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18.5%(2021년), 밥상에 올라오는 곡식의 대부분(81.5%)을 수입으로 조달한다는 뜻입니다. 곡식 절대 부족국임에도 정부는 식량이 남아도는 걸 걱정합니다. 기후위기에 전쟁까지, 국제 곡물 가격이 요동치고 식량을 무기화하는 시대에, 우리 정부 ‘식량정책’의 핵심 목표는 쌀 생산 억제입니다. 남아도는 쌀을 사주는 데 혈세가 낭비되니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기회 있을 때마다 “쉬운 농사라 농민들이 벼농사를 고집한다”고 농민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까지 지적합니다. 사실 쌀도 불안합니다. 자급률이 2020년 이래 90% 안팎으로 떨어졌습니다. 농업 문제를 식량주권 문제가 아닌 돈 문제로만 취급하는 정부 기조 이면엔 수십 년간 우리 농업·농촌을 망쳐온 정부 관료들의 무능과 몰염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자급률이 1%에 불과한 밀에 대한 정부 대응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였습니다. 2023년 국내 밀 수확량은 5만2천t으로 한 해 전(3만5천t)보다 48.6% 늘었습니다. 2022년 정부의 밀 종자 보급 량이 1년 전보다 42%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정부를 믿고 밀을 파종했던 농민들은 팔 곳을 찾아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정부 수매와 주정용 판매로 겨우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농식품부는 ‘밀 자급률이 1→2%’라는 ‘자축’ 보도자료도 냅니다. 수입밀을 국산밀로 대체하는 난도 높은 과제는 제쳐두고, 예산으로 찔끔찔끔 생산량을 높여서 자기들 성과만 챙기겠다는 안이한 속내만 훤히 보입니다. 평균연령 68살(2023년). 초고령화로 붕괴 직전인 농촌을 살리겠다는 의지는 있을까요. 농촌 붕괴는 먹거리 불안정으로 이어집니다. 2023년 11월 통계청 ‘소비자물가 동향’에서 사과 55.5%, 귤 16.7% 등 농산물 물가는 1년 전보다 13.6% 오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밀살리기운동 1세대’ 최성호 전남 구례 우리밀가공공장 대표는 설명합니다. “도시 소비자들은 농산물 가격이 왜 이렇게 오르나 답답해하는데, 농촌에 와보세요. 일할 사람이 없으니, 농산물 생산이 줄고, 당연히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지요.” 그런데 정부는 ‘병인’인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고, 관세 인하 등 농산물 수입으로 ‘병증’ 완화만 하려 합니다.
농촌에 청년들이 몰려오고 지역경제가 되살아날 방법이 없을까요. 검사 출신 농식품부 장관이라도 와야 상황이 나아질까요. 매년 겨울 밀과 보리가 자랄 수 있는 드넓은 농토가 대부분 묵혀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 밀을 심으면 매년 들여오는 수입밀(2022년 기준 257만t)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농민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국민은 건강해집니다. 농민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어 먹고살 수 있도록 하는 정도 외에 농촌을 살릴 방법이 있을까요?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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