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이틀씩 토종씨드림의 사무국인 곡성 ‘은은가’에서 농사일을 한다. 이곳에 토종씨드림의 변현단 대표는 터를 잡고 3500평의 산을 일궈 집을 짓고 밭과 논을 만들었다. 변현단 대표의 집이자 일터다. 이곳에서 앉은키밀, 남도참밀, 세봉상추, 순창 노가리고추, 쇠뿔가지 등 토종작물 200여 종이 자란다. 종마다 대개 대여섯 품종을 심는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자라온 재래종이다. 전국에서 수집해 증식시키고 이 귀한 종자를 널리 퍼뜨려줄 토종씨드림 후원회원들에게 나눈다.
최근엔 써레질과 모내기를 했다. 기계가 아니라, 곡괭이로 말이다. 계단식 다랑논이다. 일일이 곡괭이로 흙을 뒤집었다. 토종씨드림 사무국장과 이웃 아저씨까지 3명이 오전·오후 내내 흙을 뒤집는다. 논의 형태가 균일하지 않고 작아서 기계가 들어갈 수 없다. 기계였으면 30분이면 끝날 일을 매번 이렇게 몸으로 한다. 어째 진흙물은 내 얼굴에만 다 튄다. 누가 보면 나만 일한 줄 알겠다.
온종일 곡괭이질을 하려면 힘줘서 흙을 뒤집으면 안 된다. 힘들어서 오래 못한다. 올릴 때만 힘을 주고, 내리는 것은 중력으로 박히게 한다. 그리고 흙을 뒤집는다. 남들은 성의 없이 하는 것처럼 보겠지만 이렇게 해야 오래 할 수 있다. 허리도 펴야 한다. 허리를 구부리면 허리통증으로 고생한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적절히 넣어준다. 10번 하고 짧게 쉬고, 10번 하고 짧게 쉬고… 그렇게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을 한다. 괭이질이 쌓일 때마다 지난 겨우내 딱딱해졌던 땅이 다시 보드라워진다. 보드라워진 것으로 끝이 아니다. 수평을 맞춰야 한다. 다 한 줄 알고 나와서 보니, 수평이 한참 안 맞는다. 수평이 안 맞으면 낮아서 모가 잠겨 죽거나, 높아서 잡초가 자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간식 타임이 간절하다. 힘들 땐 간식을 잘 챙겨야 한다. 호박엿을 먹었는데 이리 달고 맛날 수가 없다. 점심은 제철 채소가 들어간 비빔밥이다. 짝꿍이 직접 딴 미나리, 상추, 당근잎, 장미잎을 넣고 준비했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요리조리 비벼서 한입 넣으니, 초여름의 향이 입안 한가득하다. 맨날 먹는 비빔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다음날 뒤집은 논에 모를 심었다. 토종벼 4종이다. 붉은차나락, 북흑조, 멧돼지찰, 졸장벼. 오늘은 변현단 대표까지 합세했다. 4명이 줄 맞춰 서서 모를 심는다. 할 땐 ‘아, 이 논농사 다시는 하나 봐라’ 하고 주먹을 꽉 쥐지만, 막상 일렬로 모가 심긴 경관을 보자면 ‘이쁘네’ 하며 기뻐한다. 농사의 아이러니. 그동안 쉽게 먹었던 쌀이 내리는 시시포스의 형벌이다.
농사는 고통이다. 종일 컴퓨터만 바라본 약체이던 내가, 넓은 논의 흙을 뒤집는다. 팔, 어깨, 등, 허벅지 안 쑤시는 곳이 없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고작 1년간 내가 먹을 쌀의 양 정도 되는 모를 심으며 이렇게 힘들어하다니.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할까. 수렵채집 시대라면 벌써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요새는 쌀이 쉽게 생산된다. 기계로 하면 1시간도 안 돼 넓은 대지에 가득 모를 심는다. 농부는 흙 한번 밟지 않고 쌀을 생산한다. 누구나 쉽게 쌀을 생산하게 되면서 쌀값은 제값을 못한다. 이를 방치한 정부 탓도 있다. 옛날엔 쌀이 참 귀했다. 밥을 고봉으로 먹었지만, 거기에 쌀은 얼마 안 됐다. 대부분 보리쌀, 수수쌀, 귀리, 율무, 서리태 등의 잡곡이었다. 쌀 한 톨의 무게가 가볍다. 쌀 한 톨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볼 때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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