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매미가 잡혔나보다!”
찌직, 나무 위에서 들린 매미의 단말마를 박임자(51) 탐조책방 대표는 놓치지 않았다. 박 대표는 “지금 매미가 ‘아이고, 죽겠다’ 하는 소리를 낸 거거든요? 아마 직박구리가 매미를 잡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카메라를 든 박경희(54)씨, 정맹순(81)씨는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봤다. 기자가 두리번거리는 동안 직박구리를 발견한 경희씨가 “(새가 매미를) 먹어버렸다”고 작게 말했다. 박 대표는 “저기 나뭇가지 위쪽에서 날개를 털고 있는 새가 어린 새고요, 아래에 있는 새가 어미 새예요. 어린 새들이 저렇게 날개를 터는 행동을 계속해요. 따라다니면서 먹이를 달라 조르고. 어미 새는 여기 사람이 있으니 자꾸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도하고 있네요.” 그의 말처럼 어미 새가 탐조단 일행과 먼 쪽으로 이동하면서 따라오라는 듯 소리를 내자 직박구리 어린 새는 날개를 파닥이며 움직였다.
2023년 7월17일 오전, 탐조(자연 상태의 새를 관찰하는 일)를 위해 찾은 장소는 박임자·경희 자매와 정맹순씨 세 모녀가 사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의 한 아파트 단지였다. 109동 건물 옆 작은 정원에는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와 단풍나무, 벚나무, 소나무 등이 심겨 있었다. 사방에서 새소리가 들렸지만, 무성한 초록 잎에 가려 새가 잘 보이지 않았다. 탐조단은 기자에게 “새소리를 들으면 된다” “가만히 있던 새가 움직이는 때에 보면 된다”는 등 탐조 방법을 알려줬다.
기자가 연신 “어디에 있죠?” “소리는 들리는데 제 눈엔 안 보여요” “못 찾겠어요” 등을 반복하자, 보다 못한 맹순씨는 “여기 있는 거 못 봤어? 여기도 하나 있고 저기도 하나 있고”라고 손짓했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요리조리 고개를 돌려보니 날개에 흰 부분이 있는 딱새 두 마리가 보였다. 박 대표는 어미와 어린 새라고 설명했다. 몸길이가 약 14㎝인 딱새를 멀리서 보고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그는 “저렇게 꼬리를 파르르 떨고, 날개에 하얀 점이 있는 게 딱새의 특징”이라고 했다.
최근 몇 년 새 국내에서는 탐조를 취미로 삼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회룡(63)씨는 2023년 3월 ‘고양파주탐조회’라는 동호회에 가입해 탐조 활동을 하고 있다. 가입 뒤 첫 탐조 장소는 3월26일 충남 서산시 천수만이었다. 천수만은 일본 이즈미 지역에서 겨울을 난 흑두루미가 번식을 위해 시베리아 등 북쪽으로 가기 전에 모이는 곳이다. “흑두루미들이 순서대로 기다리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륙하는 것처럼 하늘로 올라간 뒤 상승기류를 타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반했다.” 정씨는 “2024년 3월쯤엔 1주년 기념으로 탐조 생활을 담은 책도 낼까 싶다”고 말했다.
야생의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탐조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많은 사람이 즐기는 문화생활이지만, 한국에선 소수의 마니아가 즐기는 취미였다. 멀리서 새를 관찰하고 촬영하려면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고, 습지·섬·숲·들 등 인간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자연환경에서 탐조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최근엔 도시공원과 하천, 심지어 아파트 단지 등 일상 속 공간에서도 야생 새를 충분히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연령대가 탐조에 빠져들고 있다. 온 가족이 탐조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2021년 수원시 경기상상캠퍼스에 자리잡은 탐조책방은 탐조 입문자가 정보를 얻는 중심지 구실을 톡톡히 한다. 새와 관련된 책은 300여 권, 그 외 생태환경에 대한 책도 있다. 책방에서는 탐조 관련 책이 새로 나오면 저자를 초청해 북토크나 새 전문가의 강의를 열고, 탐조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탐조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박 대표가 책방을 만들기까지는 어머니 맹순씨와 언니 경희씨와 함께 한 ‘아파트 탐조단’ 프로젝트가 큰 구실을 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2020년에는 자유로운 이동이 쉽지 않았다. 탐조인이던 박 대표는 답답한 시기를 견디기 위해 아파트 안에서 1년 동안 몇 종의 새를 볼 수 있을지 관찰해보기로 했다.
박 대표는 평소 아파트 단지 전체를 관찰하며 어떤 새들이 머무는지 등을 확인하고, 맹순씨와 경희씨는 각각 17층과 2층 베란다에 새 먹이대를 설치해 새들을 관찰하기로 했다. 맹순씨는 새 그림을 그리고, 경희씨는 카메라로 새의 모습을 담기로 했다. 처음부터 이 제안이 내킨 것은 아니었다. 박 대표는 경희씨에게 “먹이를 다 가져다줄 테니 놔주기만 하고 그냥 사진만 찍어달라”고 사정해야 했다. 두 사람이 탐조인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파트는 탐험의 공간이 됐다. 참새·멧비둘기·박새·직박구리 등 흔히 볼 수 있고 아파트에 사는 텃새뿐 아니라, 나그네새들도 머무르다 갔다. 멀리 나가야 볼 수 있는 겨울철새 홍여새가 경희씨가 사는 2층 먹이대에 홍시를 두자 곧바로 찾아왔다. 철새는 아니지만 쉽게 보기 어려운 동박새도 관찰할 수 있었다.
맹순씨는 그동안 딸이 탐조를 위해 바다나 섬에 가는 것을 마땅찮게 생각했다. 그러나 아파트 탐조 활동을 하는 두 딸의 사진을 찍어주거나, 베란다에 놓은 새 먹이대에 찾아온 새들을 창을 통해 보면서 탐조에 빠져들었다. 맹순씨는 “직접 해보니 알겠더라”라고 말했다.
“겨울엔 눈이 오니까 놔준 밥에 눈이 쌓이잖아요. 그것도 털어주고. 물이 얼어버리니까 따스운 물을 떠다가 다시 놓고. 겨울엔 힘들긴 했는데 소파에 앉아 있으면 참새들이 와서 째째째째 하고 장난치고, 돌아다니면서 먹고. 다 보면 너무 예뻤어요. 새 밥 주는 게 좋았어요.”
세 사람이 2020년 1월부터 12월까지 아파트에서 만난 새는 47종이었다. 박 대표가 직접 만들어준 공책에 맹순씨는 꾸준히 새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썼다. 단지 안에서 본 새들의 종류와 단지 내 공간의 특징 등과 함께 맹순씨가 직접 그린 새 그림이 들어갔다. 새 그림과 함께 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도 썼다. 최근엔 이런 과정이 담긴 책 <맹순 씨네 아파트에 온 새>가 출간됐다.
박 대표는 같은 해 자연관찰 플랫폼 ‘네이처링’에 아파트 탐조단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새를 보고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2023년 7월20일 현재 334명이 참여해 관찰한 새는 131종, 관찰기록은 9564건에 달한다.
새를 보니 자연히 새들이 사는 환경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도시 새에게 아파트 녹지는 도심 속 숲 구실을 했다. 아파트에는 벌레와 나무 열매 등 먹이가 있었다.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맹금류나 뱀 같은 천적을 피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동시에 번식하기 어려운 요소도 있었다. 어떤 새는 나무에 구멍이 있어야 둥지를 틀 수 있는데, 단지 안 나무들은 크지 않아 구멍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위험하게 보일러 연통 안에 둥지를 틀기도 했다.
또 새가 물을 마시거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씻을 만한 곳도 부족했다. 어미 새는 어린 새를 키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곤충과 애벌레를 잡아와 먹이는데, 육추(부화한 어린 새를 키움) 기간은 수목을 소독하는 시기와 겹쳐 벌레를 찾기 어려운 환경이 되기도 했다. 박임자 대표는 어떻게 하면 물을 새에게 더 적극적으로 줄 수 있을지, 위험한 곳에 둥지를 트는 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일상 속 변화를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공 새집 달기 프로젝트는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구멍이 뚫린 인공 새집을 단지 녹지 안 나무 곳곳에 달았다. 관찰해보니 주로 햇빛이 온종일 들고 녹지가 넓은데다 먹이가 풍부한 109동 옆 정원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쌀쌀한 이른 봄에는 새의 체온만으로 알을 덥히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봄에는 참새와 곤줄박이가 한 둥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적으로 둥지 재료를 물어다 놓는 모습도 봤다.
박 대표는 “원래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새들의 삶에 관심 갖게 되고 하나씩 시도해보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멀리 가서 하는 탐조의 역할도 있지만, 일상에서 하는 탐조는 우리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탐조인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2023년 3월부터 탐조책방에서 주최한 북토크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온 가족이 탐조에 빠진 권가현(39)씨 가족도 새가 사는 환경에 좀더 관심을 갖게 됐다. 6월, 성당에 같이 가던 아들 이건우(11)군이 버스 정류장 유리에 부딪쳐 길에 쓰러진 멧비둘기를 보고 울먹이면서 권씨 부부를 바라봤다.
권씨도 멧비둘기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얘들아, 이건 너무 마음이 아픈 일이야. 엄마가 민원을 넣어볼게.” 버스 정류장에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여달라는 민원을 수원시청에 넣었으나, 시청은 예산상의 문제로 전체 정류장이 아니라 멧비둘기가 부딪친 정류장에만 스티커를 붙였다. 권씨는 “아이들과 버스 정류장들을 돌아보거나, 신축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라 방음벽을 둘러보면서 변화를 시도해보는 게 어떨지 남편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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