 건축가. 사진 현린


한옥은 한국의 전통 주택이지만, 한국인들이 더 이상 살지 않는 집이다. 2021년 건축공간연구원이 펴낸 ‘한옥 통계 백서’를 보면 한옥은 전체 건물 수의 1.1% 정도다. 한옥에 사는 인구는 전체의 0.5%도 되지 않는다. 100년 전만 해도 거의 모든 사람이 살았던 한옥은 왜 사라졌을까? 최근 현대 한옥의 변화를 다룬 ‘한옥 적응기’라는 책을 펴낸 정기황 건축가에게 물어봤다. 정 건축가는 건축가일 뿐 아니라 시시한연구소장, 커먼즈네트워크 활동가로서 공공 공간을 디자인하고 확대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책에 대한 반응이 어떤가?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최근 상황에 비추면 나쁘지 않다. 읽은 사람들이 약간 당 황하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한옥을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공간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옥을 잘 몰랐다는 반응이 많다.”

—한옥은 어떤 집인가?

“전통 가옥이다. 한반도의 지형이나 기후, 문화 환경에 따라 만든 집이다. 예를 들면 한국 집이 들어서는 방식인 배산임수나 구릉지에 짓거나 처마가 길고 창호를 활짝 열게 만든 것은 기후에 따른 것이다.”

—책 제목이 ‘한옥 적응기’인데, 무슨 뜻인가?

“한옥 사용자들이 능동적으로 한옥을 개선해나갔다는 뜻이다. 20세기 한옥은 전통 시대와 달리 도시 한옥이었고, 신분 폐지가 큰 영향을 줬다. 도시화하면서 집의 규모가 작아졌고 게딱지처럼 서로 붙어서 주거 환경이 나빠졌다. 다른 하나는 과거에 대부분 초가였던 것이 20세기엔 양반집처럼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작은 집을 양반집처럼 짓다보니 아주 옹색하게 되기도 했다.”

—20세기엔 한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나?

“반외부 공간이었던 대청이 거실로 바뀌면서 실내 공간이 됐다. 또 화장실이나 부엌이 실내로 들어왔는데, 처음엔 이에 대해 반발도 많았다. 외벽에 흙 대신 내구성, 단열성이 좋은 벽돌을 사용하기도 했다. 벽돌로 집을 짓는 것은 청나라를 방문했던 연암 박지원도 주장했던 일이다.”

—책을 보면, 한옥이 20세기에 꾸준히 적응해나가다가 갑자기 발전이 중단됐다. 왜 이렇게 됐나?

“맞다. 한옥의 발전은 중단된 측면이 있다. 국가가 ‘한옥 보존과 지원’이란 정책을 쓰면서부터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한옥이 바뀌고 그것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맞는다. 그런데 국가가 먼저 한옥의 기준을 정했고, 거기에 맞춘 한옥만 지원했다. 그래서 20세기에 널리 사용된 벽돌이나 기능이 좋은 현대식 창호도 쓰기 어렵게 됐다. 안타깝다.”

—현재 한옥에서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지붕이 가장 심각하다. 단단한 기와를 써야 하는데, 현재의 기와는 너무 내구성이 좋지 않다. 동(구리)기와를 쓰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지붕 안에 흙을 넣는 것도 큰 문제다. 흙 때문에 벌레가 생기고 나무가 썩는다. 흙을 올리지 않고 단열재를 넣고 나무 트러스로만 지붕을 처리할 수 있다. 근데 그렇게 하면 전통에 맞지 않고 일본식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하는데 말이다.”

—더 이상 사람들이 한옥에 살려고 하지 않는다.

“한옥에 대한 허구적이고 고정적인 모델이 있다. 여기서 벗어나면 안 되니 건축가들의 상상력도 제한된다. 한옥이 현대에 맞게 바뀌지 않으니 한옥에서는 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의 오브제가 된 것 같다.”

—앞으로 한옥은 어떻게 발전해나가야 하나?

“한옥은 수납공간이 부족하고 창호가 잘못돼 있어 환기가 잘 안 된다. 정부가 이런 문제점들을 연구하고 좋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한옥 지원 때 외부만 심의하고 내부 공간에 대한 개입을 줄여야 한다.”

—한겨레21에 하고 싶은 말은.

“부동산 말고 집 이야기를 해달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 이야기 말이다. 20세기 초엔 집의 변화가 근대화의 집약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부동산 이야기 말고는 없다. 이런 문제는 다른 매체가 다루지 않는다. 한겨레21이 해줘야 한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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